5화
‹ ›그날 이후 오년이 흘렀다.
계절이 다섯 번 바뀌는 사이, 오두막의 마당은 매일 목검이 부딪는 소리로 가득 찼다.
짜악! 짜악!
이강은 이제 열세 살이 되어 있었다.
키는 훌쩍 자랐고, 어깨에는 제법 단단한 근육이 붙었다. 눈빛에는 아이답지 않은 냉정함이 배어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순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강아, 오늘도 늦게 자면 안 된다!"
여씨 노인이 잡화점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네, 할아버지!"
이강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섯 해라... 이 낮과 밤이 참으로 빨리도 흘렀구나.'
몸 안의 넋은 서른 해를 넘게 살았으되, 이 몸뚱이는 여전히 자라는 중이었다. 그 간극이 새삼스러웠다.
오년 사이 잔검결의 구결은 몸에 완전히 새겨졌다. 박도철의 손짓 하나에도 담긴 뜻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목검 대신 이제는 진검을 쥐어도 손이 떨리지 않았다.
처음 진검을 쥐었던 날이 떠올랐다. 손바닥에 스며드는 서늘한 무게, 박도철이 던진 짧은 한마디.
"떨지 마라."
"안 떨어요."
그때는 정말로 떨지 않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놀랐다. '이 몸이 이리도 순순히 검을 받아들이는구나.' 서른 해 묵은 넋과 열 몇 해짜리 몸이 손을 맞잡은 순간이었다.
마을의 불량배들은 더 이상 이강을 건드리지 않았다. 소문은 여전히 돌았지만, 이제는 아무도 함부로 다가오지 않았다. 한 번은 옆 마을에서 온 낯선 무리가 이강을 시험해보려 했다가, 손도 대기 전에 슬그머니 물러난 일도 있었다. 그날 이강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한 번 마주쳤을 뿐이었다.
'겁먹은 눈이었지. 그 정도로도 충분하거늘, 굳이 손을 쓸 것까지야.'
박도철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하지만 오년 사이, 화로 앞에서 나누는 대화는 조금씩 길어졌다.
"오늘은 몇 초식까지 갔느냐."
"칠식까지요."
"...빠르구나."
박도철의 목소리에 짧은 놀람이 섞였다. 이강은 그저 웃었다.
'빠른 게 아니라, 원래 알던 것을 조금씩 꺼내는 것뿐이지요, 아저씨.'
속으로는 여전히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더 배워야 이 몸이 완전히 넋을 따라잡을지, 그 셈이 매일 밤 화로 앞에서 다시 그려졌다.
가끔은 박도철이 툭 던지는 말에 이강도 멈칫할 때가 있었다.
"너는... 가끔 아이답지 않구나."
"에? 제가요?"
이강은 얼른 눈을 크게 뜨고 억울한 척했다.
"저 그냥 평범한 아인데요!"
박도철은 픽 웃었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캐묻지도 않았다. 그것이 박도철다운 방식이었다.
'저 아저씨, 눈치는 있는데 캐묻지 않는 성정이라 다행이거늘. 만약 다른 자였다면 벌써 의심을 샀을지도.'
그렇게 오년이 흘렀다. 마당의 흙은 목검 자국으로 패었다가 다시 다져지길 반복했고, 감자밭의 이랑은 몇 번이고 갈아엎어졌다. 오두막 지붕도 한 번 새로 이었다. 삐걱거리던 싸리문도 언젠가부터 소리가 줄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 저녁, 박도철이 오랜만에 《위험지 기록노트》를 다시 꺼내들었다.
낡은 표지가 더 낡아 보였다.
화로의 불빛이 노트 위로 일렁였다. 박도철은 한동안 그 낡은 종이를 쓰다듬듯 넘겼다. 손끝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이강아."
"네?"
"내가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이강의 눈빛이 순간 굳었다.
"...사막이요?"
박도철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아직 확인하지 못한 흔적이 남아 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안 된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너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강은 입술을 깨물었다. 겉으로는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저 사막이라는 곳, 저 아저씨의 팔을 앗아간 곳이거늘. 어째서 저리 서두르시는가.'
"...무엇을 확인하시려는 건데요?"
물음에 박도철은 잠시 말이 없었다. 화로 속 장작이 타닥,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오래된 궁금증이다. 알 필요 없다."
박도철의 눈에는 평소와 다른, 조급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 눈빛을 이강은 놓치지 않았다.
'저 눈빛... 서두르시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쫓기시는 것 같기도 하고.'
"금방 돌아오마."
그 말을 하는 박도철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살짝 낮았다. 이강은 그 낮음이 마음에 걸렸으나, 더는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이 바뀔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 날 새벽, 박도철은 짐을 꾸려 홀로 마을을 떠났다.
이강은 마당 어귀까지 배웅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안개가 마당을 낮게 덮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그래."
박도철이 짧게 대답하며 멀어졌다. 뒷모습이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왼팔이 없는 어깨가, 아침 안개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이강은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발길이 떼어지지 않았다. 목검 두 자루가 마당 한편에 그대로 세워져 있는 것을 흘겨보다가, 문득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손이 심심해서였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이강은 매일 아침 감자를 삶았다. 두 개씩 삶던 습관이 남아 있어, 한 개는 늘 식어서 남았다.
두 달이 지나자 마을에도 불안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잡화점 여씨 노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박 사부는 아직도 안 오셨느냐?"
"...아직요."
"그, 원래 그렇게 오래 걸리시는 분이시더냐?"
이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웃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얇은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세 달째 되던 날, 사막 근처 초소에서 소식이 왔다.
박도철의 흔적이 사막 깊은 곳에서 끊겼다는 것이었다.
마차를 타고 온 관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수색은 더 이상 하기 어렵소. 그곳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 힘든 곳이니."
이강은 그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관리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발자국이 어느 모래언덕에서 끊겼다는 것, 그 주변에서 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더 이상의 수색은 국법으로도 무리라는 것.
이강은 그 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겉으로는 멍한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모래언덕이라... 어느 방향이었소.'
관리가 떠난 뒤, 마당에는 여전히 목검 두 자루가 세워져 있었다.
박도철의 유품이라며 몇 가지 짐이 돌아왔다. 낡은 옷가지, 부러진 담뱃대, 그리고 그 안에 낡은 가죽 표지의 책이 있었다.
《위험지 기록노트》.
이강은 그 책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손끝이 떨렸다.
'...허, 이렇게 가시는 겁니까, 아저씨.'
오년 전, 굶주려 쓰러진 자신을 거두어준 손. 무뚝뚝했지만 매일 아침 감자를 삶아주던 손. 놀이라는 이름으로 진짜 검을 가르쳐준 손.
그 손이, 왼팔 하나 없는 채로 사막 어딘가에 남아버렸다.
이강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화로 앞에 앉아 목검 두 자루를 나란히 세워두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하나는 자신의 것, 하나는 박도철이 처음 깎아준 것.
'그 첫날, 이 나무막대를 던져주며 웃던 얼굴이 아직 눈에 선한데.'
밤이 깊었다. 이강은 화로 앞에 홀로 앉아 노트를 펼쳤다.
낡은 글씨체로, 사막의 지형과 위험지대가 하나하나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모래언덕의 이름, 물이 나는 오아시스의 위치, 밤과 낮의 온도 차이, 그리고 곳곳에 붉은 먹으로 표시된 '위험' 지점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박도철이 그 사막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무언가를 쫓았는지가 느껴졌다.
마지막 장에는, 다른 필체로 급하게 써 내려간 짧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
『이강아, 만약 이 노트가 네게 닿는다면. 사막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네가 강해지고 싶다면, 그 답은 사막 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강의 손이 노트 위에서 멈췄다.
'...강해지고 싶다면, 이라.'
글씨는 급하게 쓴 듯 삐뚤빼뚤했다. 마치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미리 남겨둔 유언 같기도 했다.
'아저씨, 당신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오? 돌아오지 못할 것을?'
서른 해를 넘게 산 넋과, 다섯 해를 함께한 사제의 정. 두 개의 무게가 한꺼번에 가슴을 짓눌렀다.
이강은 천천히 검 '잔'을 꺼내 들었다.
검신이 화로의 불빛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아저씨. 당신이 가르쳐준 것은 놀이가 아니었소.'
'그것은 진짜였고, 나는 이제 그것을 갚을 것이오.'
이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낡은 지도 한 장을 내려다보았다. 박도철이 손수 그려둔 것이었다. 마을에서 사막까지의 길, 물을 구할 수 있는 몇몇 지점, 그리고 지도 끝자락에 흐릿하게 적힌 글자.
'죽음의 사막.'
이강은 노트를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밖으로, 멀리 지평선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모래빛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의 사막.
박도철이 삼켜진 그곳이, 이제 이강을 부르고 있었다.
'...본좌가 간다.'
짧은 다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년의 세월과, 그보다 더 오래된 원한과, 이제 막 시작될 여정의 무게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이강은 방 한구석에 놓인 봇짐을 꺼내, 하나씩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말린 감자 몇 알, 물통, 그리고 검 '잔'. 짐은 많지 않았다. 애초에 많이 챙길 것도 없었다.
여씨 노인에게는 뭐라 말해야 할지, 마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이강은 밤새 짐을 꾸렸다.
그리고 그 무게를 짊어진 채, 이강은 마을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사막 깊은 곳에서, 박도철의 마지막 흔적이 끊긴 자리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