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게 편의점 삼각김밥이었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참치마요였는지 스팸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게 인생의 엔딩 크레딧이라니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하다못해 마지막 식사가 근사한 레스토랑이었다면 죽음도 조금은 낭만적이었을 텐데. 나는 삼각김밥 포장지 뜯는 순서도 매번 헷갈리는 인간으로 생을 마감한 셈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줄을 서 있었다. 무슨 줄인지도 모르고 앞사람 등만 보며 서 있었는데, 앞사람의 등에서 스멀스멀 김이 나고 있어서 좀 이상하다 싶었다. 자세히 보니 그 김은 뜨거워서 나는 게 아니라 몸 자체가 조금씩 흐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뒤를 돌아봐도 줄은 끝이 안 보였다. 줄 양옆으로는 회색 벽이 끝없이 이어졌고, 조명이라고 부를 만한 건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흐릿한 빛뿐이었다. 다들 표정이 하나같이 멍했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옆줄에 서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계속 손가방을 뒤적이며 뭔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 손가방 안에도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죽어서도 뭘 찾는 습관은 못 버리는구나 싶었다.
번호표를 뽑는 기계가 있었다. 은행에도 있는 그 흔한 기계, 빨간 버튼을 누르면 종이가 뽑혀 나오는 그 물건이 여기에도 있다는 게 제일 먼저 어이없었다. 종이에는 '망자 1,204,981호'라고 찍혀 있었다.
백이십만 명 넘게 나보다 먼저 죽어서 이 줄에 서 있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오늘 하루치 번호가 이 정도라는 뜻인가. 어느 쪽이든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말이 되나, 이게.
천천히 줄이 줄어들었다. 신기한 건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들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조용히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나만 속으로 온갖 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싶을 때 창구 앞에 섰다. 창구는 딱 관공서 민원 창구처럼 생겼는데, 위에 붙은 안내판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창구 안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검은 정장에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딱 봐도 일 많이 시달린 회사원 같은 얼굴이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했고, 손끝에는 굳은 살 같은 게 배어 있었다. 명찰에는 '서다은'이라고 적혀 있었다.
"강도현 씨."
내 이름을 부르는데 놀랄 기운도 없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이름을 부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안심됐다. 적어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사망 원인이 특이하네요."
"제가 어떻게 죽었는데요?"
그녀는 모니터를 넘겨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승에도 모니터가 있다는 게 제일 먼저 놀라웠다. 액정이 반투명한 종이 같은 재질이었는데, 그 위로 글자가 스스로 움직였다. 마우스도 없고 키보드도 없이, 그녀가 손끝으로 화면을 훑기만 하면 글자들이 알아서 재배열됐다.
"사인 미확정. 천지 순환 규정 제3조 위반 사례로 분류됩니다."
"그게 뭔 소린데요."
"쉽게 말하면, 당신이 왜 죽었는지 저희 쪽에서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 죽음의 원인을 저승 공무원도 모른다니. 그럼 나는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야. 편의점에서 나오다가 트럭에 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집에서 자다가 죽은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았다. 기억이라는 게 죽는 순간 통째로 삭제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인간의 기억이 이렇게 부실한 건지 헷갈렸다.
"저기,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이상한 게 맞아요. 그래서 특이하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서다은은 서류를 몇 장 넘기며 입을 열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보통은 이렇게 되면 세 가지 경로 중 하나로 처리돼요. 환생, 부활, 아니면 대기실행. 그런데 강도현 씨는 세 가지 다 안 돼요."
"왜요?"
"환생하려면 인과율 계산이 끝나야 하는데, 당신 사인이 계산이 안 서요. 부활은 애초에 육체가 훼손도가 심해서 불가능하고요."
훼손도가 심하다는 말에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대체 얼마나 험하게 죽었길래. 몸 상태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답을 듣고 나면 더 무서워질 것 같아서 관뒀다.
"그럼 대기실행은요?"
"그것도 원칙적으로 사인이 확정돼야 대기 순번을 배정할 수 있어요. 사인 미확정 상태에서는 대기실행도 안 됩니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말은 나를 아무 데도 넣을 수 없다는 뜻 아닌가. 환생도, 부활도, 대기도 안 된다면 대체 나는 뭐가 되는 거지. 서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개념일 줄은 몰랐다.
"그럼 저는 뭐예요, 그냥 여기 영원히 서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서다은은 그제야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눈빛이 묘하게 흥미로워하는 것 같아서 더 불안했다. 마치 오랫동안 지루한 서류만 보다가 재밌는 사건 하나를 발견한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그건 저도 몰라요. 다만 이런 사례는 위쪽에서 직접 보시겠다고 하셨어요."
"위쪽이 누군데요."
"염라대왕님."
대답이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실감이 안 났다. 염라대왕이라니, 초등학생 만화책에서나 보던 이름이었다. 뿔 달린 도깨비 얼굴에 커다란 도장을 들고 있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근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게 제일 정상적인 대답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미 은행 창구랑 번호표 기계를 본 마당에 염라대왕 정도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저 그, 염라대왕님이 직접 보신다는 게 좋은 신호예요, 나쁜 신호예요?"
"둘 다 아니에요. 그냥 특이 케이스라 그래요."
"특이 케이스면 뭔가 특별 대우 받는 거 아니에요? 드라마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특별한 존재라서."
"강도현 씨, 여기는 드라마가 아니에요. 특이 케이스는 그냥 서류가 복잡해진다는 뜻이에요."
말이 많아진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서다은은 서류에 도장을 찍고 봉투에 넣었다. 도장 소리가 쩍, 하고 크게 울렸다.
"일단 오늘은 대기실로 안내할게요. 정식 면담은 내일이에요."
"내일이요? 여기 시간도 흘러가요?"
"흘러가긴 하는데, 여기서 하루가 당신 세계에서는 얼마나 걸리는지는 저도 몰라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되돌릴 육체도 없으니까."
말투는 사무적이었지만 은근히 뼈가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왜 이렇게 아프게 들리는지 곱씹을 여유도 없이 대기실로 끌려갔다. 창구에서 벗어나면서 뒤를 한 번 돌아봤는데, 서다은은 이미 다음 번호를 부르고 있었다. 나 같은 특이 케이스도 그녀에게는 그저 하루 업무 중 하나였다.
대기실은 형광등이 반쪽만 켜진 낡은 관공서 대기 공간이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사람들, 아니 망자들은 다들 넋 놓은 표정으로 벽에 걸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하얀 화면이었다. 근데도 다들 시선을 거기 두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는 사람도, 리모컨을 찾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그 하얀 화면 자체가 방송인 것처럼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생각했다. 죽어서도 관료제라니. 신원 미확인 상태로 대기 명단에조차 못 오른 채,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서류 한 장의 무게에 매달려 있었다. 살아있을 때도 대기표 뽑고 두 시간 기다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는데, 죽어서까지 이 짓을 반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살아있을 때는 기다린 끝에 뭐라도 처리가 됐는데, 지금은 기다려도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게 더 절망적이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취소해야 했다. 다행일 게 뭐가 있나. 나는 지금 죽었는데도 아무 데도 못 가는 신세였다. 환생도 못 하고 부활도 못 하고 대기도 못 하는, 세상에서 제일 애매한 망자.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나 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다시 같은 자리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몸이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애초에 이게 몸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손을 들어 살펴봤는데 분명 내 손 같았지만, 만져지는 감각이 이상하게 무뎠다. 살을 꾹 눌러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다는 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옆에 앉은 남자는 아까부터 계속 같은 자세로 굳어 있었다.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여기서 괜히 아는 사람 만들어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강도현 씨, 1204981호. 즉시 접견실로 이동하십시오.]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대기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하얀 화면만 보고 있던 망자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그 눈빛들이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
내일이라더니. 정식 면담은 내일이라고 했으면서, 방금 부른 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