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계 파견 저승 공무원

2화

접견실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대기실에서 나와 처음 마주친 복도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발밑에서 나는 발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신발을 신고 있지도 않은데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여기 물리 법칙은 이승과는 좀 다르게 짜여 있는 모양이었다. 조명은 일정한 간격으로 켜져 있었다. 형광등도 아니고 백열등도 아닌, 뭔가 뽀얀 빛을 내는 알 수 없는 조명이었는데 그 밑을 지날 때마다 온도가 살짝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했다가 서늘했다가, 다시 따뜻했다가. 냉난방을 이렇게 부실하게 하는 관공서는 이승에도 저승에도 있구나 싶었다. 복도 양옆으로는 문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문마다 팻말이 붙어 있었다. '사인규명과', '환생심사과', '부활보류과', '민원상담실'. 심지어 '이의신청센터'라는 팻말도 보였는데, 저승에도 이의신청이 가능하다는 게 위로가 되는지 절망이 되는지 헷갈렸다. "여기 진짜 관공서네요." "관공서 맞으니까요." 서다은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앞장서 걸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음을 옮겼는데,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괜히 걸음을 재촉했다. 뒤처지면 뭔가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면담이에요." "염라대왕이랑 면담하는 게 안 긴장될 리가 있나요."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실제로 보면 별거 없어요." 별거 없다는 말이 오히려 더 무섭게 들렸다. 별거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별거 없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다은의 옆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 무표정 안에 뭔가 애써 감추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왜 자꾸 뒤도 안 돌아보고 말해요? 얼굴 보고 얘기하면 안 돼요?" "버릇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버릇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관된 회피 같았지만, 더 캐물어봤자 시원한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복도 끝에는 접견실 문이 있었다. 두꺼운 원목이었는데, 손잡이가 놋쇠로 만들어져 있어서 만지자 손끝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죽은 사람이 손끝의 온도를 느낀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기해할 여유가 없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넓은 방이 나왔다. 방 안에는 책상 하나, 그 뒤에 앉은 노인 하나가 있었다. 방 자체는 텅 비어 있었는데, 그 텅 빈 공간이 오히려 위압감을 더했다. 벽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고, 창문도 없었다. 있는 건 책상과 노인, 그리고 그 위에 쌓인 서류 뭉치뿐이었다. 노인은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얼굴은 인자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묘하게 날카로웠다. 사극에서 보던 임금님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옷차림과 책상 위에 놓인 붓과 벼루가 어딘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졌다. 벼루 옆에는 태블릿PC 같은 것도 하나 놓여 있었는데, 저승 관공서도 전자결재를 하는 모양이었다. "왔느냐." 목소리가 방 전체를 울렸다. 실제로 방이 흔들리진 않았는데 귀에서는 분명히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몸이 먼저 겁을 먹고 알아서 움직인 셈이었다. "강도현이라 하였느냐." "네, 그런데요." "네, 그런데요? 예의가 없구나." 서다은이 옆에서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겼다. 존댓말 쓰라는 신호였다. 나는 그제야 상황의 무게를 실감했다. 여기서 말 한마디 삐끗하면 정말로 무한 대기가 아니라 뭔가 더 나쁜 형벌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강도현 맞습니다." 노인은 서류를 하나 들어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왜인지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네 죽음이 참으로 기묘하구나. 인과율이 계산되지 않는 죽음이라니, 이백 년 만에 처음 보는 사례로다." "저도 그게 왜 그런지 알고 싶은데요." "나도 모른다." 담백한 대답에 순간 말이 막혔다. 저승의 최고 책임자가 모른다는데 내가 뭘 더 물을 수 있나. 이백 년 만에 처음 보는 사례라는 게 영광인지 재앙인지도 판단이 안 섰다. "이백 년 전엔 어떤 사례였는데요?" 궁금한 걸 못 참고 물었더니 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알 것 없다." 단칼에 잘렸다. 궁금증은 여기까지였다. "환생도, 부활도, 대기도 안 되는 몸이니 어찌할꼬. 규정대로면 너는 무한 대기 상태로 남아야 하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한 대기라니, 그건 영원히 저 형광등 반쪽짜리 대기실에 앉아 있으란 소리 아닌가.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재방송 프로그램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영원히 그걸 봐야 한다면 그건 형벌이지 대기가 아니었다. "그거 진짜 영원히요? 몇백 년 후에 규정이 바뀌거나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 "저승 규정은 삼천 년에 한 번 개정된다." "삼천 년이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지난번 개정도 이천팔백 년 전에 있었으니, 이제 이백 년만 더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말이었다. 노인은 그걸 위로라고 한 건지 협박이라고 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노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서류 하나가 허공에서 저절로 펼쳐졌다. 종이가 스스로 팔랑거리며 펴지는 모습이 신기했지만, 지금 신기해할 때가 아니었다. "네게 제안이 하나 있다." "제안이요?" "저승 공무원으로 임용해주겠다는 말이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죽어서 저승 관공서에 취직하라니, 이게 무슨 부조리극인가. 이승에서도 취업 못 해서 스트레스받았는데 죽어서까지 이력서를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제가 왜 그걸 해야 하는데요?" "안 하면 대기실에서 영원히 있을 것이니라." "···그럼 강제 취업이네요." "강제라니, 정중히 권유하는 것이니라." 권유든 강제든 선택지가 하나뿐이면 그게 강제 아닌가. 나는 속으로 욕을 삼키며 겉으로는 애써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협상의 여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습관처럼 나왔다. "그럼 계약서 같은 거 있어요? 조건 확인하고 싶은데요." "조건이라니?" "근무 시간, 급여, 휴가, 뭐 그런 거요. 저승도 노동법 있죠?" 노인이 눈썹을 슬쩍 올렸다. "이승도 아니고 저승에서 급여를 묻는 놈은 처음이구나." "살아서도 돈 없이는 못 살았는데 죽어서도 다르겠습니까." 노인이 껄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방 전체를 울렸다. 벼루에 담긴 먹물이 그 진동으로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마음에 드는구나. 급여는 저승 화폐로 지급될 것이니라. 이승의 원귀들을 처리하고, 위면을 오가며 임무를 수행하면 수당도 붙는다." "저승 화폐요? 그걸로 뭘 살 수 있는데요?" "저승 시장에서 쓸 수 있느니라. 명부와 부적, 혼백을 다루는 도구들을 살 수 있다." "현금으로 환전은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당연하다는데 왠지 더 억울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화폐라는 건 결국 그 세계 안에서만 굴러가는 모양이었다. "위면이 뭔데요." 서다은이 대신 답했다. "이 세계 말고 다른 세계들이 있어요. 판타지, 신화, 별의별 세계요. 그쪽에도 저승의 관리가 필요한 사안들이 생기거든요." "그런 것도 있어요?" "많아요. 저승은 이 세계 하나만 관리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거기서 원귀도 나와요? 판타지 세계에서 좀비 나오듯이?" "비슷해요. 규칙은 세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죽음이라는 현상은 어디든 있으니까요. 그 현상을 정리하는 게 저승의 일이에요." 뭔가 세계관이 갑자기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지구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세계가 있고, 그 모든 죽음을 저승이 관리한다니.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회사 하나가 알고 보니 다국적 대기업이었다는 걸 알게 된 신입사원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었다. "그러면 저 위면 가면 판타지 세계에서 검이나 마법 같은 것도 볼 수 있어요?" "볼 수는 있겠지만 넋 놓고 구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니라. 임무는 임무니까." 기대감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여행 가서 일만 하고 오는 것과 비슷한 그림이었다. "자, 어찌하겠느냐. 받아들이겠느냐?"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노인은 짐짓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어차피 대기실 티브이 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으니까요." "좋다. 서다은, 이 자를 견습으로 맡거라." 서다은의 표정이 순간 살짝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웃고 있던 입가가 잠깐 멈췄고,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제가요?" "네가 데려왔으니 네가 맡아야지." "저 지금 다른 담당 업무도 있는데요." "그건 네 사정이고, 이건 내 명이니라." 서다은은 뭔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살짝 깨무는 게 보였는데, 그게 억울함인지 곤란함인지 구분이 안 됐다. 대신 나를 힐끗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묘하게 복잡했다. 반가움도 아니고 짜증도 아닌, 뭔가 예감이 안 좋다는 눈빛이었다. "저기, 제가 뭐 문제 있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그럼 왜 그렇게 봐요?" "그냥요." 그냥이라는 대답이 가장 무서운 대답이라는 걸 살아있을 때 배웠어야 했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그 말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인은 다시 서류를 뒤적이며 우리 쪽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미 결재가 끝난 사안에는 더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나가 보거라. 근무는 내일부터 시작이니라." "내일부터요? 저 아직 오리엔테이션도 안 받았는데요." "오리엔테이션은 서다은이 알아서 할 것이니라." 서다은의 눈빛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그때는 전혀 몰랐다. 접견실 문을 나서면서도, 복도를 다시 걸으면서도, 그 서늘한 놋쇠 손잡이를 다시 만지면서도,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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