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이틀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몸속의 그 낯선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밤에 잠들려 눈을 감으면, 가슴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아주 느리게 맥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쿵.
한 번.
쿵.
또 한 번.
(심장 소리와는 달라. 이건... 다른 무언가야.)
나는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낮에는 잊고 지낼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마당을 걷고, 류아가 챙겨준 죽을 삼키는 그 평범한 시간 속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밤이 되면 달랐다.
이불 속에 몸을 눕히면 그 맥동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몸 안쪽에서 누군가 아주 천천히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똑, 똑.
나는 몇 번이나 손을 가슴에 얹고 그 감각을 확인하려 했지만, 손끝에 닿는 건 그냥 평범한 살갗과 뼈뿐이었다.
(밖에서는 안 느껴져. 안에서만... 그것도 나만 느껴지는 것 같아.)
이틀째 되는 날 저녁, 나는 류아와 함께 부엌 마당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마른 나물을 다듬으며 조용히 흥얼거렸다.
노랫소리가 낮게 마당을 채웠다.
익숙한 곡조였다. 처음엔 무슨 노래인지 몰랐는데, 며칠을 듣다 보니 이 몸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온 자장가 같은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 풍경이 딸랑, 소리를 냈다.
마당 한쪽에 심어진 감나무 잎이 살랑거렸고, 그 사이로 저녁 벌레 울음소리가 낮게 스며들었다.
평온한, 지극히 평온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이상했다.
딸랑... 딸그락.
삐걱거리는 듯한, 미묘하게 어긋난 울림.
나는 고개를 들어 처마를 봤다. 풍경은 그저 평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나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불었다. 풍경이 흔들렸다. 딸랑. 지극히 정상적인 소리였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류아가 나물을 다듬던 손을 멈췄다.
"태호 님, 왜 그러세요?"
그녀의 목소리에 살짝 걱정이 섞여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마당 한쪽 어둠에 머물러 있었다.
달빛이 닿지 않는 그 자리, 담벼락과 장독대 사이의 좁은 틈.
그곳에 무언가 짧게 형체를 갖췄다가 사라진 것 같았다.
검은, 아니 짙은 청록빛의 흐릿한 잔상.
마치 물속에서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채로 잠깐 나타났다가 스르륵 스며들었다.
숨을 죽이고 그 자리를 응시했지만 이내 그저 평범한 어둠으로 돌아갔다.
장독대는 그저 장독대였고, 담벼락은 그저 담벼락이었다.
(내 눈이 잘못됐거나, 아니면...)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럴듯한 다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류아는 다시 나물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흥얼거림이 이어졌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노랫소리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류아는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방 안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밤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류아는 늘 저녁 시장에서 삯일을 하고 돌아왔지만, 이렇게 늦은 적은 없었다.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조금씩 방향을 바꾸는 걸 지켜보며, 나는 몇 번이나 문 앞을 서성였다.
(늦어도 술시쯤엔 돌아왔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문밖의 골목은 완전히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오히려 불안을 부풀렸다.
결국 나는 목검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골목은 좁고 어두웠다. 낮에는 사람들로 붐비던 시장통이 밤이 되니 텅 비어 있었다.
가판대는 천으로 덮인 채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지나갔다.
발끝이 흙바닥을 밟을 때마다 미세한 먼지가 일었다.
(류아... 어디 있는 거야.)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목검을 쥔 손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시장 골목을 가로질러 걷는 동안, 몸속의 그 낯선 맥동이 다시 느껴졌다. 이번엔 평소보다 조금 빠른 박자였다.
쿵, 쿵, 쿵.
마치 무언가를 예감하는 것처럼.
골목 끝에서 낮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남자 여럿의 목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떨리는 음성.
"제발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류아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벽 뒤에 몸을 붙였다.
숨을 죽이고 골목 안쪽을 살폈다.
골목 안쪽에 남자 셋이 류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낡은 등불 하나가 벽에 걸려 그들의 얼굴 반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한 명이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밀쳤다.
"시간? 벌써 세 번째다. 네 주인이라는 그 폐인 새끼가 갚을 능력이 있긴 한 거야?"
비웃음이 이어졌다.
다른 남자가 낄낄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 집 다 쓰러져 가던데, 뭐 팔 게 있긴 하냐."
류아가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조금만..."
그녀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빚... 이었나.)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류아가 매일 늦게 돌아오는 이유. 삯일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이 몸이 매일 먹는 죽 한 그릇, 그리고 목검 하나마저도 그녀가 어디선가 빌려온 돈으로 마련된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뜨겁게 조여왔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 밥을 삼키는 동안, 그녀는 이런 골목에서 이런 말을 들으며 돈을 구하러 다녔던 걸까.
(내가... 그동안 몰랐던 거구나.)
남자 하나가 류아의 팔을 낚아채듯 잡았다.
"됐고, 오늘은 다른 방식으로 받아야겠다."
류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놔... 놔주세요!"
그녀가 팔을 빼려 했지만 남자의 손은 꽉 붙들려 놓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벽을 박차고 골목 안으로 뛰어들었다.
탁.
발끝이 흙길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몸속 어딘가에서 그 낯선 감각이 다시 꿈틀거렸다.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 놓지 못해."
내 목소리는 이 몸의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정민준의 것이었다.
낮고, 흔들림 없는.
남자들이 나를 돌아봤다.
등불 빛에 비친 그들의 얼굴엔 순간 놀란 기색이 스쳤다가, 곧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뭐야, 저 폐인이잖아?"
한 명이 코웃음을 쳤다.
"이 새끼가 감히..."
류아의 눈이 커졌다.
"태호 님! 안 돼요, 여긴..."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먹이 눈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피할 각도와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몸은 10년간 방치된 몸이었다. 반응 속도가 생각을 따라오지 못했다.
퍽.
주먹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숨이 턱 막혔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아.)
시야가 잠깐 흐려졌다. 옆구리에서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퍼졌다.
나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흙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무릎을 통해 전해졌다.
류아가 비명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태호 님!"
그녀의 목소리가 골목 안에 울렸다.
남자들이 낮게 웃었다.
"봐라, 저게 뭘 하겠다고."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그리고 그 순간, 골목 어귀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걸음.
일부러 천천히, 힘을 준 발소리였다.
바닥을 딛는 소리 하나하나가 이상하게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그 발소리의 주인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류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남자들도 그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 강태호."
진태준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걸린 웃음이, 등불 빛 아래에서 유난히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