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전생에서 나는 총알보다 빨리 뛰던 인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총알을 피해 뛰어야 하는 직업이었고, 그래서 빨리 뛰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서른 살 넘게 살아본 동료를 본 적이 없는 업계였다. 나도 그 평균을 넘기진 못했지만, 죽던 순간까지도 꽤 화려하게 죽었다고 자평한다. 최소한 등 뒤에서 칼 맞고 죽진 않았으니까.
마지막 임무에서 정체불명의 유물 하나를 만졌고, 그게 하필 검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유물 회수는 원래 내 담당이 아니었는데, 담당자가 배탈이 나서 대타로 들어간 게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사소한 배탈 하나가 사람 하나를 다른 세계로 보내버린다.
검 이름은 경천검이라고 했다. 나를 이 세계로 던져 넣은 그 물건은 지금 내 몸속 어딘가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다. 얌전하다는 표현은 사실 틀렸다. 저놈은 절대 얌전한 적이 없었다.
청림촌은 변경의 작은 마을이다. 마수가 담벼락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일상이고, 아이들도 여섯 살이면 목검 하나쯤은 쥐는 동네다. 순박한 시골 마을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언젠가 죽을 걸 알면서도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나는 여기서 열세 살 이도윤으로 살고 있다. 다섯 살 때부터 검을 잡았으니 올해로 여덟 해째다.
문제는 여덟 해 동안 검원기라는 걸 단 한 번도 형성해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검원기는 이곳 사람들이 내공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름이다. 단전에 기운을 모아 굳히면 그게 검원기가 되고, 그걸 압축하면 검기가 되고, 그걸 자유자재로 다루면 인계급 경지에 오른다고들 한다. 나는 그중 아무것도 못 했다. 여덟 해 동안 매일 좌선을 했는데도 단전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남들은 삼 년만 앉아도 뜨끈한 게 배꼽 아래서 느껴진다는데, 나는 그냥 다리만 저렸다.
오늘 아침도 다르지 않았다. 새벽부터 마당에 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숨을 코로 들이켜고 아랫배로 내리는 시늉을 여덟 해째 하고 있으면 이제 시늉인지 진짜인지 구분도 안 된다. 해가 뜨고, 새가 울고, 옆집 개가 짖고,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결과는 늘 같았다.
"오늘도 안 됩니까."
스승이자 양부인 강무헌이 물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사람이라 질문인지 확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저 사람 얼굴에서 감정을 읽는 건 돌덩이에서 표정을 찾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안 되네요. 근데 그거 아세요? 여덟 해나 안 되면 그것도 재능이에요."
"..."
"이 정도면 대기록 아닙니까. 마을 사당에 이도윤이라고 이름 하나 새겨줘야 하는 거 아닌지."
강무헌은 대답 없이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저 반응, 여덟 해 동안 봐온 반응이다. 화도 안 내고 웃지도 않는다. 그냥 저러다 밥을 차려준다. 처음엔 그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최소한 오늘도 쫓겨나진 않는구나, 하는 계산이 먼저 선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 했느냐. 그 몸뚱이는 애초에 그런 걸 담을 그릇이 아니라고.'
검 속의 목소리였다. 경천검의 잔재의식이라나. 나는 편하게 영감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정중하게 대해줬는데, 대접이 좋으면 좋을수록 요구가 늘어나는 족속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밥은 안 먹으면서 말은 참 많다. 열세 살짜리 몸에 들어와 사는 것도 서러운데 내 몸속에 세입자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억울했다. 월세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영감님은 그럼 대안이 있으신가요."
'있지. 나한테 조금씩 내주면 된다. 아주 조금씩만.'
"거절할게요."
'아직 뭔지 듣지도 않았잖느냐.'
"들어봤자 손해 볼 게 뻔한데 뭘 들어요."
'허어, 세상 참 야박하게 배웠구나.'
"전생에 그렇게 배워서 여기까지 살아남았거든요."
영감이 무얼 원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내줄 때마다 몸이 서늘해지고 손끝이 시려온다는 것만 안다. 지난달에도 한 번 홀린 듯 기운을 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날 밤새 손끝이 얼음장 같았다. 이불을 세 개나 덮었는데도 소용없었다. 공짜로 힘을 주는 존재는 없다는 걸 전생에서부터 배웠다. 특히 저렇게 능글맞은 목소리를 가진 존재라면 더더욱.
생계도 문제였다. 청림촌에서 검원기 없는 사냥꾼은 그냥 짐이다. 아무리 검을 잘 휘둘러도 마수 가죽 하나 못 뚫으면 그건 그냥 몽둥이질이다. 나는 그동안 약초를 캐거나 마수 시체 손질을 도와주며 잔돈을 벌었다. 열세 살짜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정도였다.
오늘 아침에도 옆집 아주머니한테 산나물 손질을 해주고 계란 세 알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손이 빠르다며 칭찬을 했는데, 그 칭찬이 검술에 관한 게 아니라 나물 다듬는 솜씨에 관한 것이라는 게 조금 서글펐다.
"이거 받으려고 여덟 해를 버틴 건 아닌데."
혼자 중얼거리며 계란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계란 세 알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인생이라니, 전생의 나였다면 웃었을 거다. 총알 사이를 뛰어다니던 놈이 이제는 계란 세 알에 하루 기분이 정해진다.
마을 어귀에서 강무헌과 마주쳤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검 한 자루를 등에 메고 있었다. 낡은 목갑에 든 검이었는데,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강무헌은 평소 검을 등에 메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다. 저 양반이 무기를 챙긴다는 건 뭔가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목갑은 낡았고 칠이 벗겨진 자리마다 짙은 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오래된 피인지 그냥 나무 자체의 색인지 구분이 안 됐다. 검자루 끝에 매달린 술은 색이 바래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마치 저 검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도윤아."
이름을 부르는 것도 드문 일이다. 평소에는 '너' 아니면 그냥 눈짓으로 불렀다. 이름까지 붙여서 부르니 소름이 조금 돋았다.
"네?"
"오늘 밤, 사당으로 와라."
사당이라니. 마을 사당은 명절 때나 죽은 이 장례 치를 때 말고는 아무도 안 가는 곳이다. 거기 왜 오라는 건지 짐작도 안 갔다. 게다가 밤이라니, 낮에도 안 가는 곳을 밤에 오라는 건 좋은 의미일 리 없었다.
"저 오늘 저녁 계란찜 해 먹으려고 했는데요."
"계란찜은 내가 만들어놓겠다."
"진짜로요? 소금 간 맞춰서요?"
"..."
"양파도 넣어서요?"
강무헌은 대답 대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저게 저 사람 나름의 웃음이라는 걸 여덟 해 살면서 겨우 알아챘다. 그 말을 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이상하게 무거워 보였다. 검을 멘 등이 평소보다 넓어 보이기도 하고, 걸음이 평소보다 느려 보이기도 했다.
여덟 해 동안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곳으로 부르는 이유가 뭘까, 계산이 빠르게 돌았다. 검원기 형성에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 사당에서 의식을 치르려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여덟 해나 안 된 재능 없는 놈을 그만 포기하려는 건가. 후자라면 계란찜은 유언 같은 것이려나, 하는 생각이 들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도 그랬다.
좋은 예감은 아니었다.
'저것 봐라. 뭔가 시작되려는 모양인데.'
영감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나쁜 신호였다. 저 목소리가 즐거워질 때마다 내 쪽은 늘 손해를 봤다. 손끝이 벌써부터 시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영감님은 뭐 아는 거 있어요?"
'글쎄다. 다만 여덟 해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은 아니지, 그 강무헌이라는 자는.'
"그게 무슨 뜻인데요."
'가보면 알겠지.'
더 캐물어도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영감은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입을 다무는 재주가 있었다.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안 알려주는 게 저놈의 특기다.
계란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을 봤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밤이 오려면 아직 몇 시간이 남았는데, 그 몇 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여덟 해 만에 처음으로 사당 문턱을 넘는 밤이다. 계란찜 냄새가 벌써부터 코끝에 어른거렸지만, 정작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