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강무헌이 떠난 지 두 달째, 나는 겨우 검원기 초입 정도에 도달해 있었다.
여덟 해 정체에 비하면 폭발적인 성장이었다. 그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좀 대단하게 여겨도 될 것 같았는데, 문제는 그렇다고 밥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검원기든 뭐든 씹어먹을 수는 없었다. 쌀독은 여전히 얕았고 계란값은 지난달보다 또 올라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청림촌 사냥꾼 무리에 끼워달라고 임건우를 찾아갔다.
임건우는 이 마을 사냥꾼들의 대표 격인 사람이었다. 팔뚝이 내 허리만큼 굵고, 웃을 때 앞니 하나가 없는 자리가 훤히 보였다. 그 이가 언제 어떻게 빠졌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고, 임건우 본인도 매번 다른 이야기를 했다. 곰이었다는 둥, 마수였다는 둥, 술 취해 넘어졌다는 둥.
"도윤이 너, 검원기 잡았다며?"
"이제 막 잡았어요. 아직 검기는 무리고요."
"그 정도면 됐어. 이번 원정 별거 아니야. 저급 마수 하나 잡으러 가는 거고, 너는 뒤에서 짐이나 나르면 돼."
말이 너무 쉬웠다.
전생 경험상 저렇게 쉽게 말하는 임무일수록 뒤통수 맞을 확률이 높았다. 위험수당은 짜게 부르고 위험은 후하게 쳐주는 것이 이 바닥의 오랜 전통이었다.
"품삯은 얼마나 쳐주시는데요."
"은자 세 냥."
"다섯 냥은 받아야 짐꾼 노릇 하죠."
"넉 냥. 더는 안 돼. 너 아직 등급도 없잖아."
"넉 냥 반이요."
임건우가 앞니 빠진 자리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린 게 흥정은 야무지네. 좋다, 넉 냥 반."
그렇게 계란값이 아쉬운 처지라 순순히 따라나섰다. 넉 냥 반이면 이번 달 밀린 곡물값을 갚고도 좀 남았다. 나쁘지 않은 장사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원정대는 여섯 명이었다. 임건우를 포함해 다들 인계 6급에서 7급 사이라고 했다. 등급도 없는 나를 껴준 건 순전히 짐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들었다. 원래 데려가려던 젊은이 하나가 발목을 다쳐 빠졌다고 했다.
"운이 좋았네, 도윤이."
동료 사냥꾼 하나가 그렇게 말했을 때만 해도 나는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산길을 사흘 타고 들어가자 마수의 흔적이 짙어졌다. 나무껍질에 긁힌 자국이 사람 손바닥만 한 크기로 규칙적으로 나 있었고, 짐승 뼈 무더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뼈에는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마치 정갈하게 발라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른 흙바닥.
"이거 좀 이상한데요."
"뭐가."
"흙이 왜 이렇게 말라있죠. 여긴 계곡 근처잖아요. 이슬만 맞아도 눅눅해야 정상 아니에요?"
임건우는 대충 웃어넘겼다.
"저급 마수라도 영역표시는 하니까. 오줌 갈기면 그 주변 흙이 마르는 놈들도 있어."
납득이 안 됐지만 임건우가 저 정도 짬밥이면 나보다는 더 알겠지 싶어 넘겼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이미 계산이 어긋나고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
영감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뭔 냄새요.'
'모른다. 다만 오줌 냄새는 아니다. 짐승이 아니라 다른 것의 흔적이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영감이 저런 식으로 겁을 주는 게 처음이 아니었고, 열에 아홉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날 밤 야영지에서 처음으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부는 방향과 상관없이 나무 위쪽에서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났다. 낮고 길게 늘어지는, 사람이 낼 수 없는 음역의 소리였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동료 사냥꾼 하나가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았다.
"뭐야, 뭐가 지나갔어."
아무도 못 봤다고 했다. 나도 못 봤다. 다들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아무 말도 못 하는 시간이 한참 이어졌다. 모닥불이 파삭거리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착각이겠지. 산짐승 소리일 거야."
임건우가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다들 그 말을 믿고 싶어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나만 한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야영지 주변 나무 세 그루가 밑동부터 회전하듯 잘려 쓰러져 있었다.
도끼로 벤 것도 아니고 검으로 벤 것도 아닌, 마치 바람이 칼처럼 지나간 듯한 절단면이었다. 나무의 단면이 유리처럼 매끈했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소름이 돋을 만큼 깨끗했다.
"저급 마수가 이런 걸 한다고요?"
"···글쎄다."
임건우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자신 없는 기색이 묻어났다.
동료들도 눈치를 챘는지 목소리가 부쩍 줄었다. 짐 정리를 하던 손들이 평소보다 느렸고, 서로 말을 걸 때 목소리를 낮췄다. 계산이 어긋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돌아가는 게 낫지 않아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뭐 남는 게 있어. 조금만 더 보고 판단하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임건우도 확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넉 냥 반짜리 계약서가 순식간에 목숨값보다 값어치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쯤에서 빠지고 싶은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이미 늦었다.'
'알아요. 알아서 더 짜증나요.'
추적을 계속해 계곡 안쪽 동굴 앞까지 다다랐을 때, 마침내 그것을 봤다.
회색빛 털에 붉은 눈, 몸집은 송아지만 하고 등줄기를 따라 회오리 같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놈이 숨을 쉴 때마다 주변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놈이 앞발을 살짝 들자 주변 낙엽이 소용돌이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낙엽들이 마치 놈의 명령을 받는 것처럼 정확한 궤도로 돌았다.
"저게 저급이라고요?"
내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계산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걸 확신했다. 저급 마수는 저런 걸 못한다. 저급 마수는 그냥 물고 뜯고 도망가는 것들이지, 풍계 마법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놈은 최소 중급,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임건우가 말한 저급이라는 단어와 눈앞의 광경 사이의 낙차가 너무 커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동료 하나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뭔데 저런 게."
"···혈랑왕."
임건우가 뒤늦게 내뱉은 이름이었다. 목소리에 후회가 잔뜩 묻어 있었다.
"혈랑왕이요? 그거 인계 몇 급짜리인데요."
"···몰라,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어. 이 산에 있을 리가 없는 놈인데."
혈랑왕이라는 이름 자체를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전생 어느 기록에서 스치듯 본 이름이었다. 그때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그 기록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깨달았다. 기록은 종이 위에서만 무해했다.
혈랑왕은 우리 쪽을 슬쩍 돌아보고는 다시 유유히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마치 지금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우리를 위협으로도 안 봤다는 뜻이었다.
동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었다. 나도 굳었다. 다만 나는 그와 동시에 계란값을 다시 계산하고 있었다. 이 정도 위험수당이면 못해도 세 배는 받아야 했다. 넉 냥 반이 아니라 열 냥은 받아야 이 목숨값에 어울렸다.
"이제 어떻게 해요?"
내가 물었다. 임건우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나머지도 그 뒤를 따랐다. 짐꾼인 나는 제일 마지막에 움직였다.
'재수 없이 걸렸구나.'
영감이 낮게 웃었다. 즐겁다는 투였다.
나는 그 웃음소리가 이번엔 전혀 반갑지 않았다.
동굴 입구에서 뒤돌아보는 사이, 어둠 속에서 붉은 두 눈이 다시 우리를 향해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