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혼돈을 품은 후계자

1화

천장이 낯설었다. 나무 서까래가 촘촘히 짜인 천장, 그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빛. 나는 눈을 뜬 채로 한참을 그것만 바라보았다. 색이 옅은 나무였다. 옹이가 두 군데 박혀 있고, 서까래 하나는 살짝 휘어 있었다. 이런 방에서 잔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삶 중 어느 쪽에서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공기 냄새부터 달랐다. 화약 냄새도, 젖은 흙 냄새도 없었다. 대신 마른 나무와 아마 침구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풍기는 은은한 약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저택 전체에 배어 있는 냄새였다. 손을 들어보았다. 작았다. 손가락이 짧고 마디가 여물지 않은, 아이의 손이었다. 손톱 밑에 흙 자국조차 없었다. 총상도 파편 자국도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며 굳어졌던 굳은살조차 없었다. 손등을 뒤집어 보고, 손바닥을 펴 보고, 다시 접었다. 낯설었다. 내 손이었는데 내 손이 아니었다. 기억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총성과 명령, 야간 침투와 마지막 폭음. 상관의 무전, 동료의 신음, 발밑에서 흔들리던 흙바닥. 특종병으로 살았던 삶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방, 이 저택,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던 씁쓸한 맛이었다. 독이었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던 그 온도까지 선명했다. 누군가 웃고 있었다. 얼굴 두 개가 겹쳐 떠올랐다. 유민호. 장서혁. 둘 다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두 개의 삶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죽었다. 나는, 이현성으로 죽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현성의 몸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 있었다. 열두 살. 죽기 전보다 한참 어린, 이 몸이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시절. 됐다. 살아있다는 사실부터 정리하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관절이 어색했다. 30대 성인의 균형 감각으로 12세 소년의 몸을 움직이려니 첫 걸음부터 휘청거렸다. 다리가 예상보다 짧았고, 무게중심이 이상한 곳에 잡혀 있었다. 침대 기둥을 붙잡고서야 겨우 섰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살짝 가빠졌다. 근육이 아직 이 정도 지탱도 못 하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여자아이 목소리였다. 문이 살짝 열리고, 앳된 얼굴이 들어왔다. 갈색 머리를 짧게 묶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린 하인 복장이었다. 손에는 물이 담긴 작은 대야를 들고 있었다. 이름이 저절로 떠올랐다. 소연. 이 저택에서 나를—이현성을—오래 섬긴 아이였다. "일어났다." 나는 최대한 평소처럼 대답했다. 목소리가 낯설게 갈라졌다. 아이의 성대였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감기 걸리신 거 아니에요?" 소연이 다가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작은 손이 시원했다. "아니다. 괜찮다." 짧게 끝냈다. 더 말을 섞으면 뭔가 티가 날 것 같았다. "어제도 똑같이 말씀하셨잖아요. 며칠째 잠도 잘 못 자시고." 소연이 대야를 협탁에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마님이 아셨으면 벌써 의원 불렀을 텐데." 며칠째, 라는 말이 걸렸다. 이현성이 이 몸으로 며칠 동안 이미 뭔가를 겪고 있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습관적인 잔소리인가. 지금은 판단할 수 없었다. 일단 넘겼다. 소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세숫물을 준비하겠다며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숨을 길게 내뿜었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거울 앞에 섰다. 낯선 얼굴이 있었다. 검은 머리, 마른 뺨, 아직 어린 눈매. 눈썹 사이에 옅은 흉터가 하나 있었다. 이현성의 것인지, 아니면 원래 없던 게 지금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눈동자 안쪽에는 도저히 열두 살짜리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거울 속 그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눈꺼풀을 몇 번 깜빡여 보았다. 눈동자만은 절대 어려지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다. 다행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세숫물로 얼굴을 씻는 동안에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하인들 사이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시선을 피하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였다. 30대의 정신이 12세의 얼굴을 하고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는 게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인 줄은 몰랐다.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하인들이 허리를 굽혔다. 나는 그 인사를 받는 법조차 몰라서, 그냥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 것으로 때웠다. 다행히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도련님이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었나 보다. 식당으로 가는 복도에서 가슴 한가운데가 미약하게 울렸다. 두근, 두근이 아니었다. 그보다 낮고 무거운 진동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옷 위로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안쪽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것이 흔들리고 있는 감각이 분명히 있었다.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보았다. 진동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됐다. 뭐지, 이건. 심장 박동은 정상이었다. 열도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다만 그 진동만이, 마치 누군가 문 뒤에서 노크를 하려다 마는 것처럼, 몇 번이고 잦아들었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규칙이 없었다. 세 번 짧게 울리다가, 한참 뜸을 들이고, 다시 한 번 길게. "도련님?" 뒤에서 소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가세요?" "간다." 나는 손을 내리고 다시 걸었다. 별일 아니다. 별일 아닐 것이다. 걸으면서도 손끝은 계속 가슴 쪽으로 향했다. 소매 안에서 몰래 눌러봤지만 진동은 이미 멎어 있었다. 식당에는 아버지가 먼저 앉아 있었다. 이대호. 이 저택의 주인이자 영주, 그리고 이현성의 아버지였다. 희끗희끗한 관자놀이, 넓은 어깨, 그리고 입가에 새겨진 깊은 주름 두 줄. 손에는 두꺼운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인장이 찍힌 봉투가 몇 개 더 쌓여 있었다. 서류를 보다가 나를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잤느냐." "예." 나는 자리에 앉으며 최대한 짧게 답했다.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몸에 남은 습관인지, 30대 시절 상급자를 대하던 버릇인지 헷갈렸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몇 초간 더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눈빛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눈을 맞췄을 뿐이었다. "오늘은 안색이 좀 다르구나." 그가 말했다. 망했다. 벌써 티가 났나.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이 스쳐 지나갔다. 잠을 못 잤다, 꿈을 이상하게 꿨다, 몸이 좀 안 좋다. 그중 가장 무난한 걸 골랐다. "잠을 설쳐서 그런가 봅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겼다. 다행히 아버지는 더 캐묻지 않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눈치를 살피며 어른들이 밥 먹는 속도, 예법 같은 걸 대충 따라했다. 다행히 이현성의 몸에도 습관이라는 게 남아 있는지, 손이 저절로 움직여 수저를 정확한 위치에 내려놓았다. 몸이 기억하는 것과 정신이 기억하는 것이 따로 노는 감각이었다. 이상했지만, 편했다.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이 몸에 대해 조금씩 정리했다. 이현성. 이씨 가문의 유일한 적자. 열두 살. 저택 안에서는 다들 나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하인들의 눈빛, 아버지의 시선, 심지어 국을 나르는 시녀의 걸음걸이까지도 뭔가 조심스러웠다. 그 조심스러움 뒤에 뭔가 다른 게 섞여 있다는 걸 느꼈지만, 정확히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걱정인지, 두려움인지, 혹은 둘 다인지.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뒤, 나는 문을 잠그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제야 참았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놓을 수 있었다. 나는 특종병이었다. 야간 작전 중 사망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현성이라는 소년의 마지막—독에 쓰러지던 순간—과 겹쳐졌다. 유민호와 장서혁. 그 둘의 얼굴이 죽는 순간 가장 선명하게 남았다. 웃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왜 웃었는지, 무엇 때문에 독을 탄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웃음이 진심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둘이 아직 나를 해치지 않은 시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복수를 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고, 힘도 없고, 몸도 어렸다.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침대 기둥 없이는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그저 열두 살짜리 몸으로 저택 안을 어슬렁거리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창가로 다가가 창틀에 손을 얹었다. 나무 질감이 매끈했다. 자주 닦은 흔적이었다. 이 방의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이현성의 기억이 조금씩 스며드는 건지, 몸이 알던 걸 눈으로 확인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가슴 한가운데의 진동이 다시 시작된 건 그때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었다. 나는 옷깃을 풀고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살갗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매끈했다. 그런데 만지면 만져질 것 같은, 살갗 아래에 뭔가 있는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손톱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아팠다. 그냥 통증이었다. 그런데 진동은 그 통증과 별개로, 여전히 안쪽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괜찮다. 지금은 괜찮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몇 번이나 되뇌어야 했다. 창밖으로 저택의 정원이 보였다. 늙은 나무 몇 그루와 다듬어진 산책로. 그 위로 소연이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이 작게 보였다. 바람에 흰 천이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평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평범함이 언젠가 다시 뒤틀릴 거라는 걸. 유민호와 장서혁의 웃음이, 언젠가 저 정원 어딘가에서 다시 나를 향해 지어질 거라는 걸. 가슴속의 그것이, 세 번째로 울렸다. 이번엔 진동이라기보다는, 뭔가 말을 걸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짧게, 길게, 다시 짧게. 마치 규칙을 가진 신호처럼.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박자를 세어보려 했다. 하나, 둘, 셋— 거기서 멈췄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 소연이 빨래를 터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이게 뭔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몸 안에 뭔가가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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