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밤이 깊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잠들 수 없었다. 가슴 안쪽의 그것이 아까부터 계속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냥 심장이 이상한가 싶었다. 이 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원래 주인의 지병 같은 게 남아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증이 아니었다. 아팠다면 오히려 나았을 거다. 이건 울림이었다. 종을 친 듯한 진동이 규칙적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오분, 십분이 지나도 그 울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또렷해졌다.
좋아. 정면으로 붙어보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손을 가슴에 얹고 눈을 감았다. 특종병 시절, 부상 상태를 자가 진단하던 훈련이 있었다. 몸의 이상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정확히 짚어내는 것. 그때의 방식대로 감각에 집중했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고. 진동의 근원을 찾아 몸속을 더듬듯 의식을 밀어넣었다.
진동은 명치보다 조금 위, 심장 바로 아래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거기서 멈췄다. 확신이 들었다. 이건 그냥 심장이 아니다. 뭔가가 그 자리에 따로 있다.
『들리는군.』
목소리였다.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마치 여러 겹의 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듯한 음성이었다. 하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겹쳐 들렸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촛불조차 켜지 않은 어둠뿐이었다. 창밖에서 벌레 우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미친 게 아니라면, 이건 진짜다.
"누구냐." 나는 낮게 물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하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지만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놀랄 것 없다. 나는 네 안에 있다. 정확히는, 네가 가지고 있다.』
가슴이 다시 한번 크게 울렸다. 이번에는 눈을 감아도 뭔가 보였다. 은빛으로 빛나는 작은 구체. 마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표면에 잔물결 같은 무늬가 흘렀다. 물속에 비친 달빛처럼, 은은하게 일그러졌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는 무늬였다. 눈을 떠도 그 잔상이 눈꺼풀 안쪽에 남아 있었다.
"이게 뭐냐." 나는 물었다. 놀란 것치고는 목소리가 담담했다. 아마 특종병 시절의 감각이 여전히 남아있어서일 거다. 위기 상황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훈련은 죽어도 몸에 남는다더니, 정신이 갈려도 습관은 안 죽나 보다.
『나는 아사의 심장이다.』 목소리가 말했다. 『혼돈의 신물이며, 대륙에 남은 마지막 봉인의 관리자다. 그리고 지금, 너의 몸속에 있다.』
이름부터 거창했다. 대사만 들으면 무협 영화 나레이션 같은데, 실제로 몸속에서 뭔가 진동하고 있으니 웃을 수도 없었다.
"왜 내 몸속에 있는데."
『네가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런 순간에도 저 대사는 너무 상투적이다 싶었지만, 눈앞에서 은빛 구체가 진동하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선택받았다는 말은 늘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정작 선택한 쪽의 사정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선택이라니. 나는 선택된 적이 없는데."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죽는 순간, 나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너의 영혼이 그 자리에 겹쳐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지금 이 몸 안에는 세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원래의 육신, 원래의 영혼 일부, 그리고 너.』
뒤섞였다는 말에 등골이 서늘했다. 이현성의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유가 그거였나. 손끝의 습관, 말투, 심지어 소연을 볼 때 드는 낯익은 감정까지도. 전부 남의 것이 아니라 뒤섞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 혼자만 이 몸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군."
『정확하다. 다만 원래 영혼의 대부분은 흩어졌다. 남은 것은 파편일 뿐. 네가 주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파편이라. 죽은 사람의 부스러기를 안고 살아간다는 소리를 이렇게 사무적으로 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넌 나한테 뭘 원하는 거냐."
『당장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구체가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다만 규칙을 정해야 한다. 나는 혼돈의 힘을 다룬다. 이 힘은 다스리는 자에게조차 위험하다. 함부로 드러내면 너와 나, 둘 다 위태로워진다.』
"구체적으로 뭘 하지 말라는 거냐."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발현시키려 하지 마라. 남들 앞에서 시험하지 마라. 그리고—』 구체가 잠시 말을 멈췄다.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 앞에서는 절대 나를 드러내지 마라.』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마지막 조건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게,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거지?"
『아직은 말할 수 없다. 시기가 아니다.』
딱 잘라 끊는 대답이었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다그친다고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일단 물러섰다. 상대가 신물이든 뭐든, 대화의 리듬이라는 게 있다. 몰아붙인다고 순순히 답이 나오는 상대가 아니라는 건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좋다. 그럼 이 힘이라는 걸 내가 직접 쓸 수는 있는 건가."
『가능하다. 다만 훈련이 필요하다. 무작정 끌어올리면 몸이 먼저 부서진다.』
"부서진다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이지."
『혈관이 역류하고, 뼈가 뒤틀리고, 심장이 멈춘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모를 감각이다.』
담담한 말투로 사람 몸이 부서지는 과정을 나열하는 걸 들으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신물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태연한 존재인가.
"그럼 훈련은 언제, 어떻게 하는 거냐."
『서두르지 마라. 각성 의식이 먼저다. 그 전에 힘을 함부로 건드리면 의식 자체가 실패로 돌아간다.』
"좋아. 그럼 이건 언제 다시 대화할 수 있는 거냐."
『네가 나를 부르면 된다. 다만 대낮에, 사람들 눈이 있는 곳에서는 피해라.』
"공존의 규칙이라는 거군."
『정확하다.』
구체의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참 동안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몸속에 신물이 하나 들어앉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이 몸 자체가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남의 몸, 남의 기억, 이제는 남의 신물까지. 목록이 하나 늘어난 것뿐이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눈두덩이 뻑뻑했고, 목이 말랐다. 물그릇을 찾아 더듬거리며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다음 날 아침, 소연이 세숫물을 들고 들어왔을 때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끼익.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가슴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 소연이 세숫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들어오며 나를 살폈다.
"어제 잠 못 잤어요?" 소연이 물었다. 대야를 내려놓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조금." 나는 짧게 답했다.
"눈이 완전 벌겋네요." 소연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말했다. "요즘 도련님 좀 이상해요.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뭔가 들킨 기분에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소연의 표정에는 의심보다는 순수한 걱정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입술을 오므린 채 나를 바라보는 얼굴. 저 얼굴을 보면 거짓말을 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런 거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겼다.
"의원 불러드릴까요?"
"아니, 괜찮다."
"진짜요? 안색이 진짜 안 좋으신데." 소연이 손을 뻗어 내 이마에 대려다가 멈췄다. 손끝이 잠깐 허공에 떠 있다가, 다시 무릎 위로 내려갔다. 습관처럼 나오려던 손짓이었을 것이다. 예전 도련님한테는 저렇게 자연스럽게 손을 댔었나 보다.
소연은 여전히 뭔가 마음에 걸리는 얼굴이었지만, 더 캐묻지 않고 세숫물을 정리했다. 대야를 옆으로 밀어놓고, 수건을 접어 옷걸이에 걸었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이 방에서 몇 년째 반복해온 일이라는 게 동작 하나하나에서 드러났다.
나가려던 그녀가 문 앞에서 멈춰 서더니 돌아보았다.
"도련님, 이번 각성 의식 다시 하신다는 거 진짜예요?"
"진짜다."
"…무서우세요?"
예상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잠깐 침묵했다가 답했다.
"무섭다기보다는, 이번엔 다를 거라는 확신이 있다."
말하고 나서 스스로도 좀 놀랐다. 확신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쉽게 나올 줄은 몰랐다. 어젯밤에 은빛 구체와 나눈 대화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오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연이 살짝 웃었다. "그런 말투, 예전 도련님이랑 진짜 다르네요."
"어떤 식으로 다른데."
"예전 도련님은 늘 겁먹은 얼굴로 괜찮다고만 하셨어요. 지금 도련님은… 진짜 괜찮아 보여요. 이상하게."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소연이 나가고 문이 닫힌 뒤, 나는 다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구체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존재감만은 여전히 뚜렷했다. 손바닥 밑에서 미세하게 맥동하는 느낌. 마치 작은 짐승이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세숫물에 얼굴을 씻으며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현성의 얼굴이었다. 원래는 낯설었던 얼굴이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눈 밑의 다크서클, 살짝 튀어나온 광대. 며칠 사이에 부쩍 야윈 것 같기도 했다. 밤새 신물과 씨름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기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각성 의식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그 안에 이 힘을 어느 정도까지 다룰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부터는 이 은빛 구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공존의 규칙은 세워졌다. 문제는, 그 규칙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였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던 그 말. 시기가 아니라며 얼버무리던 목소리의 미묘한 떨림. 신물이라는 존재가 사람처럼 감정을 숨길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뭔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무엇이, 신물조차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위험한 걸까.
수건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마당 저편에서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로운 아침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평화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각성 의식까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