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원래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었던 적은 있으나, 죽은 뒤로 오랫동안 사람이 아니었다.
저승 십대왕 중 전륜대왕 밑에서 죽은 자들의 죄업 장부를 정리하던 판관이었다. 무슨 실수를 했는지, 어떤 업을 다 갚지 못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전륜대왕이 나를 이 몸에 처넣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몸의 원래 주인 이름은 이서준. 청현문의 마지막 남은 제자였다.
문제는 이 몸이 지독하게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구음절맥. 태어날 때부터 몸속 기운이 차갑게 뒤틀려서, 스물다섯이 되기 전에 선천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그대로 얼어 죽는다 했다. 게다가 영근단절. 기를 받아들이는 뿌리 자체가 끊겨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수련이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몸이었다.
"이서준을 문파에서 내보내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장로 셋이 앉은 낡은 탁자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서준의 몸이 그렇게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세입자처럼 얹혀 있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목소리들이 차례로 떨어졌다. 방 안 공기가 한층 서늘해졌다. 내 체온과는 상관없는 서늘함이었다.
"사형."
서다연이 앞으로 나섰다. 문파의 실질적인 살림을 도맡은 사제였다. 응기 구층. 동년배 중에는 적수가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이서준은 사부님의 아들입니다."
"그렇다고 문파 곡식을 축내게 둘 수는 없다."
장로 하나가 냉정하게 잘랐다.
"곡식 창고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가. 겨울을 넘기기도 빠듯해."
나는 슬쩍 손을 들었다.
"그럼 제가 나가면 남은 분들 끼니는 넉넉해집니까."
"..."
장로들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진지한 자리에서 나올 질문이 아니었다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이서준."
서다연이 낮게 내 이름을 불렀다. 경고였다.
"압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검을 오래 쥘 힘도 없고, 기를 모을 방법도 없었다. 문파 입장에서 나는 밥만 축내는 짐짝이었다.
"오라버니."
옆에서 작은 손이 내 소매를 잡았다. 이소아였다. 여섯 살, 사부님이 길에서 주워 온 아이. 눈이 붉게 부어 있었다.
"가면 안 돼."
나는 그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원래 이 정도로 차가운 손은 아니었을 텐데, 라고 문득 생각했다. 이 몸의 원래 기억과 내 기억이 뒤섞이면서, 무엇이 원래 것이고 무엇이 새로 얹힌 것인지 요즘은 헷갈릴 때가 많았다.
"결정은 사흘 후에 통보하겠다."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방을 나와 마당을 가로질렀다. 겨울바람이 매웠다. 이 몸은 원래도 추위를 심하게 탔지만, 오늘은 유독 뼛속까지 서늘했다.
그리고.
가슴 한복판, 저 깊은 곳에서 낡은 장부가 펼쳐지는 소리가 났다.
사각.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들었다.
업(業)이 아직 남아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