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발소리는 사당 담벼락을 넘어오고 있었다.
밤이 깊었다. 향불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사당 안에서, 나는 아직 채 익히지 못한 불씨를 가슴에 품은 채로 숨을 죽였다. 그 불씨는 요즘 들어 부쩍 뜨거워지고 있었다. 손끝에 열이 오르는 밤이면 잠을 설쳤다.
담을 넘은 자는 검은 옷을 두른 사내였다. 허리에 짧은 도를 찼고, 눈빛이 쥐새끼처럼 사방을 훑고 있었다. 발걸음에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훈련받은 자였다.
"세수단이 여기 있다고 했는데."
그가 사당 안을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위패를 뒤엎을 듯 손을 뻗다가 멈추고, 다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소리가 났는지, 사내가 곧바로 나를 향해 도를 뽑았다.
스르릉.
칼집을 벗어난 도날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넌 뭐야."
"이 사당의 주인 아들입니다."
"그럼 죽어도 상관없겠군."
사내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도가 위에서 아래로, 가장 정직하게 떨어졌다. 망설임이 없는 궤적이었다. 사람을 벤 적이 여러 번 있는 자의 움직임이었다.
나는 몸을 틀지 않았다.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대신 가슴속 불씨를 끌어올렸다.
우웅.
낮은 진동이 팔을 타고 흘렀다. 뜨거웠다. 화로에 막 넣은 장작처럼, 안에서부터 열기가 번져 나왔다. 나는 맨손을 들어 도날을 그대로 받아쳤다.
캉!
쇳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더 단단한 것이 부딪는 소리였다. 사내의 도가 손에서 튕겨 나가 담벼락 아래로 나가떨어졌다.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영근단절인 놈이 어떻게…"
"영근이 끊겼다고 다 못하는 건 아니더군요."
나는 손을 뻗어 사내의 옷깃을 잡았다. 불씨의 온기가 팔을 타고 손끝까지 뻗어 있었다. 화로 속 장작이 타들어가듯, 그 열기가 사내의 몸을 통과했다. 사내가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 했지만, 손목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퍽!
사내가 뒤로 튕겨 나가 담벼락에 처박혔다. 흙먼지가 풀썩 일었다.
숨을 몰아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이 뜨거웠다. 심장이 이렇게 힘차게 뛰는 것도 처음이었다. 손바닥이 얼얼했다. 도날을 맞받아친 자리가 붉게 부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프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것은, 이상하게도 허기였다. 이런 순간에 배가 고프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누구 밑에서 왔습니까."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피 섞인 웃음을 흘렸다. 이 하나가 부러졌는지, 웃을 때마다 붉은 것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세수단을 노리는 건 우리만이 아니야."
"그럼 밥값은 넉넉히 받으셨겠습니다."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뭐?"
"이런 일에 나섰으면 대가는 톡톡히 받아야지요. 목숨 걸고 담을 넘었는데 삯이 시원찮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사내는 대답 대신 헛웃음을 흘리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나는 그를 묶어 끌고 사당을 나섰다. 밧줄로 팔목과 발목을 단단히 조이고, 어깨에 걸쳐 마당으로 나왔다. 밤바람이 차가웠다.
마당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서다연이었다. 손에 검을 쥔 채, 방금 벌어진 일을 지켜본 얼굴이었다. 옷자락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검을 쥔 손은 흔들림이 없었다.
"...너 지금."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녀의 눈이 나와 쓰러진 사내를 번갈아 오갔다.
"방금 그거, 뭐였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영근단절인 사람이 어떻게 도를 맨손으로 받아치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다치면 어쩌나 했는데, 안 다쳐서 다행이지요."
서다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과 놀라움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녀는 몇 걸음 다가와 쓰러진 사내를 발끝으로 툭 건드려 보았다. 숨은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장로들께는 뭐라고 보고할 겁니까."
내가 먼저 물었다.
"..."
그녀는 대답 대신 묶인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뭔가 말을 하려다 삼키는 얼굴이었다. 밤바람이 사당 마당을 훑고 지나갔다. 나뭇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딘가에서 더 많은 발소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한둘이 아니었다.
서다연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나가 아니었어."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담벼락 너머,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