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지옥혼, 금기의 후계자

2화

그날 밤, 나는 사당으로 향했다. 문파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각이었다. 발소리를 죽이며 뒷마당을 지나, 낡은 계단을 올랐다. 사당 문은 늘 그렇듯 삐걱거렸다. 향은 오래전에 다 타버렸는지 재만 수북했다. 이태풍. 청현문을 세운 사람이자 이서준의 생부. 금단기 경지에 올랐던 도사였으나 아들의 불치병을 고치겠다며 세수단을 강탈했다가, 네 명의 고수에게 포위되어 죽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명색이 문파의 수장인 자가 자기 아들 하나 살리겠다고 남의 물건을 훔쳤다니. 어리석다면 어리석고, 절실했다면 절실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어리석음이 남긴 건 폐가나 다름없는 몸뚱이 하나였다. 위패 앞에 앉으니 숨이 흐려졌다. 아버지라 불러야 할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이서준의 기억 속에서도 그는 늘 바깥에 있었고, 늘 문파 걱정에 시달렸으니까. 밥상머리에 마주 앉은 기억조차 몇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몸은 이따금 그를 그리워했다. 낯선 감정이었다. "당신 아들이 이 지경입니다." 나는 위패에 대고 중얼거렸다. "살릴 방법도 없이 죽어놓고, 남은 몸뚱이는 이렇게 부실하게 남겨놨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위패는 위패일 뿐이었다. 먼지 낀 나무판자 위에 새겨진 이름 석 자가 촛불 그림자에 흔들릴 뿐이었다. 한기가 밀려왔다. 낮보다 훨씬 심했다. 손끝, 발끝부터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몸속에서부터 서리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 그대로, 등줄기를 따라 얼음물이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구음절맥의 발작이었다. 서다연에게 배운 대로 숨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눈앞의 위패마저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였다. 심장이 얼음덩어리처럼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바닥을 짚었지만 손바닥에 감각이 없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허무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육신이라는 화로에 불씨가 꺼져가는 것을, 담담히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가슴 안쪽에서 불씨 하나가 튀었다. 작은 불씨였다. 화로 속 마지막 잉걸불처럼, 사그라지기 직전의 온기였다. 놓치면 다시는 붙지 않을 것 같은, 위태로운 열기.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판관으로 죽은 자들의 혼을 다루던 손길, 그 오래된 습관이 몸을 움직였다. 손이 저절로 어떤 매듭을 짓듯 움직였다. 배운 적 없는 동작인데도, 몸이 아니라 혼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우웅. 낮은 울림이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영근이 끊긴 자리로 기가 흐를 수 없다면, 혼(魂)의 길로 흐르게 하면 된다. 산 자의 몸이 아니라, 혼 자체를 화로 삼아 불을 지피면 된다. 금기된 방법이었다. 살아 있는 자가 자기 혼을 직접 태우는 술법. 저승에서라면 판관이 죄인의 혼을 벌할 때나 쓰던 방식이었다. 죄인의 혼을 장작처럼 쪼개어 벌하고, 그 열기로 지옥의 화로를 데우던 형벌. 하지만 지금 내 안에 있는 건 이서준의 순수한 혼이 아니라, 저승에서 온 이질적인 것이었다. 규칙이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나는 그 불씨를 장작 위에 올리듯 조심스레 키웠다. 화아악. 순간, 얼어붙던 손끝에 감각이 돌아왔다. 따뜻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온기였다. 판관이었을 때도, 이서준이었을 때도 이런 온기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손가락을 오므리자 관절 하나하나가 뻐근하게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곧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업을 대가로 쓰는 불이다." 전륜대왕의 음성이었다. 잊고 있던, 그러나 몸이 기억하고 있던 목소리. 저승의 화로 앞에서 죄인의 명부를 읽던 그 무겁고 건조한 어조. "이 불은 공짜가 아니다. 쓸수록 갚아야 할 업이 늘어난다." 나는 물었다. "안 쓰면 얼어 죽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 대답이 없었다. 저승의 왕조차 이 질문엔 딱히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 업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오히려 내 쪽이 뭐라도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대신 업을 갚아주기라도 하실 겁니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답 대신, 사당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낯선 발소리였다. 문파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한 목적을 가진 걸음. 사당 안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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