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세계의 주먹은 무겁다

3화

오른손이 뒤로 당겨졌다. 어깨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금빛 마디가 손가락 관절마다 맥박처럼 떴다.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었는데도 매번 낯설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쉬었다. 숨을 내쉬지 않았다. 경기장 조명이 원판 위로 하얗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 빛 아래 서 있으니 마치 무대 위에 선 배우 같았다. 관중석은 반원형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시선들이 등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지원 협회 사람들, 다른 지원자들, 그리고 저 위 특별석에 앉은 심사관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모두가 내가 실패하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대로 팔을 뻗었다. 주먹이 원판에 닿는 순간, 세상이 잠깐 멈췄다. 소리가 사라졌다.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녹슨 철과 피 냄새가 섞인 듯한, 낯익은 냄새였다. 손등에서 뭔가 터지듯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이 눈앞을 하얗게 태웠다. 원판 뒤 팔 모양 측정기가 위로 솟았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뒤늦게 귀에 닿았다. 숫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1. 0. 2, 4. 1024kg. 나는 그 숫자를 세 번 다시 읽었다. 첫 번째는 못 믿어서. 두 번째는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세 번째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서. 숫자 옆에 작은 글씨로 평균치가 떠 있었다. 일반 지원자 평균, 87kg. 상위 1퍼센트, 320kg. 역대 최고 기록, 610kg. 내 숫자는 그 위에 있었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에 있었다. 경기장이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내 숨소리가 들렸다. 관중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신호였다. 순간 소음이 폭발했다. "저게 뭐야." "소환구역 출신이라며." "저건 사람이 낼 수 있는 수치가 아니야." "장비 고장 아니야?" "저번 주에도 소환구역 출신 하나가 사기 쳤다던데." 말들이 사방에서 부딪혔다. 누구는 웃었고, 누구는 인상을 찌푸렸고, 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판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내려다봤다. 금빛 마디는 이미 빛을 잃고 있었다. 손가락 관절 위로 스며들듯 사라지는 빛.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손등이 뜨거웠다. 뜨거운데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박정호가 서판을 보고 있었다. 서판을 보다가, 원판을 보고, 다시 나를 봤다. 그의 손에 들린 서판 위로 숫자가 반복해서 깜빡이고 있었다. 같은 숫자였다. 오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표정이 없었다. 원래도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더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표정을 지우는 데 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턱 근육이 미세하게 굳어 있는 게 보였다. 그건 표정이 아니라 표정을 참는 흔적이었다. "다시." 그가 말했다. "네?" "다시 치시오."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눈빛을 교환했다. "측정 오류일 가능성이 있소." 박정호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감정을 담지 않은, 그냥 사실을 전달하는 목소리. 하지만 그 사실 안에 다른 뜻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의심. 나는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담을 필요가 없었다. 그의 눈이 이미 말하고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소환구역 출신이 1024kg짜리 주먹을 날린다는 게, 정상적인 사람 눈에 정상적으로 보일 리 없었다. 나였어도 의심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조차도 지금 이 숫자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한서린 쪽을 봤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에서 궁금함이 사라지고 대신 뭔가 다른 것이 자리 잡았다. 흥미. 혹은 경계.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손끝이 떨리네." 그녀가 작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나를 향한 건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손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말로 떨리고 있었을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원판 앞에 섰다. 발밑 원판이 아까와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원판인데, 다른 물건 같았다. 방금 전까지는 그냥 측정 도구였는데, 지금은 나를 심판하는 재판대 같았다. 손을 들었다. 금빛 마디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손가락은 그냥 손가락이었다. 평범한 살과 뼈. 아무 온기도, 아무 빛도 없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까 그 빛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나타날까. 안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측정 오류라는 말이 사실로 굳어지는 걸까. 그럼 나는 다시 그냥, 소환구역 출신 남자애로 돌아가는 걸까. 질문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1초, 2초, 3초. 관중석의 시선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박정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서판을 든 손이 미동도 없었다. 마치 이 순간을, 이 실패를, 미리 예상하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먹을 뒤로 당겼다. 숨을 참았다. 손가락 관절이 저릿했다. 그 저릿함이 익숙했다. 지구의 절벽, 손끝에서 처음 그 빛이 돋아났을 때와 같은 감각. 바람이 세게 불던 밤이었다. 발밑은 천 길 낭떠러지였고, 손을 뻗을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그때 손끝에서 처음으로 빛이 돋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 그 하나만 남아 있던 순간이었다. 그 생각이 스치자 손등에 다시 빛이 번졌다. 처음엔 희미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에서 시작된 빛이 점점 밝아지며 옆 마디로 옮겨갔다. 금빛 마디가 손가락을 따라 팔뚝까지 흘렀다. 피부 밑에서 뭔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빛이 혈관을 타고 번져나갔다. 경기장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관중석에서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박정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순간만큼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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