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사막의 새벽은 언제나 뼈까지 스며드는 한기로 시작되었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진 모래가 밤사이 그 열기를 모조리 하늘로 토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살갗을 파고드는 서늘함뿐이었고, 그 한기는 옷깃 사이로, 갑옷의 이음새 사이로, 심지어는 감은 눈꺼풀 안쪽까지 스며들어 사람을 깨웠다.
서하
스물셋의 아사달족 여인으로, 까마귀떼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땋아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태양에 그을린 갈색 피부 위로 낡은 가죽 갑옷이 걸쳐져 있었는데, 그 갑옷의 이음새마다 성긴 실밥이 드러나 있어 이미 여러 해를 순찰에 시달렸음을 짐작케 했다.
모래 능선 위에 홀로 서서 지평선을 살피던 서하는,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하늘빛이 잿빛에서 주황으로 번져가는 것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입김이 하얗게 서렸다가 이내 흩어졌다.
그녀는 어깨에 걸친 낡은 망토를 조금 더 여미며, 발밑의 모래가 아직 밤의 냉기를 머금고 있음을 발끝으로 느꼈다.
부족의 순찰은 늘 혼자였다.
다른 이들이 짝을 지어 초소를 도는 동안에도 서하만큼은 언제나 홀로 이 외곽 능선을 맡았는데, 그것이 그녀의 어미가 이방인의 피를 섞어 낳은 딸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부족민은 없었고,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이도 없었지만 침묵 자체가 이미 하나의 낙인이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겠지.'
서하는 허리춤에 매달린 물주머니를 흔들어 남은 양을 가늠하며 속으로 되뇌었는데, 열여섯에 부모를 열병으로 잃은 뒤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 순찰로였고, 규율뿐이었다.
물주머니 안에서 찰랑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 능선에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가끔 서하는 생각했다. 부모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이 외곽을 혼자 걷고 있었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상상은 늘 거기서 멈췄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을 붙잡고 있어 봐야 남는 것은 허기진 마음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오래전에 배웠기 때문이었다.
아사달족의 규율은 단순했다.
부족의 경계를 넘는 이방인을 돕지 않는다, 부족의 비밀을 이방인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필요하지 않은 위험에 스스로를 던지지 않는다.
그 마지막 조항을 서하는 유독 잘 지켜왔는데, 위험을 피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 나서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릴 적 훈련 마당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떠밀려 넘어졌을 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던 그 순간부터 몸에 새겨진 감각이었다.
넘어진 채로 올려다본 하늘은 지금처럼 잿빛이었고, 그날도 까마귀 한 마리가 저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능선을 따라 걷던 그녀의 발끝에 마른 가시덤불이 부서지며 바스락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저 멀리 하늘을 선회하던 까마귀 한 마리가 날카롭게 울었다.
서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까마귀를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날개가 아침 햇살의 첫 조각을 받아 잠깐 푸르스름하게 빛났다가 이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몸 안에는 오래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힘이 흐르고 있었는데, 위기의 순간이나 필요에 따라 육신을 흩어 까마귀떼로 화하는 변신의 힘이었고, 이 힘은 아사달족 중에서도 극소수에게만 남아 있는 유산이었다.
어미는 살아 있을 적, 이 힘을 두고 축복이자 저주라 했었다.
'날개를 가진 자는 땅에 발붙이지 못한단다.'
그 말의 의미를 서하는 부모를 잃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는데, 부족 안에서 이 힘을 이어받은 이는 대대로 경외와 동시에 거리를 두게 만드는 존재였고, 그녀의 혼혈 출신과 겹쳐지면서 그 거리는 더욱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을 함부로 쓰는 것 역시 규율에 어긋났으니, 서하는 대개 두 발로 걷는 편을 택해왔다.
두 발로 걷는 것, 그것이 그녀가 부족의 일원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증명이었다.
***
같은 날 오전, 능선 너머 협곡 근처.
걸음을 옮기던 서하의 코끝에 낯선 냄새가 스쳤는데, 마른 모래바람 속에 섞여 있기엔 지나치게 비릿한 쇠 냄새였고, 그 순간 그녀의 등줄기가 서늘하게 곤두섰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코를 벌름거리며 바람의 방향을 다시 가늠했다.
틀림없었다.
이건 흙냄새도, 짐승의 피 냄새도 아니었다. 사람의 피,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의 피가 흩뿌려졌을 때에만 나는 특유의 비릿함이었다.
협곡 저편, 늘 고요하던 대상로 방향에서 검은 연기 한 줄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잠시 숨을 죽였다.
연기는 가늘었지만 끊기지 않고 계속 피어올랐고, 그것은 불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며, 다시 말해 사건이 벌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상로에 불이 날 일은 없는데.'
그 길은 아사달족의 영역 바깥, 천마제국의 관할로 이어지는 도로였고, 부족민이라면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곳이었으며, 규율은 그녀에게 이 순간 뒤돌아 초소로 복귀하라 명하고 있었다.
서하의 손이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를 스치듯 만졌다가 떨어졌다.
돌아가야 한다. 이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늘을 선회하던 까마귀떼가 점점 더 많은 수로 불어나 그 연기 위를 맴돌기 시작했고, 그 광경이 서하의 발을 협곡 쪽으로 이끌었다.
까마귀들은 죽음의 냄새를 가장 먼저 아는 존재들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이내 열 마리를 넘는 까마귀들이 하늘 위에서 원을 그리며 울어대는 소리가 협곡 사이로 메아리쳤고, 그 소리는 마치 서하를 부르는 듯 집요하게 이어졌다.
서하는 잠시 갈등했다.
초소로 돌아가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이 정도였으나, 보고가 닿아 대응대가 꾸려질 때쯤이면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을 터였고, 그녀 안의 오래된 호기심이—혹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결핍이—규율보다 앞서 그녀의 두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발이 먼저 협곡 쪽으로 향했고, 머리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서하는 협곡 초입에서 눈을 감고, 짧게 숨을 들이켠 뒤 온몸의 힘을 풀었다.
피부 아래로 서늘한 감각이 훑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은 수백 마리의 검은 까마귀로 흩어져 하늘로 솟구쳤다.
날개의 감각은 언제나 낯설면서도 익숙했는데, 두 다리로 걷던 무게가 사라지고 대신 바람의 결이 온몸의 깃털 하나하나에 닿아 전해지는 그 느낌은, 인간의 몸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자유였다.
수백 개의 시야가 한꺼번에 열리며 세상이 파편처럼 쪼개져 보였고, 그 낯선 감각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이내 익숙한 균형을 되찾았다.
까마귀떼가 된 서하는 협곡을 낮게 스치듯 날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으로 향했고, 협곡을 벗어나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녀—아니 그녀들의 무리—는 일제히 날갯짓을 멈추었다.
도로 위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부서진 마차 세 대가 옆으로 쓰러져 불타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갑주를 입은 시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시신들 사이로 흩어진 화살대와 부러진 검날이 아침 햇살을 받아 스산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불타는 마차의 잔해에서 검은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라 파란 하늘로 흩어졌고, 그 연기 사이로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이따금 타닥거리며 불꽃을 튀겼다.
시신들의 갑주는 서하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정교한 세공이 새겨진 것들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이들이 결코 평범한 대상단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했다.
서하는 그 광경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자신의 수백 개 눈동자 각각이 같은 참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아득해졌다.
수십 개의 시야가 겹쳐져 하나의 장면으로 각인되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이었다면 신음을 흘렸을 법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많은 죽음을 한꺼번에 목격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시신들 틈에서, 아직 미약하게나마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른 시신들처럼 완전히 늘어져 있지 않았고, 부서진 마차 바퀴 아래 깔린 채로 손끝이 아주 조금씩, 마치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