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협곡 아래로 내려앉은 까마귀떼는, 부서진 마차의 잔해 위를 스치듯 낮게 선회하다가 마침내 인적 없는 바위 그늘에 내려섰다.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흐르며 마른 흙먼지를 일으켰고, 그 먼지 속에서 검은 깃털들이 한데 뭉치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깃털 하나하나가 살갗으로, 부리가 입술로, 발톱이 손가락으로 바뀌어가는 그 과정은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어서, 그 자리에서 사람의 윤곽이 서서히 빚어지는 동안 서하는 익숙한 통증을 참으며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섰다.
형태변신 직후에는 늘 뼈마디가 다시 맞춰지는 듯한 얼얼함이 따라왔는데, 관절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찾아가며 지르는 비명 같은 감각에 서하는 이를 악물었고, 오늘따라 그 감각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자신이 지금 저지르려는 일 때문일 터였다.
'경계를 넘지 마라. 이방인을 구하지 마라.'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문장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다.
부족의 어른들은 늘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어긴 자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비극으로 끝났다는 경고와 함께 전해져 내려왔지만, 서하의 발은 이미 그 말을 배반하듯 부서진 마차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피 냄새는 짙어졌고, 불에 그을린 나무 냄새와 뒤섞여 코끝을 무겁게 짓눌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 안쪽까지 탄내가 스며드는 것 같았고, 그 냄새 아래로 비릿한 쇠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어서 서하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었다.
마차는 협곡의 급경사를 구르며 산산이 부서진 듯, 바퀴살은 부러져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짐칸을 덮었던 천막은 갈기갈기 찢긴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마차 바퀴 아래, 상반신이 짓눌린 채 엎드려 있던 남자는 금발이었다.
먼지와 피로 얼룩진 갑주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세공이 살아 있어서, 서하는 그것만으로도 이 남자가 평범한 병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깨를 감싼 견갑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이 있었고, 흉갑의 이음새마다 은실로 정교하게 마감된 흔적이 남아 있어, 이런 갑주를 걸칠 수 있는 자는 결코 흔한 신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서하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바퀴를 밀어내려 하자, 남자의 손끝이 미약하게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그 미세한 떨림 하나에 서하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살아 있어요?"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물음이었는데, 놀랍게도 남자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핏기 없는 얼굴 안에서도 눈동자만은 이상하리만치 맑았고, 그 눈이 서하를 향해 초점을 맞추더니, 갈라진 입술 사이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웃음이라기보다는 마지막 숨을 짜내는 듯한 소리에 가까웠다.
"까마귀가...... 사람이 되다니."
그 한마디에 서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순간을 목격했다는 뜻이었으니, 이는 곧 두 번째 규율—부족의 비밀을 노출하지 말 것—을 이미 어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백 년을 이어온 계율이, 이 죽어가는 낯선 남자의 눈앞에서 허무하게 깨어져버린 것이었다.
서하는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뒤늦게 실감했다.
"헛것을 본 겁니다." 서하가 짧게 잘라 말했다.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단단하게 나왔지만, 남자는 그 말에 대꾸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 다시 눈을 감았고, 그의 숨소리는 점점 더 얕아지고 있었다.
가슴팍이 오르내리는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서하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 손을 놓으면, 이 숨은 여기서 끝날 것이었다.
서하는 이를 악물고 바퀴를 힘껏 밀어냈다.
부러진 바퀴살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살갗이 찢어졌지만, 그 통증은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두 번, 세 번 만에 바퀴가 옆으로 굴러떨어지자, 남자의 옆구리에서 검붉은 피가 다시 왈칵 배어 나왔고, 서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복부를 관통한 상처였다.
갑주 이음새 사이로 드러난 살점은 이미 검게 죽어가고 있었고, 상처 주위로 배어 나온 피는 흙바닥을 적시며 검붉게 번지고 있었다.
이 정도 출혈이면 해가 지기 전에 숨이 끊어질 것이 분명했는데,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서하의 손끝에 오히려 더 힘이 들어갔다.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대로 손을 놓고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남자의 손이 힘없이 벌어지면서, 그 안에 쥐고 있던 무언가가 모래 위로 굴러떨어졌다.
작은 은빛 패였다.
서하가 그것을 집어 들자, 표면에 새겨진 것은 낯선 문양—날개를 활짝 편 매의 형상 아래 제국의 인장이 겹쳐진 정교한 세공이었고, 손끝으로 문양의 굴곡을 훑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뒷면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작게 음각되어 있었다.
'박민재.'
남자의 것이 아닌 다른 이름이었다.
서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남자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물건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물건을 죽음 직전까지 움켜쥐고 있었다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에게 전해져야 할 무언가라는 뜻일 터였다.
"이건...... 동료의 것인가요."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남자의 가슴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오르내리고 있었고, 서하는 그 미약한 움직임 하나에 자신의 모든 판단이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규율은 명확했다.
경계를 넘지 말 것, 비밀을 드러내지 말 것, 불필요한 위험을 피할 것.
지금 이 순간, 서하는 이미 그 세 가지를 모두 어긴 채로 여기 서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다는 자각이 뒤늦게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보다는 다른 감정이 앞섰다.
'그렇다면.' 서하는 은패를 손안에 꽉 쥔 채로 속으로 되뇌었다. '이미 어겼다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야말로 의미 없는 짓이 아닌가.'
한 번 넘은 선 앞에서 망설이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었다.
서하는 은패를 품속 깊이 밀어 넣고는, 남자의 어깨 아래로 팔을 밀어 넣으며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축 늘어진 몸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갑주의 차가운 금속이 팔뚝에 닿을 때마다 그 서늘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순간 저 멀리, 협곡 반대편 능선에서 말발굽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어 서하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의 말이,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소리였고, 말발굽이 땅을 두드리는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희미하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서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능선 위로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먼지구름 속에서 무언가 검은 형체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품 안의 남자는 여전히 숨이 끊어질 듯 얕은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고, 등 뒤로는 정체 모를 기마 무리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서하는 몸을 일으킨 채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