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새벽, 부족의 회의 천막.
남자를 부족 안으로 들인 지 하룻밤이 지났지만, 그의 상태는 여전히 위태로웠고, 서하는 밤새 그의 곁을 지키느라 눈 밑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새벽 공기는 뼛속까지 스며들 만큼 차가웠고, 천막 밖으로 나서는 순간 서하는 몸을 잠시 웅크렸다가 이내 등을 곧게 펴며 걸음을 옮겼다. 이슬이 맺힌 풀잎을 밟을 때마다 발끝에서 냉기가 올라왔지만, 그보다 더 서늘한 것은 지금부터 마주해야 할 자리에 대한 무게감이었다.
장로회의는 예상보다 이르게 소집되었는데, 부족을 이끄는 다섯 명의 원로들이 천막 중앙에 둘러앉은 모습은, 서하가 태어난 이래로 딱 두 번밖에 본 적 없는 무거운 광경이었다. 첫 번째는 큰 가뭄이 들어 부족의 존속 자체가 흔들리던 때였고, 두 번째는 지금이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선 서하는 원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낡은 나무 기둥 사이로 스며든 새벽빛이 원로들의 주름진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말보다 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방인을 부족 안으로 들인 건, 명백한 규율 위반이다."
가장 나이 든 원로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운을 떼자, 천막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 그의 눈빛은 오랜 세월 부족을 지켜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완고함으로 번뜩였다.
"제국의 전사를 들여서 부족의 존재가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옆에 앉은 또 다른 원로가 거들었다.
"제국이 어떤 자들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들의 발이 이곳까지 닿는 순간, 우리가 지켜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어."
서하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각오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지만, 그 손을 무릎 위에서 꽉 그러쥐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서하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자를 그대로 두었다면 죽었을 겁니다. 그리고 죽은 자의 입은 무엇도 발설하지 않지만, 살아난 자의 은혜는 때로 부족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원로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누군가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고, 또 누군가는 서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예화 할머니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려 좌중을 진정시켰다. 지팡이가 흙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천막 안에 울려 퍼지자,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이 아이의 말도 일리가 있네." 예화 할머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국 귀족 가문의 전사라면, 그를 살려 보낸 것이 오히려 부족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어. 대신 조건을 걸도록 하지."
원로들의 시선이 예화 할머니에게 모이자, 그녀는 지팡이 끝으로 서하를 가리켰다. 주름진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저 아이가 저자를 회복될 때까지 책임지고 돌보되, 그가 깨어나는 즉시 부족의 비밀은 철저히 감춘다. 그리고 회복하는 대로 지체 없이 경계 밖으로 돌려보낸다. 어떤가."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원로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고, 서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손끝에 맺혀 있던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끼며,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고맙습니다." 서하가 낮게 고개를 숙이자, 예화 할머니가 지팡이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웃었다.
"고마워할 것 없다, 서하야. 네가 이 아이를 데려온 순간부터, 이미 벌어질 일이었을 테니."
회의가 끝나고 천막을 나서는 서하의 뒤로, 원로들의 낮은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목소리들이었지만, 서하는 그것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천막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자의 상태뿐이었다.
***
같은 시각, 서하의 천막 안.
밤새 열이 오르내리던 남자는, 서하가 회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쯤에는 이마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고, 숨소리도 한결 안정되어 있었다. 천막 안에는 은은한 약초 냄새가 감돌고 있었는데, 그 냄새는 부족이 대대로 지켜온 치유의 지혜가 배어 있는 향이기도 했다.
서하는 천막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창백했던 안색이 조금은 혈색을 되찾은 듯했고, 그 사실에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서하는 젖은 천으로 그의 이마를 닦아내며, 상처 부위에 부족 대대로 전해지는 약초 반죽을 다시 발라 주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의 체온은 아직도 미열이 남아 있었지만, 어젯밤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반죽이 상처에 닿는 순간, 남자의 미간이 미세하게 찡그려지며 신음이 새어 나왔고, 그 소리에 서하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상처 부위는 여전히 붉게 부어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서하의 눈빛에는 안쓰러움과 조심스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아프면, 참아요. 지금은 이게 최선이니까."
서하가 나직이 중얼거리며 다시 손을 움직이자, 남자의 눈꺼풀이 힘겹게 들어 올려졌다. 그 눈꺼풀이 떨리며 열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서하의 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초점이 흐릿하던 눈동자가 서서히 서하의 얼굴에 맞춰지더니, 갈라진 입술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당신이...... 나를 살렸군."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눈빛만큼은 또렷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짐승이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살렸다기보다는, 아직 살아 있게 만든 것뿐이에요." 서하가 조심스럽게 대답하자, 남자는 옅게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웃음에는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이건욱이다." 남자가 힘겹게 이름을 밝혔다. "천마제국의 전사고."
그 이름을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짊어진 무게가 그대로 묻어났고, 서하는 그 무게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서하예요." 서하가 짧게 답하며, 품속에 넣어두었던 은패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손끝이 스치는 순간, 남자의 손이 미약하게 움찔했다.
"이건, 당신이 쥐고 있던 겁니다. 박민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던데."
순간, 이건욱의 눈가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표정의 변화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서하는 자신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 동료다."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지키려다...... 목에 화살을 맞았어."
그 말을 내뱉는 이건욱의 손이 은패를 움켜쥐며 미세하게 떨렸다. 서하는 그 말에서 묻어나는 무게를 느끼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천막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진 듯했다.
"미안해요, 물어봐서."
"아니." 이건욱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은패를 손안에 꽉 쥐었다. "오히려...... 이걸 되찾아줘서 고맙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어젯밤 그 차갑던 체온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서하는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이건욱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굳어졌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방금까지의 나른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날카로운 긴장이 대신 들어차 있었다.
"호송하던 여인은...... 그녀는 어떻게 됐지?"
그 물음이 던져지는 순간, 천막 안의 공기가 얼어붙듯 정지했다. 서하는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이건욱의 눈빛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고, 그 몸이 상처의 통증도 잊은 듯 일어나려 애쓰는 것을 서하는 황급히 손으로 눌러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