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말발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 방향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협곡의 굴곡 때문에 가늠하기 어려웠다.
메아리처럼 사방에서 되울리는 소리는 마치 협곡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귀가 되어 서하를 감싸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고, 그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방향감각만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서하는 축 늘어진 남자의 몸을 등에 걸치듯 짊어진 채, 우선 불탄 마차의 그늘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불에 그을린 마차 잔해에서는 아직도 매캐한 연기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냄새와 뒤섞여 남자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피비린내가 서하의 코끝을 찔러왔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동안, 남자의 체온이 등을 통해 전해져 왔는데,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 터였고, 이대로 지체하다가는 발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숨을 놓아버릴지도 몰랐다.
서하는 등에 업힌 남자의 팔목을 슬쩍 붙잡아 맥을 짚어보았는데, 손끝에 걸리는 박동이 너무 미약해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말발굽 소리는 협곡을 크게 돌아 대상로 반대편으로 멀어져 갔고, 서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나온 숨은 뜨거웠지만, 그와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서늘하기만 해서, 몸 안팎의 온도가 완전히 어긋나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약탈단의 잔당인지, 아니면 뒤늦게 도착한 제국의 수색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만약 수색대라면 이방인을 부족의 경계 안으로 데려가는 것을 목격당할 위험이 있었고, 만약 약탈단의 잔당이라면 두 사람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터였다.
서하는 남자를 다시 조심스럽게 들쳐 업고, 협곡을 벗어나 부족 영역으로 이어지는 좁은 능선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형태변신보다 훨씬 더디고 고단한 일이었지만, 지금 이 몸으로는 하늘을 나는 것도, 짐을 진 채 변신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자갈들이 미끄러질 때마다 균형을 잡기 위해 무릎에 힘을 주어야 했고, 그때마다 등에 업힌 남자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 왔는데, 그 무게조차도 이 남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져서 서하는 오히려 안도했다.
한 걸음씩, 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려 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는 동안, 등에 업힌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더 얕아지는 것이 느껴져서 서하의 걸음도 자연히 빨라졌다.
능선길 중턱쯤 이르렀을 때, 남자의 몸이 한 차례 크게 경련하듯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고, 서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등 뒤로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돌아볼 시간조차 아까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요." 서하가 낮게 중얼거렸지만,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 능선을 타고 불어와 서하의 뺨을 스칠 때마다, 사막 특유의 마른 흙냄새와 남자의 피 냄새가 뒤섞여 코끝에 감돌았고, 그 냄새는 이 밤이 끝날 때까지 서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사막 특유의 냉기가 순식간에 대기를 잠식할 무렵에야 서하는 마침내 부족의 첫 번째 천막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지점에 도달했다.
멀리서 흔들리는 화톳불의 빛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지만, 서하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걸음을 재촉했다.
망루를 지키던 젊은 파수꾼이 서하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뜨며 창을 고쳐 쥐었다.
"서하! 그건, 그 자는......"
"다쳤어. 죽어가고 있고." 서하가 숨을 몰아쉬며 짧게 답하자, 파수꾼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방인이잖아! 경계 밖 사람을 데려오는 건......"
파수꾼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함께 오래된 규율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뒤섞여 있었고, 그것은 부족의 모든 이들이 어릴 적부터 몸에 새긴 것이었다.
"알아. 알고 있어." 서하가 그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되뇌었다. "그러니까 원로님께 데려가야 해. 지금 당장."
파수꾼은 창을 쥔 손을 어찌할 바 몰라 하다가, 서하의 눈빛에 서린 절박함을 읽었는지 결국 서하를 따라 천막 안쪽으로 길을 열어주었다.
천막 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지나는 동안, 밤늦게까지 깨어 있던 부족민 몇몇이 서하와 그 등에 업힌 낯선 남자를 발견하고는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서하는 그 시선들을 애써 외면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부족의 중심 천막 앞에 다다르자, 소식을 미리 전해 들은 듯 예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화 할머니는 부족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이자 무녀로, 굽은 등과 깊게 팬 주름 속에서도 형형한 눈빛만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화톳불 빛을 받아 일렁이는 할머니의 그림자는 실제 체구보다 훨씬 크게 늘어져 있었고, 그 위압감은 오랜 세월 부족을 지켜온 이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서하야, 서하야......" 예화 할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서하와 그 등에 업힌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규율을 알면서도 데려왔구나."
"압니다." 서하가 등에 업힌 남자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해가 뜨기 전에 죽습니다."
땅에 내려놓인 남자의 몸에서 흙먼지가 풀썩 일었고, 그 위로 드리워진 화톳불 그림자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더욱 어둡게 물들였다.
예화 할머니는 잠시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그 갑주의 세공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좁혔다.
주름진 손끝이 갑주의 문양을 따라 조심스럽게 훑어 내려가는 동안, 할머니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경계심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천마제국 사람이구나. 그것도 보통 신분이 아니야."
"그가 쥐고 있던 겁니다." 서하가 품에서 은패를 꺼내 내밀자, 예화 할머니의 주름진 손끝이 그것을 받아 들며 미세하게 떨렸다.
은패의 표면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고, 그 위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은 이 남자가 결코 평범한 신분이 아님을 웅변하고 있었다.
"박민재라...... 제국 문양이 새겨진 걸 보니, 이 아이가 데려온 자는 필시 귀족 가문의 전사일 게야."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고, 그것은 서하 자신의 마음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살릴 거냐, 서하야." 예화 할머니가 지팡이 끝으로 땅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이 아이를 들이면, 부족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이지."
지팡이가 땅을 두드리는 소리는 낮고 무거워서,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경고처럼 서하의 귓가에 울렸다.
서하는 대답 대신 남자의 상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검붉게 젖은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상처는 여전히 벌어져 있었고, 그 안쪽에서 힘없이 뛰던 심장의 박동이 손끝에도 전해져 오는 듯했다.
상처 주변의 살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지만, 그 아래 어딘가에서는 아직 꺼지지 않은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서하는 그 온기를 붙잡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살릴 겁니다." 서하가 고개를 들어 예화 할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규율을 어긴 건 이미 저입니다. 그러니 책임도 제가 지겠습니다."
그 말에 예화 할머니는 한동안 말없이 서하를 응시하다가, 마침내 지팡이를 옆으로 돌리며 천막의 휘장을 걷어 올렸다.
할머니의 눈빛 속에서 서하는 오랜 세월 쌓아온 걱정과, 그럼에도 끝내 손녀 같은 서하를 막지 못하는 애정이 뒤섞여 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들이거라. 다만, 아침이 밝으면 장로회의 앞에 이 아이의 목숨과 네 목숨을 함께 걸어야 할 게야."
서하는 안도할 새도 없이 남자를 다시 안아 들며 천막 안으로 발을 옮겼는데, 그 순간 남자의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 하나를 흘려보냈다.
낮고 갈라진 그 목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억눌러온 그리움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새어 나온 것처럼 들렸고, 서하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서하의 귀에는 그것이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여자의 이름처럼 들렸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순간 무거워졌고, 방금 들은 그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이 남자와 어떤 사연으로 얽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서하의 가슴 한구석에 낯선 불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