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엄마를 타락시키라고?

5화

수업이 끝난 뒤, 서인아는 아무 말도 없이 마법진을 정리하고는 곧바로 강의실을 나섰다. 손끝으로 진식을 지워나가는 동작이 어찌나 정확하고 절제되어 있던지, 마치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감정에 담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어찌나 선명했던지 나는 그 자리에서 감히 따라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강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녀가 사라진 문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야 한켠의 진행률은 그날 수업 마지막에 결국 91%까지 올라갔다가, 미션 종료 시점에 정확히 100%로 채워졌다. 숫자가 차오르는 걸 지켜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는 걸 느꼈다. 뭔가를 성취했다는 감각과, 뭔가를 저질렀다는 감각이 동시에 밀려오는 게, 딱 이런 기분이려나 싶었다. [미션 1: 어머니의 첫 균열 — 완료] [보상: 시스템 권한 확장, 귀환 정보 1단계 해금] [서인아의 순도가 하락했습니다: 100% → 82%] 그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안도와 함께 뭔가 씁쓸한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안도라는 건 단순했다. 목표 수치를 채웠고, 시스템이 요구하던 결과를 얻어냈으니까. 그런데 씁쓸함이라는 건 조금 복잡했는데, 어머니의 옷 단추가 마력에 의해 풀려나가는 장면을 강의실의 다른 학생들 앞에서 만들어낸 게 나였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 실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는 그저 진행률을 채우는 데 급급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뒤늦게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른 학생들이 그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서인아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그리고 그게 전부 내 손에서 시작된 일이라는 사실이.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시스템은 되돌리기 버튼 같은 걸 제공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런 걸 기대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저 이미 저지른 일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아니면 어떻게 이어가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준서와 함께 식당에 앉아 있다가 이상한 소문을 접하게 됐다. 그날 식당은 유난히 붐볐는데, 트레이를 든 학생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와중에도 준서는 굳이 내 옆자리에 앉아 목소리를 낮췄다. "야, 너 그거 들었냐" 하고 준서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는데, 그 낮춘 목소리가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뭘" 하고 나는 애써 무심한 척 되물었는데, 준서의 표정에는 이미 흥미와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숟가락을 든 손이 허공에서 잠깐 멈춰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욕망의 무기화' 담당 교사 있잖아, 서인아 교수. 그날 수업 이후로 다른 학년 애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돌더라고. 마력 시연하다가 옷이 좀 흐트러졌다는데, 그게 우연이 아니라 누가 일부러 유도한 거라는 소문이 있어" 하고 준서가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마시고 있던 물이 목에 걸릴 뻔했고, 나는 애써 기침을 참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누가 유도했다는 거야" 하고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 결과였다. "그건 모르지. 근데 그날 수업 들었던 애들 말로는, 질문한 학생이 있었다던데. 뭔가 딱 그 타이밍에 감정 자극하는 질문을 했다고" 하고 준서가 대답하며 나를 슬쩍 바라봤는데, 나는 그 시선이 마치 나를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시선이 그저 우연히 던진 눈길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짧은 순간이 몇 초처럼 길게 느껴졌다. "근데 그게 뭐 대수냐, 수업 시연이었는데" 하고 나는 애써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준서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이면서도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서인아 교수가 원래 학원 최고 등급 마법사라는 소문이 돌면서, 몇몇 상급생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야. 특히 학생회 애들 중 몇몇은 그날 일을 문제 삼아서 교직원 회의에 안건으로 올리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더라" 하고 준서가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굳는 걸 느꼈다. '교직원 회의에 안건으로...'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만약 이 일이 커져서 정식으로 조사가 들어간다면, 어머니의 정체나 이 시스템의 존재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나 자신이 그 조사의 중심에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학생회가 나선다는 건, 단순히 소문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만약 그날의 정황을 재구성하려 한다면, 누가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의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는지까지 따져볼 게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나에게 시선이 쏠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요즘 학원 안에서 서인아 교수를 두고 이상한 소문이 하나 더 돌아. 그 교수님이 유난히 너를 챙긴다는 이야기" 하고 준서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는데, 나는 그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나는 부러 목소리를 높여 반문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진 것 같았는데, 준서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수업 시간에 유독 네 쪽만 자주 본다는 애들이 있어서. 뭐, 신입생이니까 그냥 관심 갖는 거겠지만" 하고 준서가 대충 넘기듯 말했지만, 나는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준서는 그저 가벼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서인아가 나를 특별히 바라보는 이유를 준서가 알게 된다면, 그 순간 모든 게 끝장이었다. 만약 학원 내에서 서인아와 나의 관계에 대한 의심이 조금이라도 구체화된다면, 이건 단순한 소문 이상의 문제로 커질 수 있었다. 학생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교직원 회의에서 조사가 시작되고, 그러다 어머니의 정체가 드러나고, 결국 이 시스템의 존재까지 새어 나간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건 단순히 옷 단추 하나가 풀린 사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시야 한켠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알림: '마미의 쿡 시스템' — 미션 2가 곧 발동됩니다.] [조건: 서인아의 순도가 80% 이하로 하락한 시점부터 72시간 이내 발동.] ...벌써 다음 미션이 예고된다는 거였다. 나는 그 알림을 보며 손끝이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첫 미션이 끝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다음 위기가 시작되고 있었고, 그 사이에 학원 내부에서는 서인아와 나를 둘러싼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7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도 신경이 쓰였는데, 그렇다는 건 지금 상태에서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알아서 다음 사건을 만들어낼 거라는 뜻이었고, 그게 어떤 방식으로 벌어질지는 나조차도 예측할 수 없었다. 첫 번째 미션이 수업 중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이었다면, 두 번째 미션은 과연 어떤 형태로 다가올까 — 그 생각만으로도 위장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태호야, 표정이 왜 그래" 하고 준서가 물었는데, 나는 그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어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단어들이 걸려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녁 식당 창밖으로, 서인아가 다른 교직원 두 명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유난히 굳어 있었고, 그 옆의 교직원 중 한 명이 손에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서류철의 두께가 제법 되어 보였고, 걸음걸이 역시 뭔가를 통보하러 가는 사람들처럼 딱딱했다. 세 사람이 지나가는 방향은 정확히 교직원 회의실 쪽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설마, 벌써...'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준서가 방금 말했던 그 안건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서인아의 굳은 표정과 서류철, 그리고 회의실로 향하는 발걸음. 이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식당 안의 소음도, 준서의 목소리도, 순간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오직 창밖으로 사라져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만이 선명하게 눈에 박혔고, 나는 그 순간 다음 미션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종류의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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