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천둥소리가 사무실을 울리기 전까지,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야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을 때만 해도, 그저 여름날 흔한 소나기려니 싶었다. 서연 씨는 내 옆자리 파티션 너머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뭔가에 집중해 있었고, 나는 그녀의 타이핑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에 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서류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번쩍—
첫 번째 번개가 유리창을 훑고 지나간 순간,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뒤이어 들려온 서연 씨의 숨소리가 이상하게 거칠었다. 흘긋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의 어깨가 이미 잔뜩 굳어 있는 게 보였다.
쿠아앙—
첫 천둥소리가 터졌을 때, 서연은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다시피 하며 두 손으로 귀를 감쌌다. 나는 그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 순간 당황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서연 씨?"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천둥을 무서워한다는 걸 처음 알았기에,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녀의 곁에 가까이 서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우리 둘 말고 다른 사람이 없었고, 조명은 정전이라도 될 듯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연 씨, 괜찮아요?"
다시 물었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끄덕임이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고, 두 손은 여전히 팔을 감싼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톱이 하얗게 될 정도로 팔뚝을 움켜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뭔가 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정작 뭘 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저... 사실 어릴 때부터 천둥소리 진짜 무서워해요."
서연이 겨우 입을 열어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 태풍 오던 날, 집에 혼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이래요. 다들 별거 아니라고 하는데, 저는 진짜 심장이 벌렁거려서..."
그녀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 다시 창밖을 흘긋 보았고, 마침 또 한 번 번개가 번쩍이며 사무실 유리창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다가, 다시 서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이미 다음 천둥소리를 예상하며 몸을 움츠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쿠아아앙—
뒤이어 터진 천둥소리는 방금 전보다도 훨씬 컸다. 사무실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고, 서연은 결국 억눌렀던 숨을 헉 하고 내뱉으며 몸을 움츠렸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나를 향해 기울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쌌고, 서연은 그대로 내 품 쪽으로 살짝 안기듯 몸을 맡겼다.
우뚝!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서연의 어깨에 닿은 내 손끝이 저릿하게 떨려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은은한 샴푸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그녀의 숨소리가 유난히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창밖에서 몰아치는 빗소리와 그녀의 숨소리가 겹쳐지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려진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미, 미안해요."
서연이 정신을 차린 듯 몸을 떼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듯 살짝 휘청거렸고, 나는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어깨를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그녀의 무릎이 살짝 꺾이는 걸 느꼈을 때, 나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아 균형을 잡아주었다.
"괜찮아요, 그냥... 있어요."
나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그렇게 말했다. 겉으로는 담담하게, 그저 동료를 챙기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의 체온이 이렇게 가까이서 느껴지는 게 얼마 만인지, 나는 순간적으로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입사 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왔었다. 점심시간에 가끔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퇴근길에 가끔 같은 방향으로 걷는 정도. 그 이상은 서로 넘지 않았던 선이었는데.
서연은 결국 몸을 완전히 떼지 못한 채 내 옆에 서 있었고, 우리 둘 사이의 거리는 평소라면 절대 허락되지 않았을 만큼 좁아져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내 팔에 닿아 있었고, 나는 그 감각 하나에 온 신경이 집중되는 걸 느끼며 숨을 죽였다. 창밖의 빗줄기는 여전히 거셌고, 사무실 안의 조명은 여전히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빗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듯했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조명 빛을 받아 이상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 빛이 서연의 얼굴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뺨에 남은 흐린 홍조를 보며, 그게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알 수 없어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진짜 이상하죠."
서연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조금씩 평정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다 큰 어른이 천둥소리에 이렇게 벌벌 떨고."
그녀가 그렇게 자책하듯 말했을 때, 나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어깨를 조금 더 단단히 감쌌다.
"이상한 거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누구나 무서운 게 있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서연 씨가 무서워할 때마다, 나는 언제든 이렇게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말. 그 사람의 옆자리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내 자리였으면 좋겠다는 말. 그 말들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그것들을 전부 삼켜야 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빗소리만이 그 공백을 채우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 채로 서 있었다. 서연도 딱히 몸을 빼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 역시 아직 다리에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고, 어쩌면 다른 이유였을지도 몰랐다. 나는 후자를 바라면서도, 그런 기대를 품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으려 애썼다.
서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조명의 흔들림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서연의 눈빛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었지만, 그 사이로 낯선 감정이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게 내 착각이었을까.
나는 그 미묘한 순간 속에서, 지금 이 팔을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이성이 조용히 경고하고 있었다. 여긴 회사고, 지금은 업무 시간이고, 이건 그저 동료를 챙기는 순간일 뿐이라고. 하지만 심장은 그 경고를 전혀 듣지 않았다.
"도윤 씨."
서연이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낮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우리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창밖에서는 다시 한번 번개가 번쩍였지만, 이번엔 아무도 천둥소리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살짝 벌어지는 걸 보았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은 긴장 속에서, 이 순간이 어디로 향할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사무실 안의 시계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듯했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