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생님과 엮이면 안 되는데

2화

나는, 다음 날부터 사흘 동안 한서연을 쫓아다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스스로도 좀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 첫날은 아침이었다. 교무실 앞 복도는 아직 등교하는 아이들로 붐비지 않아서 조용했고, 나는 신발주머니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나올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여덟 시 이십 분, 서연은 늘 그 시간에 교무실을 나와 1학년 부장실로 향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이긴 했지만, 실은 계획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했을 거다. 복도 모퉁이에서 걸어오는 그녀의 구두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심장이 갑자기 빨라지는 걸 느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사물함 문을 여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지나갔다.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두 번째는 점심시간이었다. 급식실로 가는 척 상담실 방향 계단을 일부러 돌아서 내려갔고, 마침 그녀가 서류철을 들고 반대편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엔 눈이라도 마주칠 줄 알았는데, 서연은 시선을 살짝 내리깐 채 계단 옆으로 비켜서더니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깨가 부딪힐 듯 가까웠는데도, 나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나를 짓눌렀다. 세 번째는 방과 후, 교무실 앞이었다. 이쯤 되면 우연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지경이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하준, 너 요즘 왜 자꾸 여기서 어슬렁거려?" 담당 교과 선생 하나가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을 때, 나는 등에 식은땀이 배는 걸 느끼면서도 태연하게 웃어넘겼다. "질문지 여쭤보려고요." 대답이 나오는 대로 뱉어놓고서야, 그 질문지가 뭔지도 정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선생은 별 의심 없이 지나갔지만,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이렇게까지 눈에 띄게 굴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내가. 셀 수 없이 많은 핑계를 준비해뒀으면서도, 정작 서연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지나쳐 보낸 게 사흘이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나는 결국 방과 후 상담실 근처에서 그녀를 붙잡았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지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떨렸는데, 서연은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눈매가 우묵했고, 그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어서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복도 창으로 들어오던 늦은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옆얼굴에 걸려 있었는데, 그 빛이 따뜻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아무런 온기도 찾을 수 없었다. "할 얘기 있으면 짧게 해." 그녀의 말투는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애매한 경계 위에 있었고, 그게 이상하게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왜 피해요, 저를."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지만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손끝이 싸늘하게 식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 손을 교복 주머니 속으로 슬쩍 밀어 넣었다. 서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하는 거 맞아."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듣는 건 다른 문제였다, 가슴이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유는요." 나는 물러서지 않았고,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며 대답했다. "이건 원래부터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어. 나도 알고, 너도 알잖아." 그녀의 음성엔 자책의 무게가 실려 있었지만, 나는 그 안에 다른 감정이 섞여 있다는 걸 느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 같은 애는 조심해야 해. 자꾸 눈에 걸려."] 그 말이 지금 이 순간 다시 떠오르는 게 얼마나 잔인한 우연인지,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럼 왜 시작했어요." 나는 반문했고, 서연은 그 질문에 순간 흔들리는 눈빛을 보였다.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워서.] 라는 대답이 나올 리 없었고, 그녀는 대신 입술을 짓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어떤 대답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복도 저편에서 청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고, 그 평범한 소리와 지금 이 순간의 온도 차가 너무 커서, 나는 잠깐 현실감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미안해." 결국 그녀가 뱉은 한마디는, 사과라기보다는 선고처럼 들렸다. 한심했다, 이 순간에도 그녀의 옆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가. 그녀가 몸을 돌리는 그 짧은 순간까지도, 나는 뭔가 붙잡을 말을 찾고 있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서연은 몸을 돌려 상담실 문을 향해 걸어갔고,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결정적인 게 이미 끝나버린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그날 밤,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그녀가 했던 말을 몇 번이나 되짚었는데, [피하는 거 맞아]라는 문장과 [미안해]라는 문장 사이에서 자꾸만 멈춰 섰다. 그 두 문장 사이에 뭔가가 더 있었을 텐데, 나는 그걸 캐물을 용기도, 캐물어서 얻을 답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던 것 같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눕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방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왔고, 나는 그 빛을 따라 눈을 감았다 뜨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조례 시간에 서연이 교탁 앞에서 낸 발표가 모든 걸 뒤엎었다. "이번 학기부터 생활지도 담당 학생을 지정한다." 그녀의 시선이 반 아이들을 훑다가, 이상할 만큼 오래 나에게 머물렀다. 교탁 위에 놓인 출석부를 넘기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나는 맨 앞줄에 앉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이하준." 이름이 불리는 순간, 교실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야, 이하준 뭐 잘못했냐?" 뒷자리에서 누군가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 소란 속에서 서연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듯 다음 이름을 이어서 불렀고, 그 무심한 목소리가 오히려 나를 더 헷갈리게 만들었다. 피하겠다던 사람이, 왜 나를 자기 관리 대상으로 못 박아버린 걸까. 책상 아래로 손을 말아 쥐었는데, 손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지는 게 느껴졌다. 어제까지의 그 서늘한 거절과, 오늘 아침의 이 갑작스러운 지정 사이에서, 나는 그녀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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