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차동이."
내가 그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차동이, 일어나."
대답이 없었다.
당연했다.
목이 반쯤 잘려나간 몸에서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철분 냄새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구분이 안 됐다.
비릿하고 미끈거리는 냄새가 공기를 채웠다.
곽두식이 차동이를 안고 있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의 팔이 차동이의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원숭이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낮게 울었다.
울음소리라기보다는 신음 같았다.
짐승들도 알고 있었다.
뭔가 끝났다는 걸.
나는 무릎을 꿇었다.
땅바닥의 흙이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차가웠다.
차동이의 몸도 아직은 따뜻했는데, 곧 저 흙처럼 차가워질 거였다.
손이 떨렸다.
손이 떨리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눈이 뜨거운데 물기는 하나도 없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슬픔은 분명히 있는데, 그 슬픔이 눈으로 나오는 통로가 막힌 것 같았다.
"이게 뭐야."
내가 야현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대가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목에서 나온 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승리의 대가."
야현이 다시 말했다.
"모든 승리는 뭔가를 대신 가져가."
"말도 안 돼."
"말은 이미 돼 있었어."
야현이 냉정하게 말했다.
"넌 첫 번째 조건을 이기라고만 들었지, 공짜라고 듣진 않았어."
그 말이 맞았다.
분명히 맞았다.
그런데 맞는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계약서를 읽지 않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논리.
그 논리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건 아니야."
"뭐가 아닌데."
야현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았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되돌려."
내가 말했다.
"차동이를 되돌려."
야현의 노란 눈이 나를 응시했다.
오래, 아주 오래.
그 눈에는 동공이 없었다.
노란색 유리알 두 개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되돌릴 수 있어."
야현이 말했다.
숨이 잠깐 트였다.
"그럼 해."
"그럼 서은은 못 데려와."
숨이 멈췄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서 들렸다.
쿵.
쿵.
쿵.
세 번째 박동에서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뭔 소리야."
"계약은 한 방향이야."
야현이 설명하듯 말했다.
"이 세계에 없던 걸 가져오려면, 이 세계에 있던 뭔가가 나가야 해. 균형이라고 해두자."
"차동이가 그 균형이었다는 거야?"
"넌 이겼고, 대가가 지불됐어."
야현이 말했다.
"그걸 되돌리면 계약 자체가 무효가 돼. 서은을 데려올 통로도 사라져."
"그럼 나는."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차동이를 살리고 서은을 포기하란 거야, 아니면."
"선택이야."
야현이 짧게 말했다.
"난 강요하지 않아. 다만 알려줄 뿐이야."
알려줄 뿐이라니.
마치 주식 시장의 시세를 알려주는 것처럼 말했다.
매수와 매도, 그 사이에서 선택은 네 몫이라는 말투.
투자자가 손실을 봐도 그건 투자자의 책임이라는 논리.
그 냉정함이 오히려 더 잔인했다.
곽두식이 그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뭐라는 거야, 저 여자."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낮은데 흔들리고 있었다.
"악마."
내가 대답했다.
"거래의 대가를 말하고 있어."
"차동이 목숨이 그 대가였어?"
곽두식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네가 그 계약을 한 거야?"
곽두식이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 원망이 있었다.
아니, 원망이라기보다는 배신감이었다.
같이 있던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걸었다는 배신감.
"조건까지는 몰랐어."
"몰랐다고 끝나는 게 아니잖아!"
곽두식이 소리쳤다.
"애 목이 잘렸어, 도윤. 몰랐다고 애가 살아나?"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곽두식의 말이 맞았다.
몰랐다는 건 변명이 안 됐다.
몰랐다는 말이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그 사실이 뒤늦게 몸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쉬는데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되돌려."
내가 다시 야현에게 말했다.
"차동이를 살려."
"그럼 서은을 포기하는 거야."
야현이 확인하듯 물었다.
"확실해?"
손끝이 차가워졌다.
서은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지켜주지 못했던 사람.
그 얼굴이 흐려지지도 않는데, 지금 눈앞에는 목이 잘린 차동이가 있었다.
기억이 스쳤다.
서은이 웃던 얼굴.
그 웃음이 마지막이었다는 걸 몰랐던 그날.
"오빠, 나 먼저 가 있을게." 그 말이 마지막 인사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차동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밝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형, 나 믹서기 사줘." 그 말이 며칠 전이었다.
불과 며칠 전.
두 얼굴이 겹쳐졌다.
서은과 차동이.
살아 있었던 사람과 지금 살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이미 죽어서 데려오려는 사람과, 이미 죽어버린 사람.
선택해야 했다.
선택할 수 없는데 선택해야 했다.
세상에 이런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됐다.
누구도 이런 걸 고르게 만들면 안 됐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야현이라는 존재가 그걸 강요하고 있었다.
"시간을 줘."
내가 겨우 말했다.
"시간은 없어."
야현이 말했다.
"차동이의 몸이 완전히 식으면,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해져."
"얼마나."
"10분."
숫자가 선고처럼 떨어졌다.
10분.
그 안에 결정해야 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무시무시하게 짧아 보였다.
평소에 10분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을 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의 목숨과 다른 사람의 존재를 저울질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곽두식이 차동이의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차동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마치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달래는 것처럼.
그 모습이 더 처참했다.
원숭이 1호가 내 다리를 붙잡고 낮게 울었다.
마치 결정을 재촉하는 것처럼.
그 작은 손이 내 바짓단을 붙잡는 감촉이 선명했다.
나는 야현을 바라봤다.
야현은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표정함이 오히려 압박이었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웃기라도 했으면 나았을 것 같았다.
"9분 남았어."
야현이 말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피부로, 심장으로, 그 초조함이 스며들었다.
손이 떨렸다.
서은의 얼굴과 차동이의 웃는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둘 다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몸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은을 살리면 차동이를 영원히 잃는다.
차동이를 살리면 서은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이건 계산이 아니었다.
계산할 수 없는 걸 계산하려는 시도였다.
곽두식이 나를 올려다봤다.
"도윤아."
그의 목소리가 낮게 흔들렸다.
"제발, 뭐라도 해봐."
뭐라도.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뭐라도 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했을 거였다.
야현이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아니, 시계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을 확인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8분."
숫자가 또 떨어졌다.
내 안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실제로 소리가 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분명히 들렸다.
선택.
그 단어가 머리를 짓눌렀다.
이가 갈렸다.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목이 말랐다.
입 안이 바싹 말라서 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야현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은 아니었다.
그저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7분."
그 숫자가 떨어지는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시간은 절대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야현에게는 그저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사람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구경거리.
내 손이 차동이의 손을 잡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온기가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차동아."
내가 다시 그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렀다.
목이 메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곽두식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서은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얼굴이 흐릿해 보였다.
반면 눈앞의 차동이는 너무 선명했다.
너무 선명해서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6분."
야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감정 없는 목소리.
숫자를 세는 것뿐인데도, 그 목소리가 내 심장을 조여왔다.
이 선택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데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멈춰달라고 애원해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야현이 나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결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