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쌤, 지금 유혹하시는 거죠?

3화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는 이상한 침묵 속에서 지냈다.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도, 밥을 먹을 때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화면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인스타그램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정작 확인해보면 별다른 메시지는 없었다. 나는 그 계정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다. 게시물은 여전히 그 유리컵 사진 하나뿐이었다. 팔로워도 팔로잉도 없었다. 소개글도 없었다. 마치 유령 계정 같았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텅 빈 공간에 사진 한 장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몇 번이나 그 사진을 확대해봤다. 유리컵 안에 든 물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배경은 어두웠다. 방 안일까, 아니면 다른 곳일까.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계정 앞에서 며칠을 서성였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맞팔을 눌렀다. 손끝이 떨렸다. 별거 아닌 행동인데도 숨이 조금 가빠졌다. 화면 위에 뜬 파란 버튼 하나가 마치 어떤 경계를 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러자 몇 시간 뒤 새 게시물이 하나 더 올라왔다. 이번엔 창밖 풍경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익숙한 배경이었다. 학교 뒤편 주차장이었다. 저 각도, 저 나무, 저 담벼락. 매일 등하교할 때 보던 풍경이었다. 확신이 들었다. 그 계정은 한서은의 것이었다. 생물 수업은 매일 이어졌다. 그녀는 여전히 수업 중에는 완벽하게 프로다웠다. 판서는 정확했고,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언제나 매끄러웠다. 사적인 티는 전혀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시선은 달랐다. 수업 중간중간, 유독 자주, 유독 오래, 내 쪽에 머물렀다. 반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나만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미묘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이 머무를 때마다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나는 필기를 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펜을 쥔 손끝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금요일 저녁,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였다. 나는 교실을 정리하고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다. 텅 빈 복도를 걷는데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며 소리를 냈다. 윙-. 낮게 울리는 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그 소리를 지나 생물실 앞을 지나칠 때였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그녀가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그녀의 옆모습이 유난히 선명했다. 낮에 보던 단정한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넥타이는 조금 풀려 있었고, 안경을 벗은 채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몇 초간 멈춰 섰다. 들어가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도현 학생." 그녀가 고개를 들지 않고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문틈으로 발소리를 들었을까. "왜 아직 안 갔어요." "그냥, 정리하다가."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웃음도 아니고 무표정도 아닌, 그 사이의 미묘한 표정이었다. "들어와요."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생물실 특유의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책상 위에 놓인 표본병들이 스탠드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그녀는 서류를 정리하며 가볍게 말했다. "인스타 계정 찾았나 보네요."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녀가 알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서 있었지만, 손바닥에서는 이미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팔로우 알림 뜨더라고요."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오늘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가벼운 말투였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버스에서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요. 교복 색깔, 표정, 다." 그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버스 안에서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몸이 쏠렸던 그 짧은 접촉, 어깨에 닿았던 온기, 순간적으로 마주쳤던 시선. 그게 그녀에게도 각인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그날, 죄송했어요. 갑자기 몸이 쏠려서."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녀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각도, 눈매가 휘어지는 방식, 그 모든 게 천천히 반복 재생되는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생물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걷는 내내 등 뒤가 뜨거웠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였다. 천장을 바라봐도, 눈을 감아도, 계속 그녀의 마지막 표정이 떠올랐다. 웃음이라기엔 너무 여유로웠고, 그냥 미소라기엔 뭔가 다른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 시계를 확인했다. 밤 열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다시 열어봤다. 새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어두운 방 안,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빛. 그게 다였다. 별다른 설명 문구도 없었다. 왜 이런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는 걸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게 그냥 사적인 계정일 수도 있었다. 내가 과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이건 그냥 우연이야. 이건 그냥 평범한 사진이야. 하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 몸이 뜨거워졌다. 머릿속이 뒤엉켰다. 이성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충동적으로 방문을 잠갔다. 철컥. 문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에도 손이 떨렸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녀가 이 순간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 영상을 찍었다. 찍고 나서도 몇 번이나 다시 봤다. 지워야 한다는 생각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부딪혔다. 삭제와 전송을 몇 번이나 오갔다. 손이 떨렸다. 화면을 몇 번이나 눌렀다 지웠다 반복했다. 결국 나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탁. 그 짧은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그날 밤의 그 순간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답장이 왔다. "재밌네요." 딱 그 두 글자였다.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나는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재밌다는 게 무슨 뜻일까. 좋다는 걸까, 나쁘다는 걸까. 화가 났다는 걸까, 그냥 흥미롭다는 걸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문장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갖다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답장을 보내려 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자판 위에서 손이 멈췄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사과를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말을 이어야 할지. 결국 나는 아무 답도 보내지 못한 채 등교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이미 한서은이 교탁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도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목소리도, 자세도,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그 무표정이 오히려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노트를 펴놓고도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계속 창밖을 봤다가, 다시 교탁 쪽을 봤다가 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그녀가 칠판에 다음 수업 공지를 적었다. 분필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사각. 사각. 규칙적인 그 소리가 이상하게 신경을 긁었다. "이번 주 수요일 보충수업, 시간이 변경됐어요. 관련 학생들은 개별 안내 확인하세요." 나는 별생각 없이 그 문장을 흘려들었다. 종이 울리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옆자리 최유나가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야, 보충수업 명단에 너 이름 있어." "내가?" 나는 원래 보충수업 대상이 아니었다. 성적으로도 딱히 걸릴 게 없었고, 담당 과목도 아니었다. "내가 왜?" 다시 물었지만 최유나는 별생각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방금 새로 올라온 거야. 명단 마지막에 추가됐던데." 나는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화면 속 명단을 눈으로 훑었다.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낯선 자리에 내 이름이 끼워져 있었다. 이도현. 명단 맨 아래, 다른 글씨체로 덧붙여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명단에 내 이름이 새로 추가돼 있었다. 담당 교사란에는 한서은, 이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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