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마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는데, 그 짧은 쇳소리 하나에도 나는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들어왔다는 걸 실감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이렇게 무겁게 들릴 일인가.' 나무로 짠 마차 벽은 오래된 배의 갑판처럼 삐걱거렸고, 그 틈새로 바깥의 흙먼지 냄새가 스며들어왔는데, 노예 시장의 그 축축하고 비릿한 공기와는 또 다른 냄새여서 나는 코끝을 찡그리며 담요를 조금 더 끌어올렸다. 벗은 채로 서 있던 시간이 얼마였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흐릿한데, 겨우 담요 한 장 덮은 것만으로 안심이 되는 걸 보면 사람은 정말 별거 아닌 것에도 안도할 수 있는 존재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생각이 서글퍼서 잠깐 웃었다. 헛웃음이었다.
강도현은 맞은편 좌석에 앉아 갑옷 자락을 정리하며 나를 흘깃 살폈는데, 그 시선에는 동정도 아니고 호기심도 아닌, 뭐라 말하기 애매한 무게가 실려 있어서 나는 괜히 옷깃을 끌어당겨 몸을 더 웅크렸다. 그의 손가락은 갑옷 이음새의 작은 고리를 하나하나 확인하듯 눌러보고 있었는데, 그 동작이 습관인지 아니면 나를 의식적으로 안 보려는 시늉인지 나로서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얼굴선은 조각가가 며칠을 붙잡고 다듬은 것처럼 각이 살아 있었고, 눈매는 차가운 대리석처럼 무표정했는데, 그 무표정함이 오히려 어떤 표정보다도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자꾸만 시선을 피했다.
마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하자 앞자리 마부석에서 누군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목소리가 유독 낮고 걸걸한 걸 보니 인간은 아니겠다는 짐작이 들었다. 그 콧노래는 어디서 들어본 적 없는 곡조였는데, 박자가 일정하지 않고 중간중간 흐트러졌다가 다시 맞아 들어가는 게 마치 즉흥으로 지어내는 노래 같았다.
"저기 앉은 아가씨가 그 물건이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며 던진 말에 나는 물건이라는 단어에 다시 한번 몸이 굳었는데, 손끝이 무릎 위에서 저절로 오므려졌다. 강도현이 곧바로 낮은 목소리로 정정했다. "사람입니다." 그 한마디가 뭐 대단한 배려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인지 가늠이 안 돼서 속으로만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노예 시장에선 다들 그렇게 안 불렀는데.' 마부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 이름이 김돌쇠라고 밝혔는데, 짧고 다부진 체구에 팔뚝이 유독 두꺼운 걸 보니 드워프족인가 싶었고, 손등에 새겨진 문양 같은 흉터 몇 개가 마치 대장간에서 얻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껄껄 웃으며 앞으로 사흘은 이 마차 안에서 지내야 하니 편히 있으라고 덧붙이는 말투가 어쩐지 여관 주인처럼 능글맞았다.
"사흘이면 뭐, 지루하실 순 있어도 굶기진 않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지." 김돌쇠가 뒤통수도 안 돌리고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나는 속으로 '그건 또 무슨 자기소개야' 싶었지만, 그 능글맞은 화법이 어쩐지 마음을 조금 놓게 만들기도 했다.
사흘이라는 말에 나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는데, 사흘이면 몸이 또 그 낯선 열기에 사로잡힐 시간이 온다는 뜻이었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손끝이 저절로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이 몸은 늘 이랬다. 원치 않는 순간에 원치 않는 방식으로 반응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저주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청림 마을의 의원이 내 몸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젓던 그 표정이 떠올랐는데, 그는 병명을 말해주지도 않았고 그저 눈을 피하며 어머니에게만 짧게 몇 마디를 속삭였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강도현이 그 사실까지 알고 있을까 싶은 생각에 나는 그의 눈을 슬쩍 살폈지만, 그는 그저 창밖을 응시하며 뭔가 계산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 내 몸에 대한 어떤 특별한 관심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내 몸을 보면 둘 중 하나였다, 혐오하거나 탐하거나. 노예 시장의 상인은 후자였고, 청림 마을의 아이들은 전자였다.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 지르던 아이들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런데 이 남자는 나를 물건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나를 특별히 보지도 않았고, 그 균형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친절함에는 대체로 이유가 있었고, 이유 없는 친절은 더 큰 이유를 숨기고 있는 법이었다.
"왕국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예 시장에서 그가 했던 말이 마차의 덜컹거림 속에서 다시 귓가에 맴돌았는데,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아직도 정확히 재보지 못하고 있었다. 구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내가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그가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왕국이라니. 나는 청림 마을 바깥으로 나가본 적도 손에 꼽는데, 그런 내가 왕국을 구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건 마치 개구리가 용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것처럼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친절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나중에 요구하는 게 크더라.' 청림 마을에서도 그랬다.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이가 나를 배척했지만, 가끔 나를 이용하려는 자들만은 웃는 얼굴로 다가왔었다. 마을 이장이 그랬고, 약초상이 그랬다. 그들은 내 몸의 이상함을 알고 있었고, 그걸 돈으로 바꿀 방법을 궁리하던 눈빛이었는데, 나는 그 눈빛을 구분하는 법을 그때 배웠다. 강도현의 눈빛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기억을 애써 밀어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노을이 붉게 번지는 하늘 아래로 낯선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들판 사이로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이 마치 홀로 남겨진 이정표처럼 보였고, 그 풍경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눈에 익어서, 나는 이 세계 어딘가에는 나와 닮은 풍경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편하면 말해." 강도현이 문득 던진 그 말이 너무 짧아서 나는 잠시 무슨 뜻인지 되새겨야 했는데, 그가 덧붙인 말은 더 짧았다. "쉴 곳은 마련할 테니." 그 무뚝뚝한 배려가 오히려 낯설어서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이 남자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아직 감을 잡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마차 안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이 남자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조용히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갑옷의 이음새를 다시 한번 매만지는 소리, 그리고 마차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 그런 사소한 소음들이 침묵을 조금씩 채워주는 게 오히려 고마웠다.
김돌쇠가 앞에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계속되었는데, 그 리듬이 이상하게도 평화로워서 나는 잠깐이지만 이 여정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노을은 점점 더 짙어졌고, 마차 바퀴 소리는 일정한 박자로 계속되었으며, 강도현은 여전히 창밖을 응시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콧노래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