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섬에서 아내를 구하기로 했다

1화

인구관리청 3층 심사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이준호는 그 불빛을 세 번째로 올려다봤다. 낡은 사무용 책상 하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 두 개. 벽에는 인구증가 캠페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색이 다 바래 있었다. 딸깍. 심사관이 서류를 내려놓는 소리였다. 여자, 오십대, 무표정. 세 번째 자녀 승인, 거부입니다. 심사관이 담담하게 말했다. 한서연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유가 뭡니까. 준호가 먼저 물었다. 귀 가정의 탄소 배출 지수가 기준치를 초과했습니다. 심사관이 태블릿을 돌려 보였다. 준호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숫자와 그래프. 빨간색으로 표시된 초과 구간. 지난달 대비 몇 퍼센트나 초과했는데요. 준호가 물었다. 0.3퍼센트입니다. 심사관이 대답했다. 0.3퍼센트. 준호가 그 숫자를 되풀이했다. 그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인구관리청 시행령 제12조에 따른 표준입니다. 심사관이 형식적으로 답했다. 제12조 3항, 배출 지수 산정 방식은 6개월 평균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준호가 태블릿을 다시 가져갔다. 지금 보시는 이 수치, 지난달 한 달 치만 뽑은 거 아닙니까. 심사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시스템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심사관이 말을 더듬었다. 오류요. 준호가 픽 웃었다. 오류로 사람 인생을 접습니까. 준호가 태블릿을 다시 심사관 쪽으로 밀었다. 6개월 평균으로 다시 계산해보세요. 지금 여기서. 심사관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이마에 땀이 살짝 배어 나왔다. 서연이 옆에서 숨을 죽였다. 무릎 위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준호는 미동도 없었다. 삐빅. 계산 완료. 기준치 이하로 확인됩니다. 심사관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승인해주시죠. 준호가 팔짱을 꼈다. 그, 이건 담당자 재량으로 재심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심사관의 말투가 급격히 공손해졌다. 재량은 무슨. 규정대로 하면 되잖아요. 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시 안 하시면 민원 넣겠습니다. 관리청 감사실로. 심사관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잠깐, 잠깐만요.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심사관이 다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좁은 심사실을 채웠다. 삐빅. 승인 처리되었습니다. 서류를 출력해드리겠습니다. 프린터가 윙 하고 돌아갔다.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밀려나왔다. 서연이 준호의 팔을 붙잡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됐어. 준호가 짧게 말했다. 심사관이 서류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없었다. 준호는 서류를 받아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서연은 준호의 옆얼굴을 계속 쳐다봤다. 지하철 창밖으로 어두운 터널이 스쳐 지나갔다. 안내방송이 흘렀다. 다음 역은. 당신 아까 그거 어떻게 알았어. 서연이 물었다. 뭘. 준호가 창밖을 봤다. 시행령 조항. 산정 방식. 일하다 보면 다 보게 돼. 준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진짜? 그런 걸 외우고 다녀? 준호는 대답 대신 손잡이를 꽉 잡았다. 실은 며칠 전부터 준비했었다. 관리청 게시판을 뒤져 시행령 전문을 다운받아 조항별로 정리해뒀다. 세 번째 거부 통보가 올 걸 예상했으니까. 말은 안 했지만. 승인서를 들고 집에 온 날 밤, 서연은 승인서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형광등 아래 종이가 반짝였다. 준호는 그 옆에서 맥주를 땄다. 탁. 캔 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제 셋째구나. 서연이 배를 쓰다듬듯 손을 얹었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배였다. 임신은 언제 할 건데. 준호가 물었다. 당장. 서연이 웃었다. 준호도 따라 웃었다. 캔을 들어 가볍게 부딪혔다. 건배할 것도 없는데 건배는.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해야지. 서연이 캔을 다시 부딪혔다. 깡. 경쾌한 소리가 좁은 거실을 채웠다. 다음 날 아침.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식탁 위 토스트가 반쪼가리로 남아 있었다. 서연은 커피잔을 든 채 소파에 걸터앉았다. [속보. 정부, 인구절벽 대응 비상조치 발표.] 준호가 리모컨을 들어 볼륨을 올렸다. [정부는 오늘 오전 긴급 발표를 통해 위탁잉태계약 제도를 전면 허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한 특단의 조치로, 민간 대리모 계약이 사실상 전면 합법화되는 것입니다.] 서연의 눈이 화면에 못 박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사회 전반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위탁잉태계약. 서연이 그 말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게 뭐야. 준호가 눈을 찌푸렸다. 대리모, 근데 합법. 서연이 리모컨을 가져가 볼륨을 더 키웠다. 화면 하단에 자막이 빠르게 지나갔다. 준호는 그 글자를 눈으로 따라가려다 놓쳤다. [정부 관계자는 참여 가정에 특별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원금이라니. 세제 혜택까지. 준호가 미간을 좁혔다. 서연의 눈빛이 달라졌다. 준호는 그 눈빛을 보며 조금 불안해졌다. 우리랑은 상관없는 얘기잖아. 준호가 말했다.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속 자막을 눈으로 계속 따라갔다. 커피잔을 든 손이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서연아. 준호가 다시 불렀다. 응. 서연이 짧게 대답했다. 눈은 여전히 화면에 붙어 있었다. 준호는 뭔가 더 말하려다 그만뒀다. 아내의 저런 표정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뭔가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의 얼굴이었다. 삐리링. 서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강태식 원장. 서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준호는 그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서연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갔다. 네? 진짜요? 서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준호는 뉴스 화면과 서연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화면에서는 여전히 정책 발표 자막이 흐르고 있었고, 서연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강 원장이 뭐라고 했는지, 준호에게는 절반도 들리지 않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서연이 전화를 끊었다. 뭐래. 준호가 물었다. 서연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준호를 바라봤다. 표정이 묘하게 밝았다. 지나치게 밝았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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