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이송 차량은 검은 승합차였다. 창문이 전부 검게 코팅되어 있었다.
부부의 짐은 단출했다. 옷가지 몇 벌, 서연의 태블릿, 준호의 노트북.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노트북은 도착하면 반납하셔야 합니다. 동승한 안내원이 말했다.
왜요. 준호가 물었다.
보안 규정입니다. 안내원이 짧게 대답했다.
그럼 개인 기록은요. 준호가 다시 물었다.
전부 몰수 후 보관됩니다. 계약 종료 시 반환됩니다. 안내원이 대답했다.
준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계약 종료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시작도 안 했는데 종료라는 단어를 먼저 듣는 게 께름칙했다.
서연이 준호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준호는 창밖을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창문 너머로 빛만 어렴풋이 스쳤다.
부아앙.
차가 항구 어딘가에 멈췄다. 배로 옮겨 타는 절차가 이어졌다.
안내원이 명단을 확인했다. 이름을 불렀고, 부부는 대답했다.
여기, 여기요. 서연이 손을 들었다.
절차는 간단했지만 지루했다. 신분증을 맡기고, 서명을 하고, 다시 짐을 확인받았다.
배는 작지 않았지만 창문이 없었다. 실내에는 부부 말고도 다섯 커플이 더 있었다.
다들 표정이 비슷했다. 기대와 불안이 반씩 섞인 얼굴.
서연이 옆자리 여자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여자도 어색하게 웃었다.
여자의 옆에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무릎만 내려다봤다.
다른 커플은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지만 신호는 없었다.
준호는 그 모습을 눈으로 훑었다.
다들 뭔가에 쫓겨서 온 얼굴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시간이 흐른 뒤, 배가 멈췄다.
끼익.
선체가 흔들리는 소리.
도착했습니다.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부는 배에서 내렸다. 짙은 소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늘은 파랬다. 지나치게 파랬다.
섬 전체가 관광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었다.
해변에는 파라솔도 없었고, 안내 표지판도 없었다.
바람만 불었다.
걸어서 십 분 정도 이동하니 낮은 건물들이 나타났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오래된 시설.
벽에는 이끼가 껴 있었다. 창문 몇 개는 깨진 채로 방치돼 있었다.
청연도 수용시설, 이라는 간판은 없었다. 대신 나무판에 손글씨로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환영합니다.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누가 급하게 쓴 것 같았다.
서연이 그 문구를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준호는 웃지 않았다.
간판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처럼 느껴졌으니까.
주소도 없고, 이름도 없는 곳.
이런 곳은 지도에도 안 나오겠지. 준호가 속으로 생각했다.
안내원이 부부를 큰 강당 같은 건물로 데려갔다.
안에는 이미 다른 커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의자는 낡았고, 바닥은 시멘트 그대로였다.
앞에는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오십대 정도. 몸집이 크고 팔뚝에 털이 유난히 많았다.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을 관리하는 노현도입니다. 남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목소리가 낮고 걸걸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청연도의 특별 손님이십니다. 노현도가 팔을 벌리며 말했다.
특별 손님이라는 말에 몇몇이 헛웃음을 지었다.
서연이 준호를 쳐다봤다. 준호는 노현도를 계속 응시했다.
뭔가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을 훑어보는 눈빛.
특히 여자 쪽만.
노현도의 시선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여자들 쪽에서 오래 머물렀다.
준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이곳은 여러분의 계약이 완수되는 순간까지, 하나의 사회로 운영됩니다. 노현도가 이어 말했다.
사회에는 규칙이 있죠.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현도가 뒤에 걸린 대형 화면을 켰다.
딸깍.
화면에 세 개의 계급이 떠올랐다.
[상급 - 특별관리], [중급 - 일반관리], [하급 - 평민]
모든 참가자는 최초 배정에서 평민으로 시작합니다. 노현도가 설명했다.
점수를 쌓으면 계급이 올라갑니다. 점수는 여러 방식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강당 안이 조용해졌다. 다들 화면만 쳐다봤다.
계급이 오르면 뭐가 달라지나요. 다른 좌석에서 한 남자가 물었다.
숙소가 달라집니다. 식사가 달라집니다. 자유 시간이 달라집니다. 노현도가 짧게 답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 취급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노현도가 덧붙였다.
몇몇이 웅성거렸다.
서연이 손을 들었다.
점수는 뭐로 매기는 건가요. 서연이 물었다.
노현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노현도가 대답을 피했다.
서연이 다시 물으려 했지만, 준호가 손을 살짝 눌렀다.
여기서 더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준호는 그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곧 알게 된다는 말은, 지금은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데서 숨기는 건 대체로 좋은 게 아니었지.
안내에 따라 개인 숙소로 이동하시고, 오늘 저녁 오리엔테이션에서 자세한 규칙을 안내받으시기 바랍니다. 노현도가 마이크를 내렸다.
삐-.
마이크가 꺼지는 소음.
부부는 짐을 들고 안내원을 따라 걸었다.
복도는 길고 어두웠다. 형광등 몇 개는 깜빡이며 겨우 버티고 있었다.
숙소는 좁고 낡았다. 창문 하나, 침대 하나, 화장실 하나.
최소한의 시설이었다.
서연이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깨끗하네.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대 밑, 벽 모서리, 천장 구석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뭐 봐. 서연이 물었다.
감시 카메라. 준호가 짧게 대답했다.
서연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있어? 서연이 물었다.
찾는 중. 준호가 대답했다.
준호는 벽 콘센트 옆까지 뒤졌다. 손끝으로 표면을 훑었다.
작은 구멍 하나가 눈에 걸렸다.
이거 봐. 준호가 서연을 불렀다.
서연이 다가와 구멍을 들여다봤다.
렌즈네. 서연이 낮게 말했다.
역시. 준호가 대답했다.
이 방만 있는 게 아닐 거야. 준호가 덧붙였다.
전부 감시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말도 조심해야 되겠다. 서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딸랑.
문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입니다. 전원 강당으로 모여주십시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부부는 서로를 쳐다봤다.
뭔가 이 섬의 진짜 얼굴이, 이제부터 드러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