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왕녀, 심해에 잠들다

4화

그 말을 뱉은 뒤로 사흘이 지났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나를 더 자주 살폈다. 식사 때마다 내 그릇에 무엇이 담겼는지 확인했고, 밤이 되면 내 방 앞을 지나가며 발소리를 남겼다. 나는 그 발소리를 벽 너머로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어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걸지도 몰랐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시는 걸까.'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버지의 침묵은 허락도 아니었고 거절도 아니었다. 그저 유예였다. 나는 그사이 결심을 굳혔다. 남쪽 해역, 산호초가 무너진 그 깊은 곳으로 직접 내려가겠다고. 밤마다 지도를 펼쳤다. 손끝으로 해역의 등고선을 따라가며 깊이를 가늠했다. 어업 담당관들이 표시해둔 붉은 선. 그 선 아래로는 아무도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서른 자. 그 아래는 대체 뭐가 있는 걸까.' 궁금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얼굴이 떠오르면 두려움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아버지에게 그 말을 꺼낸 건 넷째 날 아침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가겠어요." "…뭐라고 했느냐." 아버지의 손에서 수저가 미끄러졌다.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남쪽 해역이요. 어업 담당관들이 무리라 했던 그 깊이, 제가 내려갈 수 있어요."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낯빛이 순식간에 바뀌는 걸 보며, 나는 이 대화가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안 된다. 왕녀가 직접 잠수를 나서는 일은 없었다." "백성들이 굶고 있어요. 저는 그 깊이까지 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요." "다른 방법을 찾겠다." "다른 방법이 뭔데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이 식탁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창밖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소리인데, 그 순간만큼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그 침묵을 답으로 받았다. "저는 가요, 아버지. 이번엔 제가 결정할게요." 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네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었지." 아버지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한마디에 나는 순간 숨이 멈췄다. "이번엔 제가 결정할게요, 라고." 아버지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결국 아버지는 허락했다. 완전한 승낙은 아니었지만, 막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 역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원정 준비는 이틀 만에 갖춰졌다. 배 한 척, 경험 많은 어부 세 명, 그리고 나. 어부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명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살폈고, 또 한 명은 미심쩍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가장 나이 든 어부만이 묵묵히 짐을 챙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현도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저 없이 어디 가시게요." "위험해." "그러니까 같이 가야죠." 도현은 팔짱을 낀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나는 더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도현을 말릴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출항 전날 밤, 나는 오랜만에 어릴 적 자주 가던 바닷가 동굴로 향했다. 그곳은 어머니와 함께 처음 잠수를 배운 곳이었다. 달빛이 동굴 입구를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소금기와 습기가 뒤섞인, 오래된 기억의 냄새였다. '여기서 미르신께 처음 인사드렸었지.' 어머니는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이 동굴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내 손을 잡고 물속에 들어갔다. 그때의 물은 지금보다 훨씬 차가웠던 것 같은데, 어머니의 손은 늘 따뜻했다. "미르신은 무서운 분이 아니야.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지. 네가 바다에서 길을 잃으면, 그분이 반드시 손을 내밀어주실 거야." 그때는 그 말이 그저 다정한 위로처럼 들렸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들렸다. 손을 내밀어주는 것과, 데려가는 것. 그 둘의 경계가 어딘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물에 손을 담갔다. 차가운 물살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손끝에서부터 서서히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저 내일 내려가요. 서른 자보다 더 깊은 곳으로.' 대답은 없었다. 그저 파도가 동굴 벽을 두드리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심장 박동처럼 일정했다. 나는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어릴 적 어머니가 앉았던 자리를 가늠해 보았다. 그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어느 순간, 물속에서 은빛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눈을 크게 뜨고 보았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헛것을 본 걸까.' 확신할 수 없었다.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마치 누군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었다. 나는 그 안도감을 붙잡은 채 동굴을 나섰다. 밤하늘엔 별이 유난히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배에 올랐다. 하늘은 맑았다. 바람도 잔잔했다. 항구에는 몇몇 백성들이 나와 배웅했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부두 끝에 서서 배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순간, 나는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였는지, 두려움이었는지 나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바람이 뱃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문득 어젯밤 동굴에서 보았던 은빛 무언가를 다시 떠올렸다. '그게 정말 미르신이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마음 한구석에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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