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번 생은 내가 설계한다

3화

쿵.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 이번엔 진짜 빨리 죽었네.'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천장을 보고 있었다. 흰 벽지, 금색 문양의 몰딩, 창가에 걸린 레이스 커튼. 내 방이었다. 정확히는, 매번 되돌아오는 그 방. 익숙하다고 해서 좋아진 건 아니었다. 아홉 번, 열 번을 봐도 이 천장은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지긋지긋했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하녀 하나가 커튼을 젖히며 말했다. 목소리에 밝은 긴장이 묻어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의 긴장. "오늘 생일이시잖아요. 얼른 단장하셔야죠." '그럼 그렇지.' 나는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만져봤다. 매끄러운 피부, 열여덟 살의 손등. 어느 곳에도 화상 흉터는 없었다. 손끝으로 볼을 꾹 눌러봤다. 아프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이렇게 시시했다. 열 번째. 이번이 열 번째 죽음이었다. 아홉 번의 죽음 뒤에 살아낸 열 번째 삶이 그렇게 끝났고, 나는 지금 열한 번째 삶의 첫날 아침에 앉아 있었다. 숫자를 세는 게 이젠 습관처럼 익숙했다. 3번째 삶엔 화재로, 5번째엔 마차 사고로, 7번째엔... 그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목이 졸리는 감각이 아직도 목덜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열 번째 삶은 화재였는데, 순서가 달랐다. 늘 혼약식 이후에 벌어지던 화재가 이번엔 서약문을 낭독하는 도중에 벌어졌다. '뭐가 바뀌고 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녀가 옷장을 뒤지며 이것저것 꺼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옷걸이가 부딪치는 소리, 서랍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 익숙한 소리들을 들으면서, 나는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곱씹어봤다. 두려움? 아니었다. 아홉 번의 죽음을 거치고 나서 두려움이란 감정은 거의 마모돼 없어졌다. 처음엔 죽는 순간마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냥 '아 또'라는 생각뿐이었다. 허탈함? 조금은.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은, 낯섦이었다. 나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아니다. 처음 눈을 떴던 그날—열여덟 살 생일 아침, 아홉 번째 삶이 끝나고 열 번째가 시작되던 그 순간—나는 내가 다른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다른 삶을 살아온 존재라는 걸 느꼈다. 어디서 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이 저주받은 몸에, 이 저주받은 가문에, 강제로 되돌아와 갇혔다는 감각만 선명했다. '내가 원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몸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 그게 열 번째 삶을 시작하며 깨달은 진실이었다. 이번, 열한 번째 삶에서도 그 진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이 몸에, 이 반복에, 갇혀 있었다. 몇 번을 겪어도 도망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저택을 벗어나면 산적에게 죽었고, 가문을 등지고 도망치면 자객에게 죽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나는 이 저주받은 생일과 혼약식 근처에서 죽었다. 마치 이야기가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를 끌고 가는 것처럼. '그럼 이야기를 뒤집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생각을 처음 한 게 몇 번째 삶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실패했다. "아가씨?" 하녀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불러왔다. "머리 장식 뭘로 하시겠어요? 어제 준비해둔 것 중에..." "아무거나요." "네?"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하녀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늘 같은 대답을 하던 아가씨가 이번엔 조금 다른 어조로 말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 순간, 늘 이렇게 말했다. "언니가 골라준 걸로 할게요." 상냥하고 순종적인, 강서아라는 이름에 딱 맞는 대답.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래, 이번엔 좀 다르게 가보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녀가 놀란 표정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그 반응을 무시하고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창문 밖으로 익숙한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정원사가 화단을 손질하고, 마부는 마차 바퀴를 점검하고, 하인들은 오늘 있을 혼약식을 준비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모든 게 이전 삶들과 똑같이 시작되고 있었다. 똑같은 정원, 똑같은 하인들, 똑같은 아침. 이 지긋지긋한 반복.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화재가 이번엔 혼약식 도중에 발생했다는 것. 이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 이전의 아홉 번, 열 번의 삶 동안 이 세계는 늘 같은 각본을 따랐다. 생일 아침이 오고, 조씨 가문에서 혼약을 위한 마차가 도착하고, 서약식이 열리고, 그리고 밤이 되면 화재가 났다. 순서가 어긋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뭔가가 앞당겨지고 있어. 왜?' 답을 얻기 전에 이 삶을 또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또 불에 타 죽는다면, 나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하녀가 머리를 만지는 걸 지켜봤다. 거울 속 얼굴은 여전히 열여덟 살, 강서아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동그란 눈, 옅은 주근깨, 아직 세상 물정 하나 모를 것 같은 얼굴. 이 얼굴 뒤에 몇 번이나 죽어본 인간이 들어앉아 있다는 걸 누가 알까. '하지만 이젠 순종적인 희생자로 살진 않을 거야.' 나는 결심했다. 이번 삶에서는 조종당하는 쪽이 아니라, 조종하는 쪽에 서겠다고. 하녀가 머리 장식을 꽂는 동안, 나는 손끝으로 화장대 위를 가만히 두드렸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일단 오늘, 혼약식 자체를 막아야 하나. 아니면 화재의 원인을 먼저 찾아야 하나. 매번 다르게 시도해봤지만 매번 결과는 같았다. 이번엔 뭐가 다를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결심을 세우자마자, 창밖에서 마차 두 대가 저택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조씨 가문의 문장을 단 마차였다. 바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갈을 밟는 소리, 말들이 콧김을 내뿜는 소리. 너무 일렀다. 이전 삶들에서 그들이 도착하는 시간보다 훨씬. 내 기억이 맞다면, 조씨 가문의 마차는 늘 정오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런데 지금 창밖의 해는 아직 아침 그림자를 짙게 남기고 있었다. '또 앞당겨졌어.' 손끝이 살짝 떨렸다. 하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머리 장식을 다듬고 있었다. '화재도 앞당겨지고, 혼약식도 앞당겨지고. 다음엔 뭐가 앞당겨질까.'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이건 두려움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낯선 무언가였다. 마치 누군가 이 반복의 규칙을 자꾸 바꾸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불길한 확신. 나는 거울 속 내 얼굴을 다시 들여다봤다. 열여덟 살 소녀의 얼굴 위로, 열 번을 죽어본 자의 눈빛이 겹쳐 보였다. 마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씨 가문의 사람들이 마당에 내려서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준비도 안 됐는데.'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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