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8살, 해태의 주인이 되다

3화

같은 시간, 청운마법학원 교수실에서는 민서현이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낡은 서류철이 세 개 쌓여 있었다. 종이 끝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오래된 잉크 냄새. 곰팡이가 살짝 스민 종이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관공서 특유의 먹지 냄새. 민서현은 그중 가장 낡은 서류철을 펼쳤다. 출생 기록이었다. 부모의 이름 위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한지호. 한서연. 두 사람 모두 마법사였다. 그리고 둘 다 오 년 전 사망 처리가 되어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한도윤. 현재 이모 부부 아래 거주. 민서현은 손끝으로 이름을 짚었다. 종이의 결이 느껴졌다. 다섯 해 전에 작성된 서류치고는 손을 많이 탄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 서류를 여러 번 펼쳤다가 다시 덮었다는 뜻이었다. 민서현은 서류를 덮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후의 볕이 낮게 깔려 있었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감지기가 어제 자정 무렵 신호를 잡았다. 짧고 강한 파동이었다. 위치를 추적하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확인됐습니다." 고태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지도가 들려 있었다. 코트 자락에서 바깥 공기의 찬 기운이 묻어왔다. "주소가 나왔어요. 이 아파트입니다." 민서현은 지도를 받아 들었다. 손끝으로 표시된 위치를 짚었다. 지도 위에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도시 외곽, 오래된 주택가였다. "멀지 않네요." "차로 삼십 분 거리입니다." 민서현은 지도를 접었다. 고태은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서류철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부모 사망 기록이 이상해요." 고태은이 말했다. "둘 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었다는데 사인이 공란입니다." 민서현은 서류를 다시 펼쳤다. 정말 그랬다. 사인란이 비어 있었다. 담당 부서 도장은 찍혀 있었다. 담당자 서명도 있었다. 그런데 사인 항목만 공백이었다. "이런 경우를 본 적 있습니까." 민서현이 물었다. "드뭅니다. 보통은 조사 미진이라도 임시 사유를 적어 넣습니다. 아예 비워두는 경우는—" 고태은은 잠시 말을 끌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웠을 때뿐입니다." "누가 이걸 비워둔 거죠." "모르겠습니다. 원본 열람 권한이 제한돼 있어요. 상급 부서 승인이 필요합니다." 민서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서류 모서리를 두드렸다. 두 번. 세 번. 그러다 멈췄다. "승인 요청은 넣었습니까." "넣었습니다. 답이 없어요. 벌써 사흘째입니다." 민서현은 서류철을 닫았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다릴 시간이 없겠네요." "그럼." "가시죠." 그날 오후, 박성구는 대문 앞에서 두 사람을 마주했다. 민서현은 정장 차림이었다. 어두운 남색 재킷에 단정하게 여민 셔츠. 고태은은 조금 낡은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오래 입어 팔꿈치 쪽 천이 얇아진 코트였다. 두 사람 모두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대문은 낡은 철제였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안쪽 마당에서는 개 짖는 소리도, 아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했다. 이상하게 고요했다. "누구세요." 박성구가 물었다. 눈빛이 이미 경계로 가득했다. "학교에서 왔습니다." 민서현이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도윤이 담당 상담 교사입니다. 최근 아이 행동에 변화가 있어서요." 박성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눈동자가 잠깐 옆으로 움직였다. 마당 안쪽, 창고 방향이었다. "별일 없습니다." "잠깐 들어가서 얘기 나눠도 될까요." "필요 없다니까요." 박성구가 대문을 반쯤 닫으려 했다. 고태은이 발을 내밀어 문틀을 막았다. "아이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고태은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박성구가 고태은을 노려보았다. 코트 자락 아래로 드러난 손이 이미 주먹을 쥐고 있었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수사관입니다." 박성구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민서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수사관이 왜 여기 와."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거짓이었다. 하지만 효과가 있었다. 박성구의 손이 문틀을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누가 신고를 했다는 거야."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장난하는 거 아니야, 지금." 박성구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웃집 담장 너머로 누군가의 시선이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도 그것을 눈치챈 듯 목소리를 낮췄다. "애는 학교 갔어요." 박은주가 안에서 걸어나왔다. 팔짱을 낀 채였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마당 자갈에 부딪혔다. "무슨 일이에요." "애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네." 박은주의 눈이 두 사람을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잠시 계산하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상대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재는 눈이었다. "학교 갔죠." "지금 오후 세 시입니다." 고태은이 시계를 가리켰다. "학교는 두 시에 끝났을 텐데요." 박은주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다시 풀어졌다. 입가에 억지 웃음이 걸렸다. "놀다 오나 보죠. 요즘 애들이 다 그렇잖아요." "그렇습니까." 민서현이 조용히 되물었다. 목소리에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감함이 오히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종류의 목소리였다. 박은주가 팔짱을 조금 더 세게 꼈다. 민서현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마당 안쪽을 살폈다. 빨랫줄에 걸린 낡은 옷가지들. 시멘트 바닥에 금이 간 자국. 그 옆으로 작은 창고 하나가 서 있었다. 창고 문이 잠겨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물쇠였다. 바깥에서 거는 자물쇠. 안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방식이었다. "저긴 뭡니까." 민서현이 물었다. "창고요." 박성구가 짧게 대답했다.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왔다. "열어봐도 될까요." "영장 있어요?" 박성구의 목소리가 커졌다. 민서현은 잠시 침묵했다. 영장은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강제로 들어갈 명분이 없었다. 법적으로는 이 대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설 권리가 없었다. 고태은이 옆에서 낮게 숨을 내쉬었다. 참는 소리였다. "영장 없이는 못 열어드립니다." 박성구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말투였다. 민서현은 창고를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자물쇠의 크기. 문틀의 폭. 안에서 새어 나올 만한 공간의 크기.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민서현이 말했다. "하지만 다시 오겠습니다." "오든 말든." 박성구는 대답 없이 대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철제 대문이 부딫히는 소리가 골목 끝까지 퍼졌다. 두 사람은 잠시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고태은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창고에 있는 거 확실합니다." "압니다." "파동이 저 안에서 잡혔어요. 방금." 고태은은 손목에 찬 작은 감지 장치를 들어 보였다. 화면에 희미한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민서현은 대문을 돌아보았다. 대문은 조금 전과 똑같이 낡고 무심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대문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영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민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목에 찬 얇은 팔찌를 만졌다. 팔찌 표면에 작은 문양이 떠올랐다. 점. 선. 물결. 탑. 감지 부적이었다. 여전히 반응하고 있었다. 아이가 그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문양은 아주 미세하게, 규칙적으로 떨렸다. 심장 박동처럼. 살아 있는 무언가가 저 안에서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고 수사관님." "네." "오늘 밤 다시 오죠. 이번엔 조용히." 고태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뒤 덧붙였다. "만약 저 안에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럴 일 없게 해야죠." 민서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골목을 걸어 나가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오후의 정적 속으로 사라졌다. 대문 안쪽, 박성구는 아내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들 뭐야." "몰라. 수사관이라잖아." "애 때문에 온 거야. 확실해." 박은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팔짱을 낀 채로 창고 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 박성구는 창고 쪽을 바라보았다. 잠긴 문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 자물쇠는 그대로 뒀어?" "당연하지. 걔가 뭘 어쩌겠어." "수사관이 창고까지 봤어. 눈치챘을 거야." 박은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톱으로 팔뚝을 긁는 버릇이 나왔다. "신고가 들어왔다잖아. 누가 신고했겠어." "학교 선생일 수도 있고. 옆집일 수도 있고." "옆집이면 진작에 뭐라고 했겠지."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멈췄다. 마당에 깔린 시멘트 바닥이 오후의 볕을 받아 미미하게 열기를 뿜었다. "저 새끼, 내다 버려야겠어." 박성구가 말했다. 목소리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박은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에." "어디로." "먼 데로. 아무도 못 찾을 데로." 박성구는 창고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죄책감 같은 것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짐을 치우는 듯한 표정이었다. "밥은 줬어?" "안 줬어. 오늘은 안 줄 거야." 박은주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각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다시 닫혔다. 창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낮의 볕이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창고 안, 도윤은 문틈으로 들려온 두 사람의 목소리를 전부 들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오전에는 손가락만큼 넓던 빛줄기가 이제는 실처럼 가늘어져 있었다. 곰팡이 냄새. 젖은 시멘트 냄새. 오래된 나무 상자에서 풍기는 눅눅한 냄새. 도윤은 그 냄새들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 채였다.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버려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을 뱉는 이모부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 그 무심함에서, 무언가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전해졌다. 낮에 왔던 두 사람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학교에서 왔다고 했다. 담당 상담 교사라고 했다. 도윤은 그 말을 곱씹었다. 학교에는 상담 교사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도윤이 알던 학교에는. 손목이 저릿하게 아팠다. 며칠째 같은 자세로 웅크려 있었던 탓이었다. 도윤은 다리를 조금 펴보려 했다. 발끝이 나무 상자에 부딧혔다. 작은 소리가 났다. 밖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직은 안심해도 되는 소리였다. 문틈 사이로 새어드는 빛이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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