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학교 옥상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녹슨 철문 앞에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손잡이는 붉게 부식되어 있었고, 문틀 사이로는 오래된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도윤은 그 문을 지나칠 때마다 늘 궁금했다.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하늘이 조금 더 가까울까. 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릴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늘 혼자 상상만 했다.
그날 점심시간, 태윤과 그 무리가 도윤을 화장실 뒤편으로 끌고 갔다.
복도는 밥을 먹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 소리에서 벗어나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세제 냄새. 오래된 물비린내. 그리고 태윤의 숨소리.
"어제 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혼났는 줄 알아?"
태윤이 말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 있었다. 목덜미까지 열이 오른 게 보였다.
"내가 안 그랬는데 넌 왜 자꾸 나한테..."
도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이 날아왔다. 뺨이 얼얼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웃었다.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거짓말쟁이."
태윤이 도윤의 어깨를 밀쳤다. 도윤은 벽에 부딪혔다. 등에 통증이 번졌다. 타일의 차가운 감촉이 옷 너머로 스며들었다.
"넌 우리 집에 있을 자격도 없어. 우리 아빠가 그랬어. 넌 그냥 얹혀사는 거라고."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이었다. 언제부터 들었는지도 이제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배 속에서 뜨거운 것이 다시 솟구쳤다.
"그만해."
도윤이 낮게 말했다.
"뭐?"
태윤이 다시 다가왔다. 손을 들었다.
주변에 서 있던 아이들도 그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는 낄낄거렸고, 누군가는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그만하라고."
손끝이 뜨거워졌다. 눈앞이 하얘졌다.
웅—
울림이 몸 안에서 터졌다. 도윤은 눈을 감았다. 심장이 귀 옆에서 뛰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발바닥이 바닥에서 살짝 떠오르는 것 같은 감각이 지나갔다. 착각인지 아닌지 구분할 새도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태윤이 사라져 있었다.
주변 아이들이 술렁였다. 누군가는 뒷걸음질을 쳤고, 누군가는 두리번거리며 화장실 안쪽을 살폈다.
"태윤이 어디 갔어?"
"방금 여기 있었는데."
"화장실 칸에 숨은 거 아니야?"
한 아이가 화장실 문을 하나씩 두드려 열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도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여전히 뜨거웠다. 손가락 마디마다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한 것만은 확실했다. 두려움과 이상한 흥분이 동시에 배 속에서 뒤섞였다.
그 순간, 옥상 쪽에서 비명이 울렸다.
"살려줘!"
태윤의 목소리였다. 목이 찢어질 듯한 소리였다.
복도 창문 밖으로 그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 아이들이 소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도윤도 그 뒤를 따랐다. 발밑에서 콘크리트 바닥이 울렸다.
선생님들이 뛰어나왔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도윤도 다른 아이들 틈에 섞여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녹슨 철문이 열려 있었다. 자물쇠는 그대로 잠긴 채였지만, 어떻게든 문이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태윤이 옥상 난간 근처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에 옷자락이 심하게 흔들렸다.
"움직이지 마! 거기 그대로 있어!"
한 선생님이 아래에서 소리쳤다. 태윤은 대답 대신 더 크게 울었다.
소방차가 왔다. 사이렌 소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사다리가 올라갔다. 구조대원이 태윤을 안고 내려오는 동안, 학교 전체가 숨을 죽인 듯 조용해졌다.
태윤은 구조된 뒤에도 한참을 떨었다. 입술이 새파랬다.
"어떻게 올라간 거야?"
선생님들이 태윤에게 물었다.
"몰라요. 갑자기 여기 있었어요. 눈 감았다가 뜨니까 옥상이었어요."
태윤은 도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었다.
"도윤이가 그랬어요! 도윤이가 나를 여기로... 손이 뜨거워졌었어요, 걔 손이!"
주변 아이들이 도윤을 쳐다보았다. 시선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발끝이 땅속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선생님이 태윤을 달랬다.
"놀라서 헛소리하는 거야. 병원부터 가자."
태윤은 끌려가면서도 계속 도윤을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과 확신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도윤은 알았다. 헛소리가 아니었다.
교무실 창가에서, 이한결 선생님이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아이의 말을 헛소리로 넘기지 않았다. 창문에 이마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서서,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 틈에서 도윤을 찾아냈다. 대신 도윤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놀란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이한결은 그 아이의 손끝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떨림이 두려움 때문인지, 아직 가라앉지 않은 무언가의 잔열 때문인지, 그는 판단을 미뤘다.
방과 후, 이한결은 도윤을 도서관으로 불렀다.
책 냄새가 도서관 안에 가득했다. 오래된 종이와 먼지, 그리고 창밖에서 들어오는 저녁 공기가 뒤섞인 냄새였다. 도윤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일 말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책상 모서리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내가 안 그랬어요."
"안 그랬다고 안 해도 돼."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이한결의 표정에는 화가 없었다. 오히려 어딘가 익숙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무섭지."
짧은 질문이었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물이 차올랐다.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괜찮아."
이한결이 책 한 권을 도윤 앞에 놓았다. 동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다. 뱀에 관한 그림책이었다. 표지에는 알록달록한 뱀 한 마리가 나무를 감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번에 부탁한 거."
도윤은 책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으로 표지를 만졌다. 매끈한 코팅 종이의 감촉이 낯설었다. 이렇게 새 책을 받아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뭐든 힘든 일이 있으면 여기로 와."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깨에 쌓여 있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무실 문 밖에서, 두 사람이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민서현과 고태은이었다.
두 사람은 벽에 붙어 서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민서현의 손목에서 팔찌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확실하네요."
고태은이 낮게 말했다.
"순간이동입니다. 이 정도 거리를, 이 나이에."
민서현은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문양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점. 선. 물결. 탑.
그리고 그 옆의, 짐승 모양의 문양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문양은 다른 넷과 달리 유독 흐릿하게 깜빡였다.
"어제 그 생물은 뭐였을까요."
고태은이 물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저 아이 곁에 있었다는 건 확실해요."
"보호수의였을까요?"
민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서관 창문 너머로 도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그림책을 품에 안고 있었다.
"고도라를 데려오세요."
"제 딸을요? 왜요."
"같은 나이대 아이가 접근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가가면 겁먹을 겁니다."
고태은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는 눈빛이 복잡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라는 이런 일에 관심 없어요."
"그래도 부탁해야죠."
두 사람의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도서관 안에서는 도윤이 여전히 책을 넘기고 있었다. 뱀의 그림 위로 손끝이 천천히 미끄러졌다.
그날 밤, 도윤은 창고에 다시 갇혔다. 낮에 벌어진 일에 대해 박성구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고 안은 언제나처럼 어두웠다. 곰팡이 냄새와 녹슨 쇠붙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도윤은 그 냄새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뭔가 달랐다.
도윤은 옷 속을 살폈다. 짐승이 어젯밤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옷깃 사이, 소매 안쪽, 심지어 신발 속까지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사라진 건지, 다른 곳에 숨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창고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던 도윤은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은 이제 차가웠다. 낮에 있었던 뜨거움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 낮, 태윤을 옥상으로 보낸 것도 자신이었다.
두려웠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만약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이 자신을 지켜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위험했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창고 문틈으로 다시 그 타는 냄새가 스며들었다. 어젯밤보다 훨씬 진했다. 코끝이 매울 정도였다.
도윤은 벽을 짚고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냄새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것처럼.
창고 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발소리는 규칙적이지 않았다. 두 개의 리듬이 겹쳐진 것처럼, 어딘가 짓눌린 듯한 무게감을 담고 천천히 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윤은 숨을 멈췄다. 창고 안 어둠 속에서, 문틈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빛이 순간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