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눈을 떴을 때 방은 그대로였다.
시계는 오후 8시 3분을 가리켰다.
1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천장 벽지의 얼룩, 늘 켜두는 스탠드 조명, 창밖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
전부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눈앞에 뜬 창 하나였다.
[스킬 획득: 휴식지]
[등급: 오리진]
[세계 최초 각성자입니다]
나는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글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깜빡였다.
여전히 있었다.
오리진.
그 단어를 본 적이 있었다.
각성 커뮤니티에서, 그것도 아주 드물게.
누군가 장난처럼 던진 글,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이야기.
오리진 등급은 기존 등급 체계 밖에 있는 스킬이었다.
F부터 S까지, 그 위에 있는 것.
존재 자체가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실물을 봤다는 사람도, 인증한 사람도 없었다.
주식으로 치면 상장도 안 된 종목 같은 거였다.
가격표가 없으니 얼마짜리인지도 몰랐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끝이 차가웠다.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나는 스킬창을 열었다.
[휴식지]
[등급: 오리진]
[설명: 지정한 공간에 안식의 영역을 생성한다]
[세부 조건: 알 수 없음]
[효과 범위: 알 수 없음]
[지속 시간: 알 수 없음]
설명이 이게 다였다.
나는 화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알 수 없음, 알 수 없음, 알 수 없음.
세 번째 알 수 없음을 읽었을 때,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게 뭐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방 안의 정적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오후 9시.
나는 노트북을 켰다.
각성자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휴식지'를 쳤다.
결과 없음.
'오리진 스킬'을 쳤다.
루머 몇 개, 확인된 사례 없음.
게시글 하나를 클릭했다.
"오리진 등급 봤다는 사람 있음?"
댓글 3개.
전부 조롱이었다.
"약 파냐"
"떡밥 그만"
"관심종자"
나는 창을 닫았다.
'각성 스킬 등급표'를 다시 검색했다.
F, E, D, C, B, A, S.
그 위는 없었다.
표 어디에도 오리진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세계 최초.
그 말이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먼저 알아낸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실패해도 배울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물어볼 사람도, 참고할 자료도, 벤치마킹할 선례도 없었다.
상장 첫날 거래되는 종목처럼, 오직 나 혼자 가격을 매겨야 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눈을 감으면 알 수 없음, 이라는 세 글자가 떠올랐다.
새벽 3시, 4시, 5시.
시계를 볼 때마다 숫자만 늘어났다.
토요일 아침 7시.
나는 배낭을 챙겼다.
물, 비상식량, 로프.
평소와 같은 장비였다.
다른 점은 하나, 목적이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사냥이 목적이었을 거다.
등급 낮은 몬스터 몇 마리 잡고, 부산물 팔고, 통장에 몇 만 원 채우는 게 전부였을 거다.
오늘은 아니었다.
배낭을 메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나 자신도 정확히 몰랐다.
청계던전 입구.
관리소 직원이 출입증을 확인했다.
"오늘도 혼자세요?"
"네."
"조심하세요, 최근에 등급 올라간 구역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 내부는 항상 같은 풍경이었다.
습한 공기, 이끼 낀 바위, 멀리서 들리는 물소리.
나는 익숙한 길을 따라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1구역, 2구역, 3구역.
숫자로 나뉜 구역을 지나 호숫가로 향했다.
청계던전 중심부에 있는 작은 호수였다.
탐험가들 사이에서는 '쉼터'라고 불렸다.
몬스터가 잘 나오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3구역을 지나던 중, 저 멀리서 슬라임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평소라면 잡았을 거다.
오늘은 그냥 지나쳤다.
슬라임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전 10시 20분.
나는 호숫가에 도착했다.
물빛이 맑았다.
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드리웠다.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면에 잔물결이 일었다.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곳이었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스킬창을 다시 열었다.
[휴식지: 사용 가능]
버튼 하나가 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걸 눌러도 되는 걸까.
조건도 모르고, 결과도 모르는데.
혹시라도 던전이 무너지면.
혹시라도 몬스터를 부르는 신호탄 같은 거라면.
혹시라도, 혹시라도.
그런데 아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미 여기까지 왔다.
여기서 안 누르면 오늘 아침에 배낭 챙긴 시간, 던전 입구까지 걸어온 시간, 3구역을 지나온 시간이 전부 손절 처리되는 거였다.
매몰비용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이미 들어간 돈은 회수가 안 된다.
그럼 남은 건 하나, 지금이라도 실행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버튼을 눌렀다.
빛이 지면에서 솟았다.
땅이 흔들렸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빛은 처음엔 희미했다가, 순식간에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해졌다.
호수 전체가 잠깐 하얗게 물들었다.
빛이 잦아들자 그 자리에 작은 구조물이 서 있었다.
나무로 된 정자 형태였다.
지붕은 갈대로 엮여 있었다.
기둥 네 개, 바닥은 평평한 나무판이었다.
[휴식지가 생성되었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정자 주위를 돌았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냥 작은 쉼터, 야영지에서 흔히 보는 정자였다.
기둥을 두드려 봤다.
평범한 나무 소리가 났다.
지붕을 만져 봤다.
평범한 갈대 감촉이었다.
앉아 봤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렸다.
딱히 다른 감각은 없었다.
피로가 풀리는 것도, 몸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게 다야?"
나는 허공에 대고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오전 11시.
나는 정자에 한 시간째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킬창을 다시 확인했다.
[휴식지 상태: 활성]
[이용자: 0명]
[누적 효과: 없음]
0명.
당연했다.
여기까지 오는 탐험가가 드물었다.
이 구역 자체가 인기 없는 곳이었다.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리진이라는 이름값에 비해 결과물은 초라했다.
나무 정자 하나.
이걸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거래량 0인 종목 같았다.
아무도 사지 않고, 아무도 팔지 않는, 시세조차 표시되지 않는 껍데기.
정오가 지났다.
나는 배낭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목이 말랐던 것도 아닌데,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정자 주변을 한 바퀴 더 돌았다.
땅을 파 봤다.
흙 아래 특별한 게 있을까 싶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흙이었다.
지붕 위로 손을 뻗어 봤다.
높이도 평범했다.
성인 남자 키를 살짝 넘는 정도.
오후 1시.
나는 짐을 챙겼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했다.
월요일 회사 일도 남아 있었다.
정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봤다.
볼품없는 나무 구조물.
세계 최초 오리진 스킬의 결과가 이거였다.
허탈했다.
동시에, 아주 조금,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닐 거라는.
근거는 없었다.
그냥 느낌이었다.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감으로만 존재하는 확신.
나는 던전 출구로 향했다.
뒤에서 물소리만 조용히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몇 번이나 스킬창을 열었다.
[누적 효과: 없음]
같은 문구가 반복됐다.
지하철 창밖으로 지나가는 불빛을 보면서, 나는 계속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조건이 뭘까.
누가 앉아야 효과가 나는 걸까.
아니면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답은 없었다.
질문만 쌓였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에도 확인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확인했다.
일요일 낮, 나는 다시 던전에 갈까 고민했다.
결국 가지 않았다.
가서 뭘 할지 몰랐다.
변한 게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변한 게 없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회사에서 야근을 했다.
스킬창을 열 시간도 없었다.
열어봐도 같은 문구였다.
금요일 저녁, 나는 오랜만에 스킬창을 열었다.
[휴식지 상태: 활성]
[이용자: 0명]
[누적 효과: 없음]
똑같았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서서히 이 스킬을 잊어가고 있었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도, 오리진이라는 등급도, 어느새 서랍 깊숙이 넣어둔 물건처럼 존재감이 옅어졌다.
그렇게 두 번째 주말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