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3주가 지났다.
나는 매주 토요일 청계던전 호숫가에 들렀다.
정자는 그대로였다.
[이용자: 0명]
숫자도 그대로였다.
처음 일주일은 기대했다.
누군가 다녀갔을지도 모른다고.
두 번째 주에는 반신반의했다.
세 번째 주에는 거의 포기했다.
숫자 0은 바뀌지 않았다.
마치 나만 아는 비밀 같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공간.
회사 일은 여전히 바빴다.
원자재 가격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구리 선물 가격이 하루에 3퍼센트씩 오르내렸다.
나는 매일 전화를 받고, 사과를 하고, 숫자를 정리했다.
오전 9시.
거래처 전화.
오전 11시.
납품 지연 항의.
오후 2시.
원가 계산서 재작성.
퇴근길에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숫자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7년 전에도 숫자를 봤고, 지금도 숫자를 본다.
달라진 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자에 가는 일이 습관처럼 됐다.
의미를 찾아서가 아니었다.
그냥 다른 갈 곳이 없어서였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몸이 먼저 청계던전 입구로 향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습관은 무섭다.
7년 동안 손절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도 그랬다.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11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 50분.
나는 정자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하늘을 봤다.
청계던전은 실내형이지만 천장이 높아 하늘처럼 보였다.
천장 조명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구름은 없었다.
그냥 흐릿한 빛뿐이었다.
그래도 하늘 같았다.
[휴식지 상태: 활성]
[이용자: 0명]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바뀌지 않았다.
당연했다.
바뀔 이유가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회사에서도 쉬지 못했다.
여기서도 딱히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몸은 누워 있는데 머릿속은 계속 돌아갔다.
내일 회의 자료.
다음 주 납품 일정.
그리고 이 정자.
이 정자를 만든 이유가 뭐였을까.
누군가에게 필요해서?
아니면 그냥 습관처럼, 예전에 하던 대로?
7년 전에는 사람들을 구제한다고 믿었다.
좋은 종목을 추천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을 손절매했다.
지금은 다를까.
이 정자가 정말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까.
아니면 이것도 그냥 자기만족일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거기 뭐야!"
남자 목소리였다.
다급했다.
"돌아! 왼쪽으로!"
또 다른 목소리.
이번엔 여자였다.
나는 정자 밖으로 나갔다.
숲 사이로 세 사람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따라붙고 있었다.
멧돼지형 몬스터.
청계던전 4구역 출몰종, 등급 D.
덩치가 성인 남성 두 배는 됐다.
엄니가 나무를 부수며 돌진하고 있었다.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쾅.
또 한 번.
쾅.
숨이 멎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상했다.
7년 동안 몸이 먼저 움직인 적은 없었다.
늘 머리가 계산하고 나서야 손이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이쪽으로!"
나는 소리쳤다.
목이 갈라졌다.
그래도 다시 외쳤다.
"정자로 오세요! 이쪽!"
세 사람이 나를 발견했다.
여자 하나, 남자 둘.
여자가 앞장서서 뛰었다.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거칠었다.
남자 하나는 팔을 감싸 쥐고 있었다.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소매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또 다른 남자는 뒤에서 거의 끌려오다시피 뛰었다.
다리를 절뚝이며, 한쪽 발을 제대로 딛지 못했다.
"정자로!"
나는 정자를 가리켰다.
팔이 저절로 뻗어 나갔다.
거리는 대략 30미터.
멧돼지와의 간격은 그보다 좁았다.
10미터쯤.
따라잡히기 직전이었다.
세 사람이 정자 안으로 뛰어들었다.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발이 정자 바닥에 닿는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멧돼지가 정자 코앞까지 왔다.
엄니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그것이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멧돼지가 콧김을 뿜으며 정자 주위를 돌았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1초, 2초, 3초.
멧돼지가 다시 돌진해 왔다.
또 멈췄다.
[휴식지 효과 발동]
[안식의 영역 내 몬스터 진입 불가]
눈앞에 문구가 떠올랐다.
손끝이 저릿했다.
효과가, 있었다.
정말로 있었다.
지난 3주 동안 아무 일도 없어서 반쯤 잊고 있었다.
이 정자가 진짜 무언가를 막아준다는 사실을.
멧돼지는 정자 주위를 세 바퀴 돌았다.
그리고 흥미를 잃은 듯 숲 속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무 부러지는 소리도 멀어졌다.
정적이 찾아왔다.
"살았다..."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세 사람을 훑어봤다.
여자는 무사해 보였다.
얼굴에 긁힌 자국 몇 개.
그 외엔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팔을 다친 남자는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 색까지 창백했다.
출혈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발목 쪽이 부어 있는 게 보였다.
접질렸거나, 심하면 골절일 수도 있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다친 남자에게 다가갔다.
"팔 좀 보여주세요."
남자가 팔을 내밀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엄니에 스친 상처였다.
깊지는 않았지만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나는 배낭에서 구급 키트를 꺼냈다.
소독약, 붕대, 지혈 패드.
7년 전 현장에서 배운 응급처치였다.
그때는 이걸 배울 줄 몰랐다.
증권사 신입 시절, 회식 자리에서 다친 동료를 처치했던 게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참으세요."
소독약을 부었다.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으윽..."
"조금만요."
거즈로 상처 부위를 눌렀다.
피가 조금씩 멎기 시작했다.
나는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매듭을 지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던전 나가면 바로 병원 가세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말할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리더 남자에게 다가갔다.
"발목도 보여주세요."
남자가 신발을 벗으려 했다.
"괜찮습니다. 걸을 수 있어요."
"부어 있잖아요.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남자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신발을 벗었다.
발목이 이미 붓기 시작한 상태였다.
붉은 기가 돌고 있었다.
"골절은 아닌 것 같은데, 확실친 않네요. 임시로 고정해 드릴게요."
나는 붕대로 발목을 감쌌다.
압박이 너무 세지 않게, 그렇다고 헐렁하지 않게.
손끝의 감각에 집중했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이에요?"
여자가 물었다.
숨이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다.
나는 대답 대신 정자를 둘러봤다.
나도 정확히는 몰랐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쉼터입니다."
일단 그렇게 답했다.
"몬스터가 못 들어오는 쉼터라니."
리더 남자가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어요. 청계던전에서 몇 년을 돌았는데."
"저도 오늘 처음 확인했습니다."
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눈빛에 의심과 궁금증이 섞여 있었다.
나는 말을 돌렸다.
"좀 쉬세요. 여긴 안전합니다."
리더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중앙광장까지 돌아갈 힘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었다.
나는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 건넸다.
"드세요."
"고맙습니다."
세 사람이 물을 나눠 마셨다.
목을 축이는 소리가 정자 안에 울렸다.
정자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원래 이 구역 안 오는데. 길을 잘못 들었어요."
"4구역은 초행이신가요?"
"네. 3구역 사냥하다가 몬스터한테 밀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팔 다친 남자가 힘없이 웃었다.
"운이 좋았네요. 여기 정자가 있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다.
내가 이걸 만든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 이유를 이 사람들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스킬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7년 전 손절의 신, 사망 이후 두 번째 삶, 새로 얻은 스킬.
이 모든 걸 처음 만난 세 사람에게 늘어놓을 이유는 없었다.
"좀 더 쉬시고 움직이세요. 다리도 그렇고, 팔도 그렇고."
리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로."
그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7년 동안 누군가를 살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누군가의 계좌를 죽였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살렸다, 는 말이 낯설었다.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나는 스킬창을 다시 확인했다.
[휴식지 상태: 활성]
[이용자: 3명]
[누적 효과 기록 중]
숫자가 바뀌어 있었다.
0에서 3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작동하고 있었다.
3주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아서 반쯤 의미 없는 스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확히 작동했다.
숫자 3이 눈에 계속 밟혔다.
[누적 효과 기록 중]이라는 문구도 마음에 걸렸다.
기록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레벨업이라도 하는 걸까.
세 사람이 조금씩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팔 다친 남자가 붕대 감긴 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여봤다.
리더 남자는 발목에 무게를 실어보려다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좀 더 앉아 계세요."
나는 말했다.
"중앙광장까지는 제가 같이 가드릴게요. 그 상태로 혼자 가시긴 위험할 것 같아서."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예요?"
질문이 목에 걸렸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몸이 움직였다고 하면 될까.
아니면 7년 전 죄를 갚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요."
여자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자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깥에서는 숲의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멧돼지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자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숫자 3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 스킬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정자 바깥 숲 쪽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발소리였다.
사람의 발소리.
하지만 이상하게 느렸다.
질질 끄는 듯한, 무언가를 끌고 오는 듯한 소리였다.
세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리더 남자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발목 통증에 다시 주저앉았다.
나는 정자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숲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