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입원 이틀째 아침이었다.
병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옅고 차가웠다. 도윤은 침대 헤드를 세운 채 앉아 죽 그릇을 앞에 두고 있었다. 오른손은 붕대에 감긴 채 침대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고, 손끝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다니.’
도윤은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어보았다. 손에 익지 않은 각도였다. 숟가락이 그릇 안에서 미끄러지듯 죽을 퍼 올렸지만, 입까지 가져가는 도중 반이 흘러내려 시트 위로 떨어졌다. 뜨끈한 얼룩이 시트에 스며들었다.
“…….”
도윤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떨렸다. 단순한 동작 하나에도 이렇게까지 무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고 화가 났다.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딸깍.
문틈으로 들어온 사람의 그림자가 침대 옆에 길게 늘어졌다.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목에 명찰을 건 새하얀 유니폼. 도윤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었다.
“…서지아?”
지아가 병실 안으로 들어서며 살짝 웃었다. 웃음 끝에 어딘가 긴장이 묻어 있었다. 손끝이 유니폼 자락을 슬쩍 매만지는 것도 보였다.
“오늘부터 이 병실 담당이에요.”
“무슨 소리야, 너 간호사도 아니잖아.”
도윤의 목소리에 경계가 실렸다.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좁아졌다. 지아는 대답 대신 손에 든 트레이를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트레이 위에는 물컵과 수건,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은 죽 그릇이 놓여 있었다.
“진짜 간호사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잠깐 시간 빌린 거예요. 걱정 마세요, 의료 행위는 안 해요.”
“그럼 뭘 하겠다는 건데.”
“밥 먹는 거 도와주고, 필요한 거 챙겨주고.”
지아가 죽 그릇을 집어 들었다. 도윤이 몸을 뒤로 물렸다. 침대 시트가 바스락거렸다.
“됐어. 나 혼자 할 수 있어.”
“왼손으로 숟가락질하다가 시트를 세 번째 적셨는데요.”
지아의 눈이 시트에 남은 얼룩을 슬쩍 가리켰다. 처음 것은 마르다 못해 색이 남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아직 축축했다. 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이거 뭐야, 부끄러운데.’
“…그건 실수였어.”
“그럼 이건 도움이에요.”
지아가 숟가락에 죽을 떠서 도윤 앞으로 내밀었다. 숟가락을 든 손이 흔들림 없이 단정했다. 도윤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등에 얕은 상처 자국이 하나 있었다. 며칠 전, 그날의 사고 흔적일지도 몰랐다.
도윤은 결국 입을 벌렸다.
따뜻한 죽이 목으로 넘어갔다. 짠맛도 아니고 단맛도 아닌, 그저 무난한 병원 죽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도윤이 물었다. 지아의 손이 순간 멈췄다. 숟가락 끝에서 죽 한 방울이 그릇 위로 떨어졌다.
“내가 다치게 한 거니까요.”
“네가 다치게 한 거 아니잖아. 트럭이 잘못 들어온 거지.”
“그 트럭이 오는 걸 못 본 것도 제 잘못이에요.”
지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방금 전까지의 긴장된 웃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눈빛만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윤은 그 단호함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아가 다시 숟가락을 들며 말을 이었다.
“도윤 씨가 저 대신 다쳤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담담한 어조였지만, 도윤은 그 안에 숨은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지아의 손끝이 그릇을 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여자, 진짜네.’
그동안 도윤이 알던 서지아는 그냥 학교 게시판에 걸리는 미담 속 인물이었다. 봉사활동 우수자, 장학생, 후배들에게 친절한 선배. 종이 위에 인쇄된 활자로만 존재하던 이름이었다. 실제로 마주하니,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죄책감을 말로만 때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감당하려는 사람. 시간을 쪼개서 간호사복까지 빌려 입고, 이렇게 숟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
도윤은 그런 지아를 마주 보는 게 낯설었다. 낯설다기보다, 조금 불편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쓰는 모습을 본 적이 오래되었다.
“나 도움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도윤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병원 마당에 심긴 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왜요?”
지아가 되물었다. 그릇을 든 손은 여전히 도윤을 향해 있었다.
“…예전부터 다른 사람이 대신 뭔가 해주는 게 익숙해서, 그게 싫어서 집에서 나온 거야.”
말이 나온 뒤에야 도윤은 자신이 너무 많은 걸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 입술을 다물었다. 지아가 숟가락을 든 채 잠시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캐묻고 싶은 기색이 섞여 있었지만, 지아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럼 이건 조건 다는 거 어때요.”
“…조건?”
“3주. 딱 3주만요. 이 손 쓸 수 있을 때까지만 도와줄게요. 그 이후엔 완전히 손 뗄게요.”
도윤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거래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자립심을 존중해주는 말처럼도 들렸다. 지아는 답을 기다리듯 도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병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창밖에서 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3주 딱.”
도윤이 낮게 되뇌었다.
“네. 딱 3주.”
지아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걸렸다. 방금 전의 긴장이 조금 풀린 얼굴이었다. 지아가 숟가락을 다시 내밀었다. 도윤은 이번엔 조금 덜 경계하며 입을 벌렸다.
죽 한 술이 또 목으로 넘어갔다. 이번엔 처음보다 편했다. 지아의 손놀림도 처음보다 능숙해 보였다. 두어 번 더 숟가락이 오갔다. 도윤은 문득, 이 낯선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순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철컥.
진짜 간호사가 링거를 확인하려고 들어왔다. 손에 든 차트를 넘기며 걸음을 옮기던 간호사는, 지아의 유니폼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서지아 학생, 그 옷은 뭐예요?”
지아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굳었다. 숟가락을 쥔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도윤도 그릇 위에서 눈을 들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병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