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입원 사흘째, 병실 안은 오후의 나른한 볕으로 가득했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소음이 아득하게 들려왔고, 도윤은 침대에 반쯤 기대어 앉아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두 시 사십 분.
지아가 학교 끝나고 오겠다고 했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도윤은 왼손으로 휴대폰을 쥐고 있었지만, 정작 화면 속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지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제도, 그제도 그녀는 시간을 맞춰 왔었다. 병실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조금은 긴장한 듯한, 그러면서도 다정한 그 눈빛이.
‘또 늦으면 어쩌지.’
도윤은 생각하다가,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저었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도윤이 반사적으로 “들어와.” 했다. 목소리에 옅은 기대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지아가 아니었다.
“야, 김도윤! 죽은 줄 알았잖아, 인마.”
반 친구 준서였다. 편의점 봉투를 흔들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걸음걸이가 평소와 다름없이 시끄러웠다. 도윤과 같은 반이자, 편의점 알바도 함께 하던 사이였다. 도윤은 순간 실망감이 스쳤지만, 곧 그 표정을 감췄다.
“학교 안 나온 지 사흘째인데 연락도 없고. 담임한테 물어보니까 사고 나서 입원했다고 해서 놀라서 왔어.”
준서가 침대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이 도윤의 팔에 감긴 붕대와 깁스를 훑고 지나갔다.
“…와줘서 고맙긴 한데, 갑자기 오면 어떡해.”
도윤이 왼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준서가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앉으며 봉투에서 삼각김밥을 꺼냈다. 봉투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병실 안을 채웠다.
“병원 밥 맛없잖아. 이거라도 먹어.”
“나 오른손 못 써.”
“아, 맞다.”
준서가 삼각김밥 껍질을 벗겨 도윤의 왼손에 쥐여줬다. 서툰 손길로 포장을 벗기는 모습이 우스울 정도로 어설펐다. 도윤은 그걸 받으며 작게 웃었다.
그러다 준서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근데, 아까 병원 로비에서 낯익은 애 봤는데.”
도윤의 어깨가 굳었다. 삼각김밥을 든 손이 미세하게 멈췄다.
“…누구.”
“서지아. 우리 학교 서지아 맞지? 간호사복 입고 엘리베이터 타는 거 봤는데, 잘못 본 거 아니지?”
준서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도윤은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필, 하필 지금.’
순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정말 지아였다. 손에는 여전히 하얀 간호사복 트레이가 들려 있었다. 흰색 유니폼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지아와 준서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준서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어. 진짜 서지아잖아.”
지아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빠졌다. 트레이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윤도 순간 숨을 멈췄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준서는 워낙 소문에 빠른 성격이었다. 편의점에서도 온갖 학교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퍼뜨리는 걸 도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지난번엔 옆 반 커플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채 반나절도 안 돼 전교에 퍼뜨린 적도 있었다.
“너희 둘, 무슨 사이야?”
준서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로운 걸 발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런 거 아니야.”
도윤이 급하게 말을 잘랐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지아는 그대로 서서 트레이를 꽉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리가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거 아니면 왜 병실 담당 간호사 복장을 하고 여기 있는 건데. 그것도 재벌집 딸이.”
준서가 스마트폰을 슬쩍 꺼내며 웃었다. 화면을 켜는 손가락이 카메라 아이콘 위에서 멈췄다.
“이거 사진 한 장만 찍어서 반 톡방에…….”
“하지 마.”
도윤이 즉시 소리쳤다. 목소리가 병실 안을 울렸다. 그 짧은 순간, 도윤의 얼굴에서 평소의 무표정함이 사라지고 팽팽한 긴장이 드러났다.
준서가 놀란 눈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도윤이 이렇게 급하게 반응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병실 안 공기가 순간 얼어붙은 듯했다.
“…뭐야, 왜 그렇게 정색해.”
준서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되물었다. 표정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남아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하게 도윤을 살피고 있었다.
지아는 그 순간 도윤을 보았다. 짧은 침묵 속에서, 도윤이 자신을 감싸려 한다는 사실이 지아의 심장을 조금 이상하게 두드렸다. 트레이를 쥔 손끝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 사람, 자원봉사로 온 거야. 사고 낸 사람이 걱정돼서 잠깐 도와주러 온 거고, 그거 이상하게 부풀려서 소문내면 나 진짜 화낼 거다.”
도윤이 준서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눈빛에 평소보다 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준서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었다.
“…뭐, 알겠어. 안 찍어. 근데.”
준서의 시선이 다시 지아에게 향했다. 장난스러운 웃음이 조금씩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지아를 뜯어보듯 쳐다봤다.
“서지아, 우리 학교에서 알아주는 소문난 애잖아. 너 정말 순수하게 도와주려고 온 거 맞아? 아니면…….”
준서가 말을 흐리며 도윤과 지아를 번갈아 보았다. 병실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뭐 다른 거 있는 거야?”
지아는 대답 대신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도 그 시선을 마주 보았다가, 이내 시선을 피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공기를 준서는 놓치지 않았다.
지아의 표정에 살짝 서운함이 스쳤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 시선을 창문 쪽으로 돌렸다.
침묵이 병실 안을 채웠다. 준서는 여전히 답을 기다리는 눈치였고, 도윤은 그 시선을 피한 채 삼각김밥 포장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병실 밖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돌아갔다.
지아의 얼굴에 먼저 불안이 스쳤다. 트레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문이 벌컥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지아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섰다. 체격이 큰 남자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병실 안의 상황 따위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서지아 학생, 회장님 지시로 모시러 왔습니다.”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어조였다.
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트레이가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질 듯 흔들렸다.
도윤은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오른손의 통증이 그를 막았다. 준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을 다물고 눈만 크게 뜬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실 안에는 정장 남자들의 무거운 존재감과, 지아의 굳은 표정, 그리고 도윤의 불안한 시선만이 남았다.
“…아버지가, 왜.”
지아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좁혀졌다. 마치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