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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아침 7시 40분, 한빛고등학교 정문 앞. 이른 시간부터 등교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정문 앞 보도블록 위로 어지럽게 겹쳐지고 있었고, 그 무리 사이로 강하은이 교문을 지나며 가방 속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거울에 비친 앞머리 한 올을 손끝으로 살짝 밀어 올리는 그 짧은 손짓 하나에도, 오랜 시간 반복해온 습관처럼 붙은 정갈함이 배어 있었다. 손거울은 낡아서 테두리 한쪽이 살짝 벗겨져 있었지만, 하은은 그것을 바꿀 생각도 없이 아침마다 같은 자리, 같은 각도로 앞머리를 매만졌다. 1학년 3반, 반 아이들 사이에서 하은은 화장과 패션에 유난히 신경 쓰는 아이로 알려져 있었다. 아이라이너를 조금씩 진하게 그려 넣거나, 계절마다 유행하는 색깔의 립밤을 바꿔 바르는 하은을 두고 몇몇 아이들은 "쟤는 매일 꾸미는 게 일이야"라며 웃음 섞인 말을 던지곤 했지만, 그 화려함 뒤편에는 정작 깊이 마음을 나눌 친구가 드물다는 사실이 조용히 숨어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무리 지어 매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틈에서 하은은 언제나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고,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웃으며 대답은 했지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늘 바빴고, 형제도 없이 혼자 자라온 하은에게 등하교길의 화장은 어쩌면 텅 빈 시간을 채우는 유일한 놀이였다. 저녁이면 불 꺼진 집에 홀로 들어가 텔레비전 소리로 방을 채우던 밤들이 있었고, 그런 밤이면 하은은 화장대 앞에 앉아 인터넷에서 본 화장법을 따라 해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지만, 등교길마다 손거울을 들여다보는 그 습관 속에는 그런 밤들이 조용히 겹겹이 쌓여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게시판에 새로 붙은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 트랙 라인 재도색 작업 중 —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까지 접근 금지] 라는 문구 아래, 붉은 페인트가 아직 반질거리는 트랙의 사진이 작게 인쇄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작업 완료 예상일이 손글씨로 덧붙여져 있었다. 하은은 그 앞을 지나며 별생각 없이 눈길만 한 번 던졌을 뿐, 곧 자기 자리로 걸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체육복으로 갈아입던 반 아이들 사이에서 누군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웃음의 중심에는 늘 그렇듯 박에리가 서 있었다. 에리는 반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고 무리를 몰고 다니는 아이였고, 체육복 상의를 대충 걸치면서도 손에 쥔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에 선 친구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 무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이하준이 있었다. "저기 온다, 온다." 에리가 팔꿈치로 옆 친구를 툭 치며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 목소리는 이미 낮출 필요가 없을 만큼 컸다. 하준은 옆 반이었지만 체육 수업을 3반과 함께 듣는 날이 많았는데, 잘생긴 얼굴과 무심한 태도 때문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화제가 되는 학생이었다. 복도를 걸어올 때도 시선 한 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 그 태도가, 오히려 아이들의 관심을 더 부추기는 모양이었다. 하은은 그 소란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체육복 상의 지퍼를 올리며,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았다. *** 체육 시간, 운동장 한쪽에 놓인 이동식 벤치 위로 학생들의 가방과 수건이 아무렇게나 쌓여갔다. 누구의 것인지 구분도 안 될 만큼 뒤섞인 짐들 사이로, 하준의 수건도 그 틈에 섞여 있었다. 흰 바탕에 파란 줄무늬가 들어간,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수건이었다. 하준은 그 수건을 벤치 위, 자신의 가방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운동장 중앙으로 뛰어갔다. 체육 교사의 호루라기 소리가 몇 번이나 운동장을 가로질렀고, 학생들은 줄을 맞춰 뛰거나 짝을 지어 배구공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은은 짝이 없어 벤치 근처를 서성이다가, 마침 체육 교사가 다가와 "너희 둘, 이쪽으로 와" 하고 부르는 소리에 얼른 걸음을 옮겼다. 그 잠깐의 이동 속에서 벤치 위에 쌓인 짐들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눈에 담기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하준이 벤치로 다가와 수건을 찾다가 미간을 좁히며 멈춰 섰다. 가방 옆, 분명히 던져두었던 자리에 수건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 수건 어디 갔지." 하준이 낮게 중얼거리며 벤치 위를 뒤적이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몇몇 아이들이 나서서 벤치 아래를 살펴보거나 옆에 쌓인 다른 가방들을 들춰봤지만, 파란 줄무늬 수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가져갔나 봐." 에리가 다가와 팔짱을 끼며 말했고, 그 옆에 선 친구는 "설마, 누가 그런 걸 가져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하준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 체육복을 갈아입기 위해 교실로 돌아온 하은은 사물함 문을 열었다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사물함 안, 자신의 체육복 위에 낯익은 파란 줄무늬 수건이 얌전히 접혀 놓여 있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각을 맞춰 정리해놓은 듯, 그 수건은 하은의 다른 물건들과 뚜렷하게 대비되며 놓여 있었다. '왜 이게 여기 있지.' 하은은 손끝으로 수건 끝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그 촉감이 낯설게 느껴져 다시 놀란 듯 손을 거둬들였다. 사물함 문을 닫아야 할지, 그대로 두고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할지, 짧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어? 그거 하준이 수건 아니야?" 뒤따라 들어온 반 아이 하나가 사물함 안을 들여다보며 소리 높여 외쳤고,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좁은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체육복을 갈아입던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은의 사물함 쪽으로 쏟아졌고,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길게 빼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 했다. "진짜네, 파란 줄무늬." 누군가 확인이라도 하듯 덧붙였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실 안에는 낮은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하은은 손에 쥔 수건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는데, 등 뒤로 몰려드는 시선들이 마치 차가운 물처럼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사물함 손잡이를 쥔 손끝에 점점 힘이 들어갔고, 발끝이 바닥에 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교실 문 쪽에서 누군가 급히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마도 하준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 발소리가 멀어질수록 하은의 심장은 오히려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하필, 내 사물함에서." 하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그 한마디가, 자신조차도 놀랄 만큼 떨리고 있었다. 손에 쥔 수건의 감촉이 갑자기 낯설고 무겁게 느껴졌고, 교실 안을 가득 채운 시선들 속에서 하은은 그 어떤 말도 덧붙이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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