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는 내가 잡기로 했다

5화

그날 오후 3시, 도서실 앞 복도. 소야를 놓친 하은은 도서실 문 앞에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멈췄는데, 이미 문은 조용히 닫혀 있었고 그 안쪽 어디에도 소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쪽으로 뛰어들어갔는데.' 하은은 유리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도서실 안을 살펴보았지만, 서가 사이로 지나다니는 몇몇 학생들 뿐, 소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문에 손을 대고 살짝 열어보려던 하은은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서늘한 냉방 바람에 손끝이 시려지는 걸 느끼며 잠시 멈춰 섰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서실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 서가 사이사이를 훑어보았지만 결국 소득 없이 되돌아 나와야 했다. 복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표정이 생각보다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달은 하은은 헛웃음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는 거야.' 하은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마음 한구석에서 뜨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방과 후, 하은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근처 문구점 앞을 서성이며 반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문구점 진열대 앞에서 볼펜을 고르는 척하며 시간을 끌던 하은은, 마침 지나가던 같은 반 친구를 발견하고는 반사적으로 붙잡아 세웠다. "윤소야 선배님 알아? 2학년인데." 하은이 최대한 무심한 척 물었지만, 그 목소리에 이미 들뜬 기색이 배어 나오는 걸 스스로도 감출 수 없었다. "소야 선배? 아, 그 도서실 붙박이 선배 말하는 거야?" 같은 반 친구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하자, 하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응, 맞아, 그 선배. 왜, 뭐 아는 거 있어?" 하은이 볼펜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친구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재촉하듯 물었다. "항상 도서실에 있대. 추리소설만 빌려 읽는다던데, 말도 거의 안 하고 조용해서 별로 아는 사람도 없어." 친구가 덧붙인 설명에 하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정보를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근데 갑자기 왜 그 선배를 물어봐? 너 혹시." 친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를 캐물으려는 기색을 보이자, 하은은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니, 그냥, 오다가다 몇 번 봐서." 하은이 얼버무리며 볼펜 하나를 대충 집어 들었지만, 그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2학년, 도서실, 추리소설.' 하은은 그 세 단어를 손끝으로 셈하듯 되짚으며,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문구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를 지나면서도 하은의 머릿속에는 온통 소야의 놀란 얼굴과 도망치듯 사라진 뒷모습만이 맴돌았고, 그 잔상은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하은은 평소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집을 나섰는데,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도서실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그 앞을 지키고 서 있기 위해서였다. 아직 등교하는 학생들이 드문 이른 시각, 텅 빈 복도를 걸으며 하은은 자신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을 느꼈고, 그 소리에 맞춰 심장도 함께 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도서실 문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기다리던 하은은, 사서 선생님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여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게 발끝을 까딱였다. 도서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맞춰 안으로 들어선 순간, 서가 가장 안쪽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소야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 햇살이 창을 통과해 소야의 옆얼굴에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 빛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유난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하은의 심장이 다시 한번 세차게 뛰기 시작했고, 그 걸음은 이미 망설임 없이 그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서가와 서가 사이를 지나며 하은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향해 서두르며 다가간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잠시 스쳐 지났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소야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에 밀려났다. "선배님, 여기 계셨네요!" 하은이 반가운 목소리로 다가서자, 책을 읽던 소야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이 그대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책이 바닥에 부딪히며 낸 둔탁한 소리가 조용한 도서실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고, 근처에 있던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보았다. 소야는 떨어진 책을 주울 생각도 못 한 채,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하은의 얼굴을 마주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다. 의자가 밀리며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고, 소야의 등이 곧바로 뒤편 서가에 부딪히면서 책 몇 권이 흔들리듯 삐죽 튀어나왔다. "저, 저는 지금." 소야가 다급히 무언가 핑계를 찾으려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지만, 이미 등 뒤는 서가로 막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소야의 손끝이 옆에 있던 책등을 무의식적으로 더듬으며, 마치 그 자리에서 도망칠 구멍이라도 찾으려는 듯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하은과의 거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하은은 그런 소야의 모습에 오히려 웃음이 배어 나오는 걸 참지 못하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어제 그렇게 도망가시길래, 제가 좀 서운했거든요." 하은이 장난스럽게 눈을 접으며 말하자, 소야의 얼굴이 순식간에 귀 끝까지 붉게 물들었다.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소야가 겨우 내뱉은 말끝이 흐려지는 그 순간, 도서실 사서 선생님이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사서 선생님의 눈초리가 매서워, 하은은 어깨를 슬쩍 움츠리며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 눈빛 속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잠시 자리를 옮겨야 했는데, 서가 사이 좁은 통로에 나란히 선 순간, 하은은 소야의 손목에 슬쩍 스치듯 닿았던 자신의 손끝이 유난히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좁은 통로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에도 빠듯할 만큼 공간이 없었고, 그 가까운 거리 속에서 소야가 뿜어내는 옅은 종이 냄새와 책 특유의 낡은 향이 하은의 코끝을 스쳤다. '이 사람, 진짜 신기해.' 하은은 속으로 되뇌며 소야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소야는 여전히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소야의 시선이 바닥과 책장, 그리고 하은의 얼굴 사이를 정처 없이 오가는 걸 지켜보던 하은은, 그 모든 몸짓 하나하나가 어쩐지 사랑스럽게 느껴져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아냈다. "선배님은 항상 이 시간에 여기 계세요?" 하은이 목소리를 조금 낮춰 물었지만, 그 물음에는 이미 다음을 기약하려는 속내가 은근히 담겨 있었다. "네, 뭐, 그, 그런 것 같아요." 소야가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사이, 하은은 그 어눌한 말투마저 귀엽게 느껴져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때, 도서실 창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 하나가 지나가는 것이 하은의 눈에 걸렸다. 박에리가 도서실 밖 복도에 서서, 창문 안쪽의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에는 어제의 굴욕을 곱씹는 듯한 서늘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박에리는 창밖에서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 위로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을 지켜보며 입술을 얇게 다물었다. 그 시선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지, 하은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소야의 붉어진 얼굴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박에리의 손끝은 어느새 차갑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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