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같은 날 오전 11시, 한빛고등학교 복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도 전부터, 1학년 3반 교실 뒷문 쪽에서는 이미 낮은 목소리들이 오가고 있었다. 청소 도구함 옆에 있던 수건 한 장이, 정확히는 체육복 세탁 바구니에서 사라졌다던 그 수건이, 하은의 사물함 안쪽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그 소식을 전한 것은 사물함 관리 담당이었던 반장이었는데, 별다른 의도 없이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하고 중얼거린 그 한마디가,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옆 반, 그리고 그 옆 반으로 퍼져나가는 데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마치 마른 들판에 떨어진 불씨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듯, 사실 여부를 확인할 틈도 없이 소문은 몸을 불려가며 몰려다녔다.
처음에는 다들 그저 이상한 우연이라 여기며 넘어갔다. 사물함이 잘못 배정되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실수로 넣어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 우연에 확신의 도장을 찍어준 것은 다름 아닌 박에리였다.
"원래 하은이 좀 이상했잖아."
교실 뒷문 근처, 자신을 둘러싼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팔짱을 낀 채 에리가 던진 그 한마디는,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도 전에 이미 판결문처럼 작용했다. 몇몇 아이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끄덕임은 마치 도미노처럼 옆으로, 옆으로 옮겨 붙었다.
"평소에도 하준이 좋아한다고 티 냈잖아. 눈빛부터 다르던데."
에리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무리 중 하나가 "맞아, 나도 느꼈어" 하며 맞장구를 쳤고, 또 다른 아이는 "근데 진짜 그 수건 훔친 거면 좀 소름인데" 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 자리에 하은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은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이미 죄인의 이름으로 낙인찍혀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하은은 급식실로 향하는 대신 복도 끝, 창가 쪽 벽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쪽을 택했다. 그쪽이 사람이 가장 적었고,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었다.
교실을 나서기 전부터 이미 등 뒤에서 따라붙던 낮은 웅성거림이, 복도로 나온 뒤에도 끊이지 않고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다. 지나가는 아이들 몇몇이 하은을 발견하고는 하던 말을 멈추거나, 혹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 계속하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 미묘한 침묵과 속삭임의 온도차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하은의 귀를 찔러왔다.
"쟤 맞지, 수건 훔친 애."
누군가 스쳐 지나가며 작게 내뱉은 그 말에, 하은은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걸었지만,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미세한 떨림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번져오는 것을 스스로도 막을 수 없었다. 발끝이 저절로 빨라지고, 숨소리마저 조금씩 얕아지는 걸 느끼면서도 하은은 걸음의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그냥 지나가면 돼. 아무 일도 아니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그 말은 정작 그 자신에게도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사물함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누가 그 수건을 거기 넣어놨을까,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사이, 하은의 걸음은 어느새 복도 모퉁이에 다다르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하은은 걸음을 딱 멈춰 세웠다. 저만치 앞, 창문을 등지고 서 있는 에리와 그 무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여섯 명 남짓한 아이들이 어느새 반원 형태로 하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솔직히 말해봐, 니가 가져갔지?"
에리가 팔짱을 낀 채 턱을 살짝 치켜들며 물었고, 그 목소리에는 이미 답을 정해놓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처럼, 에리의 눈빛은 하은의 얼굴 위에서 천천히 훑고 지나가며 상대의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아니야, 나는 정말 몰라."
하은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떨림이 오히려 더 의심을 사기 좋은 증거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은은 달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몰라? 그럼 니 사물함에 왜 있었는데."
무리 중 하나가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고, 그 말에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낮은 웃음을 흘리며 하은을 향해 조금씩 좁혀 들었다. 그 웃음소리는 결코 크지 않았지만, 좁은 복도 안에서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며 오히려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하은은 등 뒤가 벽에 닿는 것을 느끼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한 기분에 숨이 얕아졌고, 손바닥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하준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에리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던진 말에, 주변을 지나던 학생들까지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이 하나둘 모여들 때마다, 하은은 자신이 마치 유리 상자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길들이 모두 자신을 향해 있었고, 그중 누구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수건 같은 걸 왜 훔쳤어? 설마 냄새라도 맡으려고?"
무리 중 가장 키가 작은 아이가 비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에, 몇몇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소리가 하은의 가슴을 날카롭게 긁고 지나갔다.
"그런 거 아니야. 나 진짜 몰랐어."
하은이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지만, 이미 그 말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여섯 개의 시선이 점점 좁혀오는 가운데, 하은은 손끝으로 벽을 짚으며 균형을 잡으려 애썼지만, 다리는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누가 좀... 누가 좀 여기서 꺼내줬으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스스로 우습다고 느끼면서도, 하은은 간절히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복도 저편, 도서실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순간 하은에게는 그 소리조차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에리의 눈빛이, 무리의 웃음소리가, 그리고 자신을 향한 수십 개의 시선이 뒤섞여 하은의 숨을 조여 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야, 대답 안 해?"
에리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순간, 여섯 개의 시선이 하은을 향해 마지막으로 좁혀오는 가운데,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또각또각, 일정한 속도로 울리는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하은은 벽에 몸을 붙인 채 숨을 죽이며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일지, 자신의 편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시선이 될지, 그 어느 쪽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