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년 반 만의 미소

1화

내 이름은 강도윤이다. 나이는 열다섯. 지방의 작은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자랐고, 검을 쥔 손보다 도망치는 발이 더 유명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기사를 배출했다고 했다. 조부님도, 아버지도, 삼촌도. 다들 검을 쥐면 눈빛이 달라졌다는데, 나는 아니었다. 검을 쥐면 눈빛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발이 먼저 움직였다. 선배들은 나를 볼 때마다 웃었다. 도윤이 저 녀석은 맞는 것보다 피하는 게 낫다고, 그게 재능이라고. 나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살아남는 게 재능이라면 그게 내 재능이었다. 한번은 훈련 중에 상급생과 대련이 붙은 적이 있었다. 나는 검을 세 번 휘두르고 그 뒤로는 계속 뒤로 물러났다. 상급생은 화가 나서 검을 집어던졌다. 그날 나는 매를 맞았지만, 속으로는 웃었다. 맞아도 살았으니까. 1년 전, 왕도 최고의 명문가인 선우 공작가에서 견습기사를 선발한다는 공고가 붙었을 때 나는 반쯤은 장난으로 응시했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내가 떨어질 거라고 했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나는 뽑혔다. 나 말고도 여섯 명의 동기들이 함께였다.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그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칭찬이었다. 선우 공작가는 왕도 북쪽 언덕 위에 자리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흰 돌담이 끝없이 이어졌고, 정원마다 검은 철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사슬 모양이었다. 검은 쇠사슬. 이 가문의 상징이라고 했다. 처음 그 조각상을 봤을 때, 나는 그게 단순한 장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슬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뒤틀려 있었다.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었다. 마치 진짜 사슬을 그대로 굳혀놓은 것 같았다. 입성 첫날, 나는 동기들과 나란히 서서 훈련장을 배정받았다. 다들 나보다 실력이 좋았다. 검을 쥐는 자세부터 달랐다. 어깨선, 손목의 각도, 발의 위치까지 하나같이 교본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웃으며 손을 들었다. "저는 뒤에서 잘 도망칠게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만 웃었다. 그날 밤, 나는 숙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괜찮아. 도망치는 것도 기술이야. 살아남으면 되는 거니까.' 그 생각이 위로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1년 동안 나는 그렇게 지냈다. 아침엔 훈련, 낮엔 잡무, 밤엔 코피 터지게 자는 하루. 검을 백 번 휘두르고, 물통을 채우고, 마구간을 치우고, 다시 검을 백 번 휘두르는 하루.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동기들 중 몇은 벌써 정식 기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검은 이제 나무가 아니라 진검이었다. 나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여전히 나무 검을 쥐고, 여전히 뒤로 물러나는 법만 익혔다. 그리고 그 1년 동안, 나는 저택 안쪽 깊은 곳에 있는 별채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었다. 그 별채는 본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정원을 세 개나 지나야 나오는 위치였고,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없었다. 그 문은 늘 닫혀 있었다.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하녀 몇을 빼면 아무도 없었다. 밤에 그 근처를 지나가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했다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딱히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 안에는 공작의 외동딸이 살고 있다고 했다. 왕도가 인정한 마법 천재. 검은 쇠사슬을 다루는 유일한 계승자. 나이는 나와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1년 반째, 그 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병을 앓고 있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녀가 사고를 쳐서 갇혀 있는 거라고 했다. 진위는 알 수 없었다. 다들 말은 많았지만 정작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흘려 넘겼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견습기사인 내가 공작 영애의 방 근처에 갈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 저택에서 내 위치는 딱 그 정도였다.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가, 언젠가는 정식 기사가 되거나 아니면 도로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날 아침, 훈련장 구석에서 나무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해가 아직 낮게 걸려 있어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공기는 서늘했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퍼졌다. "강도윤."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검을 내리고 돌아보았다. 한지훈 선배였다. 늘 장난스럽게 나를 놀리던 그 얼굴이 오늘은 이상하게 딱딱했다. 평소라면 "야, 너 오늘도 도망만 다니냐" 하고 웃으면서 다가왔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표정부터 달랐다. 눈썹 사이가 좁아져 있었고, 걸음도 평소보다 빨랐다. "왜 그런 얼굴이세요?" 내가 물었다. 한지훈은 대답하지 않고 내 어깨를 잡았다. 손에 힘이 꽤 들어가 있어서 나는 순간 움찔했다. "검 내려놔. 지금 공작님께서 너를 찾으신다." 나는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저를요? 왜요?"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내가 뭘 잘못했지? 잡무 빼먹은 거 걸렸나? 아니면 훈련 태만하다고 걸린 건가.' 그런데 생각해봐도 딱히 걸릴 만한 일은 없었다. 나는 그냥 조용히 도망만 다니던 견습기사였을 뿐이다. 한지훈의 표정이 조금 더 무거워졌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짧게 말했다. "가보면 알아."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공작이 견습기사 하나를 직접 부르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았다. 그것도 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축을. 하지만 공작의 부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검을 내려놓고 훈련장을 나섰다. 등 뒤에서 동기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들 궁금해하는 얼굴이었지만, 누구도 나를 따라오지는 않았다. 누구도 나서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더 불안했다. 저택 본관으로 향하는 복도는 유난히 조용했다. 걸음마다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그 소리가 신경 쓰여서 자꾸 발을 헛디뎠다. 복도 양옆으로는 이 가문의 조상들이라는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뭐지, 이 느낌.' 뭔가 커다란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발밑에서부터 스산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고, 복도 끝, 공작의 집무실로 이어지는 문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한지훈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강도윤 데려왔습니다." 문 안쪽에서 대답이 들렸다. 짧고, 낮고, 위엄이 실린 목소리였다. "들어와라." 한지훈이 문을 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이 문 하나를 넘는 순간, 지금까지의 1년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시작되리라는 걸,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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