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목요일의 간식 침입자

4화

"준서야!" 복도 한가운데서 그 이름이 크게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강나윤이 손을 흔들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교복 재킷을 어깨에 걸친 채, 여유롭게, 마치 세상에 무서운 게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학교에서 그녀는 나를 아는 척한 적이 없었다. 우리 둘 다 그게 규칙이었다. 옥상에서는 편하게 지내지만, 학교 안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도, 급식실에서 마주쳐도, 눈도 마주치지 않기로 했다. 그게 우리가 정한 유일한 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그 선을 완전히 밟고 넘어와 버렸다. 주변 시선이 확 몰렸다. 지나가던 애들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봤다. 사물함 문을 닫던 여자애도, 휴대폰을 보며 걷던 남자애도, 전부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봤다. "쟤 누구야?" "강나윤이 아는 척하는데?" "저 남자애 우리 반 아니잖아."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귓속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를 지워버릴 것 같았다. 이건 안 됐다. 이건 정말 안 됐다. 강나윤이 학교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 성적, 집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애. 그런 애가 나 같은 애 이름을 복도에서 크게 부르면, 다음 날부터 온갖 소문이 돌 게 뻔했다. "저, 저기요." 나는 작게 속삭였다. 목소리가 떨려서 나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아는 척 안 하는 거 아니었어요?" 나윤이 그제야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미안, 나도 모르게." "모르게라뇨." 목소리에 날이 서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예의를 차릴 상황이 아니었다. "습관이 됐나 봐. 옥상에서 매주 봐서." 나는 눈앞이 아찔했다.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내 편이 되어주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관계에 대한 힌트를 주변에 그대로 흘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옥상, 매주, 라는 단어가 사람들 귀에 그대로 꽂혔을 텐데. 손끝이 저려왔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재빨리 상황을 수습했다.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금까지의 얼빠진 얼굴은 사라지고, 익숙한 미소가 그 자리를 채웠다. "아, 맞다. 너 우리 반 애가 얘기하던 애구나! 착각했어, 미안!" 그녀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 걸음걸이 하나까지 자연스러웠다. 능숙하고 완벽한 연기였다. 학교에서 보던 그 완벽한 강나윤의 모습이었다. 방금 전 옥상에서만 보여주던 얼굴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아서 온몸에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스멀스멀 흘러내렸다. 셔츠가 등에 붙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행히 애들은 곧 관심을 잃고 흩어졌다. 강나윤이 착각했다고 하니, 그 이상으로 파고드는 사람은 없었다. 유명인이 던진 말이라도, 사소한 오해라면 다들 그냥 넘어가 주는 법이었다. 하지만 딱 한 명이 남았다. "야, 이준서." 내 옆에 서 있던 애였다. 나랑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친구, 성민이었다.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어, 성민아."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갈라졌다. "방금 뭐야." "뭐가?" 되묻는 목소리가 너무 빨랐다. 나 스스로도 그걸 느꼈다. "강나윤이 너 이름 불렀잖아." "착각이라잖아." "착각인데 이름을 어떻게 알아?" 순간 말이 막혔다. 성민이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다들 못 보는 디테일을 잘 잡아냈다. 급식 메뉴가 바뀐 것도, 선생님 기분이 안 좋은 날도, 성민이는 늘 제일 먼저 알아챘다. "그, 그게..." 나는 더듬거렸다. "수업 시간에 출석 부를 때 들었을 수도 있고." "우리 반이랑 걔네 반은 다른데. 걔가 우리 출석 시간에 있을 리가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나조차 방금 내가 한 말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됐나 보지." "이준서." 성민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다. 그 눈빛이 마치 뭔가를 확신하는 사람의 눈빛 같았다. "너 뭔가 숨기는 거 있지?" 나는 시선을 피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복도 끝을 바라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눈도 못 마주치는데?" "기, 기분 탓이야."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성민이는 더 캐물으려는 것 같았다. 입을 열어 뭔가 말하려는 순간, 마침 수업 종이 울렸다. * 나는 그 소리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재빨리 교실로 걸어갔다. 등 뒤로 성민이의 시선이 계속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교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지만,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머릿속은 온통 그 장면으로 가득했다. 선생님이 뭐라고 말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칠판에 뭔가 적혔고, 애들이 필기를 했고, 나는 펜을 쥔 채로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강나윤. 옥상. 목요일. 그 세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우리가 처음 옥상에서 마주쳤던 그 목요일 오후가 떠올랐다. 그날은 그냥 우연이었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올라갔을 뿐인데, 거기에 그녀가 먼저 있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매주 목요일마다 그 자리에서 만났다. 그건 우리만의 비밀이었다. 학교 안에서는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그런데 그 비밀에 오늘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성민이가 눈치를 챈 걸까. 아니, 아직은 확신이 아니라 의심 수준일 거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 조심하면 되는 거니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나는 그 생각만 계속 반복했다. * 그날 오후, 목요일이 아닌데도 나윤이 문자를 보냈다. 휴대폰 화면에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는 걸 보자마자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야 진짜 미안 나 진짜 습관적으로 그런 거야』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괜찮아요, 이번엔 넘어갔으니까요』 『다음엔 절대 안 그럴게』 『네, 근데 제 친구가 뭔가 눈치챈 것 같아요』 『헐 어떡해』 화면 너머로도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눈에 보였다. 『일단 제가 잘 둘러댔어요』 『역시 이준서 든든하다』 그 마지막 문장에, 나는 왠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든든하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났다. 화면을 보고 또 봤다. 몇 번을 읽어도 그 문장이 자꾸 눈에 남았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 웃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이상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온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다른 문자가 왔다. 이번엔 성민이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방금까지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야 내가 알아봤는데』 손이 먼저 반응했다. 화면을 누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뭘?』 답장이 오기까지의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다. 화면 위에 말줄임표 아이콘이 떴다가 사라지고, 다시 떴다. 『강나윤이 요즘 목요일마다 야자 안 하고 어디 간다는 소문 있던데. 너도 목요일마다 일찍 사라지잖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화면을 든 손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방 안이 조용했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지만, 그마저도 멀게 느껴졌다. 성민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냥 짐작인지, 아니면 이미 뭔가 확신을 가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답장을 써야 하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 속 그 문장이, 방금 전 나윤이 보낸 문장 위에 그대로 겹쳐 보였다. 역시 이준서 든든하다. 그 든든함이, 이제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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