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성민의 문자를 받은 뒤로 나는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했다.
1교시 국어 시간, 선생님이 시조를 읽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노트에는 필기 대신 의미 없는 낙서만 늘어갔다.
2교시 수학 시간에는 칠판에 적힌 함수 그래프가 눈앞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나를 지목해서 문제를 풀라고 했을 때, 나는 아예 몇 번 문제인지도 몰라서 옆자리 애가 손가락으로 가리켜줄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준서야, 요즘 정신이 딴 데 있는 것 같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자리에 앉으며 나는 성민이 보낸 문자를 다시 떠올렸다.
『너 목요일마다 어디 가냐. 옥상 쪽에서 봤다는 애가 있던데.』
그 한 줄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됐다. 만약 성민이 진짜 눈치를 챈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한빛고등학교에서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누가 누구랑 사귄다는 얘기는 하루 만에 전교생이 다 알게 된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다가도, 매점 줄을 서다가도,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도 소문은 순식간에 퍼진다. 그런데 나 같은 무존재감 남학생이 강나윤과 무슨 관계라는 소문이 나면, 그건 그냥 소문이 아니라 사건이 될 거였다.
그 사건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방과후, 나는 성민을 붙잡고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신경 썼다.
"야, 그거 무슨 소리야. 나 목요일마다 그냥 매점 갔다 오는 거야."
"매점을 삼십 분씩 가?"
"매점 줄이 길어서."
"삼십 분이나 줄을 서? 우리 학교 매점 그렇게 안 붐벼."
"요즘 신메뉴 나와서 그래."
"그리고 늘 옥상 방향으로 가더라."
뭐야, 얘 언제부터 나를 이렇게 관찰하고 있었던 거지.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우, 우연이야."
성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한참 쳐다봤다. 그 시선이 얼굴 위를 훑고 지나가는 게 꼭 거짓말 탐지기 같았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최대한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그러다 성민이 픽 웃었다.
"뭐,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진짜야."
"근데 만약 진짜 뭔가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 나 입 무거워."
"입 무겁다는 애들이 제일 말 많이 하더라."
"야, 그건 좀 억울한데."
"없다니까. 진짜로."
성민이 어깨를 툭 치고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성민이 완전히 믿은 건지, 그냥 넘어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오늘은 무사히 넘어간 셈이었다.
복도를 걷다가 교무실 앞을 지나갔다. 걸음을 늦추지 않으려 했는데, 안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정수 선생님이었다. 그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다른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애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있던데."
순간 발이 멈췄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뭔데요?"
"강나윤이랑 어떤 남자애가 사귄다나. 근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고."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벽 옆에 붙어 선 채로 숨소리마저 죄이며 그 대화를 엿들었다.
"허, 애들 상상력이 참."
"뭐 그냥 애들 다 그런 거지. 신경 안 써."
"그 강나윤이란 애가 워낙 눈에 띄는 애니까 별별 소문이 다 붙는 거지."
"맞아요. 인기 많은 애들은 원래 그래."
박정수 선생님은 정말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목소리에 걱정이라곤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원래 학생 관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이런 소문쯤도 그냥 흘려들을 게 뻔했다. 그 무관심이 지금 이 순간엔 나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방패가 버텨줄지는 몰랐다. 이름이 밝혀지는 순간, 저 무심한 목소리는 완전히 다른 톤으로 바뀔 거였다.
나는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며 교무실 앞을 벗어났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집으로 가는 길, 하늘이 벌써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가방끈을 꽉 붙잡은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신호등 앞에서 잠깐 멈췄을 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나윤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야 그 소문 들었어?』
『네, 저도 들었어요. 큰일이네요』
『어떡하지』
『일단 조심해야죠』
『근데 신기하지 않아? 우리 이야기가 벌써 소문이 됐다는 거』
나는 그 문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는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이야기.
그 표현이 이상하게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윤은 지금 이 상황이 무섭다기보다, 어딘가 신기하고 재밌다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그 여유가 부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이 정도 소문이 별일이 아닌 걸까. 아니면 원래 이런 시선에 익숙한 사람인 걸까.
『신기하긴 한데 저는 좀 무서워요』
『왜 무서워?』
『소문 나면 저만 이상해지잖아요』
『뭐가 이상해져』
나는 답을 쓰다가 지웠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 누웠다. 가방도 벗지 않은 채였다. 천장을 보며 오늘 하루를 곱씹었다.
나는 원래 이야기의 배경이었다. 눈에 안 띄고, 사건도 없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캐릭터. 반에서 이름 불리는 일도 별로 없고, 급식 줄에서도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는, 있어도 없는 듯한 존재. 그런데 지금 나를 둘러싼 상황을 보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스마트폰 회수 사건. 옥상의 비밀 아지트. 담임한테 하마터면 걸릴 뻔한 순간. 복도에서의 실수. 친구의 의심. 그리고 이제는 학교 전체로 번지려는 소문.
이게 정말 조연의 인생인가.
뇌 속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도 몰라.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려 했다. 아니야. 나는 그냥 평범한 애야. 강나윤 같은 애가 진짜 주인공이고, 나는 그 옆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조연일 뿐이야.
스스로에게 계속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옥상에서 나윤과 나눴던 대화들, 스치듯 마주친 시선들, 그 짧은 순간들이 자꾸 필름처럼 재생됐다. 이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일까. 소문이 이렇게까지 커진다는 게, 정말 그냥 우연일까.
***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내 등장에 몇몇 애들이 고개를 돌렸다. 애들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몇몇은 소곤거리다가 내가 다가가면 뚝 멈췄다. 그 정적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는 것조차 어색했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성민이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평소의 장난기 섞인 표정이 아니었다.
"준서야, 큰일 났어."
"뭔데."
"어제 누가 옥상에서 너랑 강나윤 봤다는 얘기가 SNS에 올라왔대."
손에서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