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법소녀 협박했더니 전학이라니

1화

쏴아아. 빗줄기가 옥상 난간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옥상 창고 뒤에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였다. 한 시간 전, 학교 뒤편 상가에서 이상한 빛이 터졌다. 다들 폭죽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알았다. 저건 폭죽 소리가 아니었다. 폭죽은 저렇게 하늘을 찢지 않는다. 저건 뭔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철근이 우그러지는 소리,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편의점 봉투를 던지고 뛰었다. 왜 뛰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뛰었더니 여기, 학교 옥상이었다. 찰박. 젖은 신발 소리가 옥상 바닥을 밟았다. 나는 창고 틈으로 눈만 내밀었다. 빛이 걷히고 있었다. 하얀 리본이 풀리고, 검은 실루엣이 서서히 색을 되찾았다. 교복이었다. 낯익은 교복. '설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번쩍. 번개가 하늘을 갈랐고, 그 짧은 빛 속에서 나는 얼굴을 봤다. 같은 반 유한별. 숨이 턱 막혔다. 손끝이 저릿했다. 입이 바짝 말랐다. '저게... 낙성소녀 별지기라고?' 뉴스에서 매일 떠들던 그 마법소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듯 나타나 괴인을 처치한다는, 그 정체불명의 존재. 아침 뉴스에서 앵커가 심각한 얼굴로 떠들 때마다 나는 채널을 돌렸다. 그런 게 진짜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별이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몸이 창고의 조명 없는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났다. 옷이... 없었다. 변신이 풀리는 순간, 마법 의상까지 함께 사라진 모양이었다. 한별이의 등이 가늘게 떨렸다. 추워서인지, 방금 전 싸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누군가와 싸운 직후처럼, 아니 실제로 싸운 게 맞을 거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찰칵. 손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보다 먼저. 셔터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한별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로, 화면 속에 박힌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선명했다. 너무 선명해서 무서울 정도로.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그냥 사진이 아니었다. 이건... 무기였다. 옥상을 내려오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계단 하나를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다른 속도로 뛰었다. '이걸 어떻게 쓸까.' 그 생각이 죄책감보다 먼저 찾아왔다는 걸, 그때는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3개월 후. 나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비가 그친 하늘이었다. 석 달 전 그 밤과는 다르게 맑았다. "완결아, 뭐 봐." 짝꿍 놈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대답 대신 씩 웃었다. '완결'. 중학교 때부터 붙은 별명이었다. 뭘 시작하면 늘 끝장을 본다고 붙었다는데, 사실 그냥 게임 클리어율이 높아서 붙은 거였다. 의미도 없고 자랑도 아닌데 다들 그렇게 불렀다.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끝장을 본다는 말, 지금 생각하면 꽤 잘 맞는 말이었다. 교실 문이 열렸다. 달칵. 유한별이 들어왔다. 평소처럼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발소리도 없이. 그날 이후로 저 애는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이 굳었다. 반 애들은 그걸 그냥 한별이 원래 성격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아무도 진짜 이유를 몰랐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한별이가 힐끗 나를 보더니 곧 시선을 돌렸다. 그 짧은 순간에도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 흔들림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쉬는 시간, 나는 매점으로 가는 계단에서 한별이를 붙잡았다. "야." "...뭐." 한별이의 목소리가 낮았다. 경계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오늘 밤에 나와." 나는 사탕 하나를 깨물었다. 딸기맛이었다. "어디로." "편의점 앞. 8시." 한별이는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뒷모습이 뻣뻣했다. 어깨가 살짝 굽어 있었다. 꼭 무거운 걸 지고 걷는 사람처럼. '저래도 결국 나오겠지.' 나는 웃었다. 사진 한 장. 그거면 됐다. 한별이가 그날 밤 창고 뒤에서 벗은 몸으로 웅크려 있던 사진. 얼굴까지 선명하게 나온 그 한 장이면, 나는 낙성소녀 별지기의 목줄을 쥔 것과 다름없었다. 가끔 그 사진을 다시 열어볼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경찰에 넘기면 나는 감시 대상이 될 거고, 누군가에게 팔면 더 큰 사고가 날 거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지우지 않았다. 지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했다. 죄책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딱 3초 정도. 그다음엔 그냥 이게 얼마나 쓸모 있을지가 더 궁금해졌다. 밤 8시, 편의점 앞. 한별이가 후드를 눌러쓰고 서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찼다. 가로등 불빛이 편의점 유리창에 부딪혀 노랗게 번졌다. "용건이 뭐야." 한별이가 물었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별거 없어." 나는 컵라면을 하나 사서 나왔다. 뚜껑을 열고 물을 부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어서." "뭘." "네가 진짜 그 별지기인지." 한별이의 눈이 흔들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소리야." "발뺌하기엔 늦었어."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지 않은 채 흔들기만 했다. "여기 사진 있거든." 순간 한별이의 몸이 완전히 굳었다. 숨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후드 아래로 보이는 입술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설마." "응, 그날 옥상." 나는 컵라면 국물을 한 입 마셨다. 뜨거웠지만 참았다. "화질 좋더라." 한별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관절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지워." "안 지워." "당장 지워!" 목소리가 갈라졌다. 편의점 앞을 지나던 사람 한 명이 힐끗 이쪽을 돌아봤다가 다시 걸어갔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한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눈빛. 나는 그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귀엽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죄책감이 다시 3초쯤 스쳤다. "뭘 원해." 한별이가 물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이미 답을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건 별로 없어." 나는 국물을 다 마시고 컵을 던졌다. 텅. 쓰레기통에 정확히 들어갔다. "그냥 내 말 좀 들어줘. 그거면 돼." "그게 무슨 뜻이야." 한별이가 한 발 다가섰다. 후드 밑에서 눈이 번뜩였다. 그 순간만큼은 마법소녀가 아니라 그냥 화가 잔뜩 난 열여덟 살짜리 여자애처럼 보였다. "돈을 원해? 아니면..."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돈은 관심 없어. 그냥 심심해서 그래." "심심해서?" 한별이의 목소리가 커졌다. "내 인생을 갖고 심심함을 풀겠다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그게 더 화를 돋운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한별이가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 "그건 필요할 때 말할게."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얼굴 봤으니 됐어. 들어가." "이대로 그냥 갈 수 없어." 한별이가 내 팔을 붙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빗물에 젖었던 그날 밤처럼. "놔." "사진, 진짜 지울 생각 없어?" "없어." 나는 팔을 뺐다. "대신 당장 뭐 시키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겁먹지 마." "겁먹은 거 아니야." 한별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떨림은 숨겨지지 않았다. 한별이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뒷모습이 떨리고 있었다. 후드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재밌겠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마법소녀를 종속시킨 고등학생. 이런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빈 컵라면 뚜껑을 만지작거리며 한별이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봤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사람 그림자 하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러고도 한참을,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몰랐다. 이 관계가 얼마나 골치 아픈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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