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법소녀 협박했더니 전학이라니

2화

며칠 뒤, 학교 뒷골목. 쾅. 무언가 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나는 걷다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발바닥에 힘이 훅 빠지는 느낌이었다. 먼지가 걷히고, 검은 형체가 일어섰다. 키가 3미터쯤 되는 회색 덩어리. 얼굴은 인간의 형체였지만 팔이 세 개였다. 세 번째 팔은 어깨가 아니라 등에서 뻗어 나와 있었다. 비율이 어긋나 있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괴인.' 숨이 턱 막혔다. 뉴스에서 본 그 척괴인이었다. 여명광복단이 만들어낸다는, 정체불명의 존재. 화면으로 볼 때는 그냥 CG 같았는데, 실물은 냄새부터 달랐다. 탄내 비슷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괴인이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휙. 나는 몸을 던지듯 옆으로 굴렀다. 어깨가 아스팔트에 부딪혔다. 아팠다. 진짜 아팠다. 팔꿈치 살이 벗겨진 게 느껴졌다. 따끔거리는 감각이 뒤늦게 올라왔다. "미친." 나는 욕을 씹었다.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망쳐야 되나, 그냥 죽는 건가.'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괴인이 다시 다가왔다. 발소리가 쿵, 쿵. 지면이 흔들렸다. 가로등이 흔들리며 불빛이 지지직 깜빡였다. 그 순간, 하얀 빛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번쩍. 눈이 시릴 정도로 밝았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낙성소녀 별지기가 그 사이에 내려섰다. 검은 리본이 달린 흰 드레스, 얼굴 절반을 가린 마스크. 치맛자락이 아직도 낙하의 잔영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너." 마스크 너머로 한별이의 눈이 나를 보고 흔들렸다. "나 좀 살려줘." 나는 뒤로 물러나며 손을 흔들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한별이는 잠깐 나를 쏘아보더니 곧 괴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짧은 순간에도 눈빛이 복잡했다. 반갑다는 것도 아니고, 짜증난다는 것도 아니고, 둘 다인 것 같았다. "중력의 이름으로." 한별이가 손을 뻗었다. 순간 괴인의 몸이 위로 치솟았다. 둥. 중력이 반전된 것처럼 괴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가로수 이파리들이 함께 딸려 올라가다가 툭툭 떨어졌다. '저게 마법이구나.' 나는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봤다. 숨 쉬는 것도 잊고 있었다. 괴인이 다시 떨어지며 지면을 강타했다. 쿠웅. 먼지가 크게 일었다. 바닥이 움푹 파여 있었다. 저게 사람 몸에 닿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니 등에 소름이 돋았다. 한별이는 곧바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졌다. 손목을 비틀자 괴인 주변의 공기가 눌리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유리창이 우는 듯한 소리가 짧게 울렸다. 괴인의 몸이 그대로 압착되듯 작아졌다. "끝이야." 한별이가 손을 내리자 괴인이 검은 재로 흩어졌다. 바람이 한 번 불고, 재는 그대로 흩날려 사라졌다. 조용해졌다. 비가 멎은 자리처럼. 귀가 멍했다.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한별이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였다. 걸음걸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를 살피는 시선이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괜찮아?" 의외로 걱정하는 말투였다. 나는 웃었다. "덕분에." 사실은 어깨도 아프고 무릎도 까졌는데,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왠지 그러면 더 걱정할 것 같았고, 걱정받는 게 낯설었다. 한별이는 잠시 나를 보다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 사진, 오늘 밤에 지워." "싫어." "제발." 목소리에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는 척했다. 사탕을 하나 꺼내 물었다. 딸기맛. 아삭, 껍질을 까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안 지워.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방금 그 힘, 나 좀 빌려줘." 한별이의 눈이 커졌다. 마스크 너머로도 표정이 그대로 읽혔다. "무슨 소리야." "너 학교에서도 완전 조용하잖아. 근데 이런 힘이 있으면 쓸 데가 많아." 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예를 들면, 시험지 훔쳐보기라든가." "뭐?" "장난이고." 나는 웃었다. "사건 해결에 쓰자고. 나 요즘 취미가 탐정 흉내내기거든." 한별이가 한숨을 쉬었다. 지친 한숨이었다. 어깨가 축 내려가는 게 마스크 위로도 보였다. "...너 진짜 최악이야." "칭찬 고마워." 한별이는 뭐라 더 쏘아붙이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포기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는 게, 이상하게 웃겼다. 다음 날, 학교 뒷산 근처에서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등산객 실종. 일주일 사이 세 명이나 사라졌다는 뉴스였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화면 아래 자막은 붉은 글씨로 강조되어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노란 통제선이 바람에 팔락거리며 넘실댔다. 나는 한별이를 끌고 현장에 갔다. 한별이는 내내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따라오긴 했다. "이런 데 가면 위험하다는 거 몰라?" "몰라. 몰라서 가는 거야." 경찰 통제선 근처, 낯선 남자가 우리를 막아섰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눈매가 날카로웠다. 구두는 흙 한 점 묻지 않은 채 깨끗했다. 이 산속에서 저렇게 깨끗한 구두를 신고 있는 게, 뭔가 어색했다. "여긴 민간인 출입 금지입니다." "그거 신경 안 써도 돼요." 나는 손을 흔들며 지나가려 했다. 남자가 팔을 뻗어 막았다. 팔을 뻗는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어 있었다.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한별이가 순간 몸을 굳혔다. 남자를 아는 듯한 눈치였다. 숨소리가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여명광복단." 한별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남자가 살짝 미소 지었다. 서늘한 미소였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전혀 웃지 않는, 그런 종류의 미소. "낙성소녀. 오늘은 협조 안 하실 겁니까?" 한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남자를 쏘아보기만 했다. '뭐야, 아는 사이야?'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촉을 세웠다.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적대적인 게 아니라, 오래된 사이 같은 느낌이었다. 남자가 나를 힐끗 보았다. 시선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이 학생은 누굽니까." "제 친구요." 한별이가 짧게 답했다. "...친구." 남자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의심을 담은 눈빛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웃었다. "네, 친구요. 뭐 문제 있나요?" 남자는 잠시 나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코트 자락이 바람에 짧게 나부꼈다. "...조심하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남자는 사라졌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것도 이상했다. 한별이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크게, 참았던 숨을 몰아서 뱉는 것처럼. "저 사람... 여명광복단의 조사관이야. 괴인 사건 뒤에서 움직여." "괴인을 만드는 놈들이 조사도 해?" 나는 미간을 좁혔다. 말이 안 됐다. 불을 지른 놈이 소방차 뒤에 서서 구경하는 꼴이었다. "...몰라. 나도 몰라." 한별이가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에 짜증과 불안이 섞여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적을 만드는 놈들이, 적을 조사하러 다닌다니. 나는 팔짱을 끼고 통제선 너머 산길을 바라봤다.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자꾸 들었다. "저 남자, 이름은 알아?" "...몰라." "자주 봐?" "...몰라." "너 지금 몰라밖에 안 하네." 한별이는 대답 대신 나를 쏘아봤다. 더 캐물으면 진짜로 화낼 것 같은 눈빛이라, 나도 슬쩍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산속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악!" 날카롭고 짧은 소리였다. 새들이 한꺼번에 나무에서 날아올랐다. 나와 한별이는 동시에 그쪽으로 뛰었다. 발밑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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