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아침 식탁은 언제나 조용했다. 정확히는, 나를 뺀 나머지 가족들 사이에서만 대화가 오갔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 하인들이 국을 떠 나르는 소리, 그 사이사이로 어머니와 언니의 웃음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는 그저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그 풍경을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이 집에서 십몇 년을 살았는데도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이 식탁의 공기였다. 나만 다른 세계에 앉아 있는 기분.
"지수야, 이번 궁중 연회에 입을 옷은 정했니?" 어머니가 물었다.
"보라색 계열로 생각 중이에요, 어머니. 왕자님이 보라색을 좋아하신다고 들었거든요."
서지수는 웃으며 답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나는 매번 감탄했다. 진심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 있는데 눈동자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저 재주는 어디서 배운 걸까. 나였으면 벌써 표정이 무너졌을 텐데.
"보라색이라, 잘 어울리겠구나." 어머니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왕자님 취향까지 신경 쓰다니, 우리 지수는 역시."
나는 조용히 국그릇을 내려다봤다. 저기 담긴 건 그냥 미역국인데, 왜 내 앞에서만 유독 짜게 느껴지는지.
"둘째는?" 아버지가 문득 나를 향해 물었다. 드문 일이었다.
숟가락을 든 손이 잠깐 멈췄다. 아버지가 나에게 직접 말을 거는 건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으니까.
"저는 안 가도 되지 않을까요."
최대한 무해하게 들리도록 목소리를 다듬었다. 사실 이 말도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연습한 거였다. 너무 단호하면 반항으로 보일 테고, 너무 흐리면 무시당할 테니까.
"초청장에 서가의 두 딸이라고 명시돼 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야 한다."
역시. 예상한 대답이었다. 나는 표정을 굳히지 않으려고 애썼다.
네, 좋아요. 라고 나는 답했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생각이었다. 이런 자리에 가봤자 나는 벽처럼 서 있다가 조용히 빠져나오는 게 전부일 텐데, 굳이 왜. 나 하나 빠진다고 서가의 체면이 그렇게 크게 상할 리도 없을 텐데. 아니, 어쩌면 상할지도 모르지. 이 집에서 체면은 목숨보다 중요한 거니까.
어차피 가야 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 집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시키는 대로 하고,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 그러다가 밤이 되면 사당으로 가서 라온을 만나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의 전부였다.
귀족가의 영광이니 왕실의 눈에 드는 것 같은 건 관심 없었다. 나는 그저, 나 자신과 라온이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그 외의 것들은 다 배경음악 같았다. 시끄럽긴 한데,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둘째는 표정 관리나 좀 해라." 어머니가 덧붙였다. "괜히 왕실 앞에서 서가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먹칠. 나는 그 단어를 속으로 곱씹었다. 내가 언제 뭘 그렸다고.
네. 하고 나는 짧게 대답했다. 더 길게 말했다간 또 무슨 트집이 잡힐지 몰랐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서지수는 어머니와 옷감을 고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그 옆을 지나쳐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 밤엔 또 뭘 입혀서 끌고 갈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연회는 예상대로 지루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보다는 서로의 지위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누구는 어느 가문의 몇째고, 누구는 최근에 어떤 관직을 받았고, 누구는 누구의 눈 밖에 났고. 대화의 팔 할이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벽 쪽에 서서 유리잔을 든 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손에 든 잔 속의 술은 한 방울도 줄지 않았다. 마실 생각도 없었다. 그냥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그냥 지나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나는 몇 번의 연회를 거치며 배웠다.
악사들의 음악이 흐르고, 촛불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겹겹이 쌓였다. 언니는 저 멀리서 몇몇 귀족 자제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었다. 저건 진짜 웃음일까, 또 그 계산된 웃음일까.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가, 관심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서가의 둘째 영애."
낮고 정제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제2왕자 이헌이 서 있었다. 냉정한 눈매, 흐트러짐 없는 자세. 소문대로였다.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헌 왕자님." 나는 예를 갖춰 인사했다.
가슴 한쪽이 조금 서늘해졌다. 왕자가 나 같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 일이 없었으니까. 이 집안에서 왕실과 접점이 있는 딸은 서지수 하나로 충분했다.
"연회가 지루한가?"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어차피 거짓으로 둘러대는 재주도 없었으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그렇습니다."
이헌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는 표정이었다.
"보통은 아니라고 답하지 않나."
"거짓말을 잘 못해서요."
그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뭔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어차피 숨길 것도 없었으니까. 나는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게 없으면 두려울 것도 없다는 걸, 이 순간 새삼 깨달았다.
"흥미롭군." 이헌이 말했다. "서가의 둘째는 늘 조용하다고 들었는데."
"조용한 것과 거짓말 못하는 건 다른 얘기니까요."
그는 짧게 웃었다. 정확히는 웃음이라기보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인 정도였지만.
"보통 이런 자리에서 조용한 사람들은 거짓말도 잘하지. 남들 눈치 보는 게 익숙해서."
"저는 눈치를 보긴 하는데, 거짓말로 이어지진 않아서요."
"그럼 뭘로 이어지나?"
"그냥… 침묵으로요."
그는 이번엔 조금 더 오래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묘하게 불편했다. 사람을 관찰하는 눈빛과, 사람을 의심하는 눈빛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확실히 다른데, 지금 저 눈은 그 경계에 서 있었다.
"영애."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야산 쪽에 관심이 있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잔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기를. 손이 떨리지 않았기를.
이헌은 아무 대답 없이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뭔가를 알고 묻는 건지, 아니면 그냥 던져본 말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니면 됐고." 이헌은 그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짧게 목례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방금 오간 대화를 몇 번이고 되짚었다.
야산 쪽에 관심이 있냐고?
그건 그냥 인사말이 아니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눈빛엔 뭔가가 담겨 있었다. 사람을 떠보는 듯한, 혹은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나는 어젯밤 숲에서 본 등불을 떠올렸다. 나무 사이로 흔들리던 그 작은 불빛. 라온과 나 말고 그 등불을 본 사람이 있었던 걸까.
설마.
주변을 둘러봤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 웃고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이헌의 뒷모습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그 등이 유독 곧고 단단해 보였다. 저 사람은 대체 뭘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냥 나를 흔들어 보고 싶었던 걸까.
잔 속의 술이 아직도 그대로였다. 나는 그 술잔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