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밤의 일은 다음 날 아침, 아버지의 방으로 나를 불러들이는 일로 이어졌다.
시녀가 문을 두드리며 "아가씨, 대인께서 찾으십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 야산에서의 일이 새어 나갔다는 걸. 그것도 아주 빠르게.
세수를 하고 옷매를 정리하는 동안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속으로는 온갖 변명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다듬고 있었다. 다친 짐승을 도와줬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몇 번을 되뇌어도 입에 붙지 않는 문장이었다.
아버지의 방문 앞에 서니, 안에서 낮게 가라앉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서준혁은 원래도 말이 짧고 표정이 무거운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그 무게가 유독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들어오라 하십니다." 시녀가 문을 열어주며 작게 속삭였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젯밤 야산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봐라."
서준혁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보던 눈이, 그제야 나를 향해 들렸다. 나는 방문 앞에 선 채,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다친 짐승을 도와줬을 뿐입니다."
"짐승이 아니라 왕실 소속 영수였다고 들었다."
그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곧바로 태연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심장이 크게 뛰었지만, 얼굴만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았다.
"저는 그런 걸 알아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냥 다친 생명을 봤을 뿐입니다."
사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실의 절반이었다. 다친 생명체라는 건 맞았지만, 그게 평범한 짐승이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짐작을 입 밖으로 낼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나를 응시했다. 눈살을 찌푸리는 그 표정이, 딸을 걱정해서인지 가문의 명예를 걱정해서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마 후자였겠지. 서씨 가문에서 '걱정'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명예와 붙어 다녔으니까.
책상 위 서류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던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왕실 감시자들이 널 지목했다. 규율 위반 혐의로."
심장이 덜컥했지만, 나는 표정을 흔들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계산을 돌렸다. 감시자가 지목했다는 건, 누군가 이미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야산에서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은빛 짐승 곁에 있던 남자의 얼굴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규율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영수와 함부로 접촉하지 말라는 건 상식이다."
"상식이라면서 문서화된 규율은 아니라는 말씀이시네요."
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몰랐다.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줄은. 평소의 나였다면 그냥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로 넘겼을 텐데. 뭔가 바뀌었다는 걸, 나조차도 낯설게 느끼고 있었다.
방 안의 침묵이 길어졌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화로운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잠깐 정신을 놓았다가, 아버지의 다음 말에 다시 정신을 붙잡았다.
"말이 많아졌구나, 둘째."
'둘째'라는 호칭이 유독 차갑게 들렸다. 이름 대신 순번으로 불리는 것. 그게 이 집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였다.
"그냥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알고는 있느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위협이라기보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이 집안에서 위협과 경고의 차이는 아주 미묘했지만,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미묘한 경계를 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아야, 다음번엔 조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더 말을 잇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방을 나서며, 나는 한숨을 삼켰다. 일단 오늘은 넘어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감시자가 지목했다는 건, 이 일이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왕실이 관여하기 시작했다면, 서씨 가문 하나로 덮을 수 있는 크기의 일이 아니었다.
복도를 걸으며 나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은빛 짐승. 왕실 소속 영수. 그 곁에 있던 남자. 그리고 감시자.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가 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겠어. 일단은 걸어야지.
복도를 걷다가, 나는 서지수의 방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안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왕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발끝을 살짝 들어 마루가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며, 문 옆 벽에 몸을 붙였다.
"고대 율법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다 정리될 거예요."
고대 율법.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 단어가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안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그런 게 정말 존재하나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존재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서지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평소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상냥한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서늘한 어조였다. "기록만 만들어지면 되니까."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존재하지 않는 걸 만들어낸다는 말.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좋은 예감은 절대 아니었다. 기록을 만든다는 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며낸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고대 율법'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대체 무엇을 정리하려는 걸까. 누구를 정리하려는 걸까.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뒤로 물러났다. 발끝이 마루에 닿는 순간, 등 뒤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 누구예요?"
서지수의 목소리였다. 날카롭고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숨을 삼키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얼굴에는 최대한 아무 표정도 담지 않으려 애썼다.
"지안이니?" 언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문 틈으로 언니의 얼굴이 절반쯤 드러났다. 평소의 온화한 미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계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언니가 그걸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 서지수는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온기가 없었다. 입꼬리만 올라간, 눈은 전혀 웃지 않는 그런 웃음이었다. "조심해. 요즘 아버지가 너 때문에 신경이 많이 곤두서 있으시니까."
그 말이 경고인지 위협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말투가 평소 언니가 나를 대하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늘 상냥하고 부드럽던 언니가, 오늘은 조금 더 날이 서 있었다.
"명심할게요, 언니."
나는 최대한 순종적으로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니가 방금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그 '기록'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게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언급되는지.
서지수는 나를 잠시 더 바라보다가 문을 다시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복도의 정적 속에서, 방금 들은 대화의 조각들을 다시 되짚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언니는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어젯밤 야산에서 있었던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