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네가 빛나던 여름

4화

구월 첫째 주 월요일, 교실 문 앞에서 서은채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여름 방학 내내 준비했던 모든 순간이 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응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8시 20분. 아직 조회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손잡이를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괜찮아. 여름 내내 준비했잖아.' 새벽마다 뛰었던 공원 트랙이 떠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그 순간들, 식단표를 붙여놓고 하나씩 체크해나가던 밤들. 그 모든 노력이 지금 이 문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교실 안이 순간 정지했다. 삼삼오오 떠들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 정적.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서은채는 그 시선들 속에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시선 하나하나가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마치 낯선 사람을 평가하듯. '역시 이상한가.' 그녀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에 땀이 배어나왔다.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윤소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끼익— — 야, 서은채?! 진짜 서은채야?! 목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렸다.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가 서은채의 팔을 잡았다. 손이 은채의 팔뚝을 위아래로 훑었다. — 대박, 완전 딴사람이잖아! 방학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윤소라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그녀는 서은채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윤소라의 반응이 신호탄이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 진짜 서은채 맞아? — 헐, 예뻐졌다. — 어떻게 한 거야? — 얼굴 라인이 완전 달라졌는데? 여러 목소리가 겹쳐지며 교실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은채 쪽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마치 낯선 전시품을 구경하듯 신기해하는 눈빛들이었다. 서은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올랐다. 이질감과 뿌듯함이 뒤섞인,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이런 관심을... 받아도 되는 걸까.' 낯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를 향한 시선은 늘 무시나 냉소였는데. 그때, 교실 뒤편에서 지켜보던 한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서은채 앞에 섰다. 뒷자리에서 걸어오는 걸음이 유독 여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예의 그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서은채, 너 이렇게 예뻤어? 서은채는 순간 그를 바라봤다. 몇 달 전, 도시락을 놓고 비웃던 그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야, 서은채. 이 도시락 다 먹을 거야? 살 좀 빼야 되지 않냐?』 그날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반 아이들 앞에서 느꼈던 수치심도. — ... 대답을 못 하고 있는 사이, 한도영이 팔짱을 끼며 씨익 웃었다. 그의 눈빛엔 예전의 조롱은 사라지고 낯선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 앞으로 잘 지내보자. 서은채.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태도의 급변이 그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몇 달 전엔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처럼 대했던 그가, 지금은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교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강민준은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눈동자만이 한도영과 서은채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속에서 뭔가가 조용히 뒤틀리는 걸 느꼈다. '왜 저 자식이 저렇게 다가가는 거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함이었다. 심장 아래쪽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는 그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예전에 놀렸던 게 신경 쓰여서 그런 거겠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설명했지만, 손끝이 책상 위에서 무의식적으로 꽉 쥐어져 있었다. 펜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슬쩍 손에서 힘을 뺐다.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렸다.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신경은 여전히 등 뒤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쏠려 있었다. 조회 시간이 시작되면서 소란은 잠시 가라앉았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출석을 부르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시선은 자꾸만 서은채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그 시선들을 견디며 애써 정면만 바라봤다. 쉬는 시간, 윤소라가 서은채의 자리로 다시 다가왔다. 의자를 끌어와 은채 옆에 딱 붙어 앉았다. — 진짜 어떻게 뺀 거야? 나도 다이어트 방법 좀 알려줘. 그녀의 눈빛엔 순수한 궁금증이 가득했다. — 그냥... 매일 뛰고, 식단 조절하고. — 그거 혼자 했어? 윤소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미심쩍은 듯한 눈빛이었다. 서은채는 잠시 망설이다 강민준 쪽을 흘깃 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시선 안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감사함, 그리고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다른 감정. 강민준은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척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목덜미가 살짝 뻣뻣해져 있었다. — ...조금 도움 받았어. 윤소라가 눈을 반짝였다. — 누구한테?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서은채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차마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때 한도영이 다시 그녀의 자리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손에는 음료수 캔 하나를 들고 있었다. — 은채야,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이미 대답을 정해둔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교실 안의 소음이 순간 강민준의 귀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노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지만, 펜을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종이 위에 의미 없는 선이 하나 더 그려졌다. 서은채는 당황한 얼굴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다시 강민준 쪽을 향했다. 이번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간절하게. 하지만 강민준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노트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왜 나를 보는 거야.' 그 시선의 의미를 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한도영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 은채야? 서은채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교실 안 시선들이 다시 그녀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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