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극혐남의 자립 선언

4화

아침 6시 정각. 알람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준호는 눈을 번쩍 떴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눌러 알람을 끄고, 곧바로 이불을 걷어냈다. 창밖은 아직 뿌옜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커튼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서윤아의 초인종이 울릴 때까지 이불 속에서 뒹굴었을 것이다. 알람이 세 번은 더 울려야 겨우 몸을 일으키던 게 준호였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준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스트레칭 한 번 없이 곧바로 세면대로 향했다. 찬물을 틀었다. 쏴아아, 물소리가 좁은 화장실을 채웠다. 손바닥에 물을 받아 얼굴에 끼얹었다. 차가운 감각이 뺨을 때리고 지나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방울이 턱선을 따라 흘러 목덜미로 떨어졌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 밑에 옅은 다크서클이 남아 있었다. 어제 밤 늦게까지 넥타이 매는 법을 검색하다 잠들어서였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멍하니 풀려 있던 눈이 아니라, 뭔가를 결심한 듯 또렷했다. '오늘부터다.' 속으로 되뇌었다. 옷장을 열었다. 다림질해둔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소매 끝의 주름을 손으로 몇 번 문질러 폈다. 넥타이를 목에 걸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손이 자꾸 엉켰다. 스마트폰을 세면대 옆에 세워두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매는 법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영상 속 남자는 여유롭게 3초 만에 매듭을 만들어냈다. 준호는 그 3초를 위해 십 분을 씨름했다. 첫 번째 시도는 매듭이 너무 크고 헐렁했다. 풀었다. 두 번째 시도는 아예 방향이 잘못돼서 넥타이 끝이 셔츠 밖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다시 풀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이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세 번째 시도. 숨을 한 번 참고, 천천히 순서를 되짚었다. 겨우 매듭을 만들었다. 삐뚤긴 했지만, 스스로 맨 넥타이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넥타이는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래도 웃음이 났다. 피식, 짧은 웃음이었다. 헤어스타일도 손봤다. 욕실 서랍 안쪽에 처박혀 있던 왁스 통을 꺼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물건이었다. 손바닥에 짜서 머리에 문지르는 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끈적하고, 향이 강했다.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뻗쳤다. 몇 번을 다시 만졌다. 어색하게 세운 앞머리가 거울 속에서 낯설게 보였다. 평소 서윤아가 대충 눌러주던 머리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이상한가.' 잠시 고민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두기로 했다. 식탁에는 어제 미리 사둔 시리얼과 우유가 준비되어 있었다. 편의점에서 제일 잘 나가는 걸로 골랐다. 포장을 뜯어 그릇에 쏟아붓고 우유를 부었다. 서윤아가 챙겨주던 계란말이 도시락은 없었지만, 스스로 준비한 첫 아침이었다. 숟가락으로 몇 번 떠먹었다. 평소와 똑같은 시리얼인데, 맛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혼자 먹으니까 이런 느낌이구나.' 그릇을 개수대에 넣고 가방을 챙겼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준호는 잠시 멈춰서 초인종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지금쯤 서윤아가 눌렀을 시간이었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초인종이 울렸다. 삑, 삑. 익숙한 두 번의 소리였다. 준호는 문을 열었다. 서윤아가 서 있었다. 평소처럼 단정한 교복 차림, 손에는 늘 그렇듯 준호의 몫까지 챙겨온 것 같은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마 삼각김밥 두 개, 바나나맛 우유 하나일 것이다. 매일 똑같은 조합이었다. "야, 늦었……" 말을 하다 멈췄다. 서윤아의 눈이 커졌다. 동그랗게, 마치 뭔가에 놀란 토끼처럼. 서윤아의 눈이 준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느릿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넥타이는 삐뚤었지만 매어져 있었다. 머리는 어색했지만 정돈되어 있었다. 교복은 다림질까지 되어 있었다. "너…… 뭐야?" 서윤아의 목소리에 당황이 섞여 있었다. "뭐가." 준호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속으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제발 티 나지 마라.' "너 혼자 이거 다 한 거야?" "응." "넥타이도?" "응." "머리도?" "응." 서윤아는 잠시 말을 잃은 듯했다.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준호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손을 뻗어 준호의 넥타이 매듭을 살짝 만져보았다. "삐뚤어." "알아." "근데 왜 안 고쳐?" "그냥 놔둬." 서윤아의 손끝이 넥타이 위에서 잠깐 머물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왜 갑자기……" "그냥. 이제부터 혼자 하려고." 준호는 짧게 대답하고 신발을 신었다. 운동화 끈을 묶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서윤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뭔가 불안한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준호는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봐도 못 본 척해야 돼.' "편의점 봉투는……" 서윤아가 손에 든 봉투를 슬쩍 들어 보이며 물었다. "오늘은 됐어." "삼각김밥 새로 나온 거 사왔는데." "괜찮아." 서윤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평소라면 아무 말 없이 받아 들었을 준호였다. 그런데 지금은 딱 잘라 거절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길이었지만, 준호의 태도는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어깨를 곧게 펴고, 시선은 앞을 향한 채, 걸음걸이마저 평소보다 빨랐다. 서윤아가 넥타이를 고쳐주려고 손을 뻗었을 때, 준호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괜찮아. 이 정도면 됐어." 서윤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잠깐 그 자세로 굳어 있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왜 그래, 오늘?" "뭘." "평소랑 다르잖아." 준호는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걸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등하교도 따로 하자." 서윤아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서 뚝 멈췄다. 준호는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등 뒤로 서윤아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따가울 정도였다. "뭐?" 서윤아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살짝 갈라진 목소리였다. 준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발끝에 힘을 주고, 앞만 보며 걸었다. "이제 나도 혼자 다닐 수 있어. 너도 편하잖아." 그 말을 뱉는 순간, 준호의 가슴 한켠이 시큰하게 아팠다. 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표정만은 흔들리지 않도록 애썼다. 뒤에서 서윤아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준호는 그대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등 뒤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매일 들리던 발소리가 사라지자, 길이 유독 조용하게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목덜미가 뻣뻣해질 정도로 참았다. '돌아보면 안 돼.' '돌아보면 다 무너져.' 준호는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교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등굣길 학생들이 하나둘 지나쳐 갔다. 낯익은 얼굴도 있었지만, 준호는 인사할 여유조차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서윤아, 지금 무슨 표정 짓고 있을까.' 궁금했다. 동시에 무서웠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교문 앞에 다다랐을 때, 준호는 아주 잠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저 멀리, 서윤아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준호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오늘부터 정말로,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플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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