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아침 여섯 시 반.
서윤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준호가 사라진 교문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발끝이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교복 치마 끝을 흔들었다.
'뭐야, 저거.'
속으로 몇 번이나 되물었다.
등하교를 따로 하자니.
그것도 저렇게 태연한 얼굴로.
방금까지 옆에서 걷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진 게,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서윤아는 미간을 좁힌 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지각까지 남은 시간은 십오 분.
'십오 분 동안 뭘 하고 있는 거야, 나.'
결국 혼자 걷기 시작했다.
혼자 걷는 길은 이상하게 넓었다.
옆에서 늘 뭐라고 투덜대던 목소리가 없으니, 발소리만 유독 크게 울렸다.
타박, 타박.
운동화 밑창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선명했다.
서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옆을 한 번 돌아보았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편의점 앞 파라솔도, 늘 지나치던 골목 모퉁이도 그대로였는데, 유독 그 자리 하나만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적응 못 하겠네, 진짜.'
서윤아는 괜히 가방끈을 다시 고쳐 메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교실에 들어서자 이준호는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삐뚤었던 넥타이는 어제와 달리 제법 반듯했다.
연습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셔츠 깃도 각이 살아 있었고, 머리카락도 평소보다 정돈되어 있었다.
서윤아는 그 매듭을 잠깐 노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누가 봐도 신경 쓴 얼굴인데.'
"안녕."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평소라면 잔소리부터 튀어나왔을 목소리였다.
이준호는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어."
그게 끝이었다.
서윤아의 눈썹이 파르르 움직였다.
'뭐야, 저 대답은.'
원래도 말이 많은 애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무미건조한 적은 없었다.
마치 처음 보는 반 친구를 대하는 태도였다.
서윤아는 자리에 앉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가방을 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책을 꽂는 손이 자꾸 헛돌았다.
'뭐 하러 저런 거에 신경을 쓰고 있어.'
속으로 그렇게 되뇌면서도, 시선은 자꾸 이준호의 옆얼굴로 향했다.
이준호는 창밖만 보고 있었다.
한 번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쉬는 시간, 매점 앞.
하은지가 빵을 사 들고 다가왔다.
"야, 서윤아. 표정이 왜 그래?"
"뭐가."
"복어 같아. 화난 복어."
서윤아는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
"화 안 났어."
"근데 왜 이준호 쪼끄만 눈으로 계속 쳐다봐?"
"안 쳐다봤어."
"방금 세 번째야."
서윤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런 걸 왜 세고 있어."
"신기하니까. 너 이준호 신경 안 쓰는 애였잖아."
하은지가 빵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뜯었다.
"원래 걔가 넥타이 삐뚤어져 있어도 신경도 안 쓰고 그러더니."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지. 오늘 계속 힐끗거리잖아."
'아니, 신경 쓴 적 없어.'
서윤아는 그렇게 속으로 정정하려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무언가가 어긋난 채로 계속 신경을 긁고 있었다.
등하교를 따로 하자던 그 목소리.
평소와 다르게 딱딱했던 그 얼굴.
서윤아는 빵 봉지를 괜히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냥…… 어제 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뭔 소리?"
"등하교 같이 안 하겠대."
하은지의 눈이 동그래졌다.
"헐. 갑자기 왜?"
"몰라. 갑자기 넥타이도 매고, 다림질도 하고, 머리도 만지고."
"완전 딴사람 됐네. 뭔 계기 있는 거 아니야?"
하은지가 턱을 괴고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 생긴 거 아니야?"
서윤아의 손끝이 멈췄다.
"그게 뭔 상관이야."
"아니, 갑자기 저러는 거 보면 딱 그런 거잖아. 드라마에서 보면."
"드라마랑 현실이 같니."
서윤아는 딱딱하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이상하게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게 왜, 뭐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다가 서윤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지금 뭘 신경 쓰는 거야.'
하은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뭔가 있었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짚이는 게 없었다.
어제까지 평소와 똑같았는데.
점심시간.
급식실 한쪽 구석에서 이준호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원래도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조용했다.
같은 반 남자애들 몇이 옆에서 떠들어도 이준호는 별 반응이 없었다.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손짓조차 평소보다 굼떴다.
서윤아는 멀찍이 앉아 그 모습을 곁눈질했다.
'저러다 체하겠다, 진짜.'
밥알을 씹는 척, 계속 그쪽으로 눈이 갔다.
이준호가 국물을 뜨다가 젓가락을 놓치는 걸 보았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반쯤 일어났다.
'뭐야, 왜 이렇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가가지 않았다.
다가갈 명분이 없었다.
등하교를 따로 하자고 한 것도 이준호였고, 저렇게 태연한 것도 이준호였다.
서윤아는 젓가락 끝으로 밥알을 콱 눌렀다.
밥알이 뭉그러졌다.
'내가 왜 신경 쓰는데. 지가 먼저 그러자고 했으면서.'
식판을 정리하고 나가는 이준호의 뒷모습을 서윤아는 끝까지 지켜보았다.
교문 밖까지 시선이 따라갔다가, 문득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걸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교 시간.
서윤아는 평소처럼 이준호의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멈춰 섰다.
이제 같이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맞다. 오늘부터 따로였지.'
혼자 실소가 나왔다.
몸에 새겨진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 싶었다.
하지만 발은 이미 익숙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골목 하나, 편의점 하나, 육교 하나.
늘 걷던 순서 그대로였다.
결국 서윤아는 이준호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정문 앞에 서서 자신이 왜 여기 서 있는지 스스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초인종에 손을 올렸다.
'뭐 하는 거야.'
손끝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누를 이유가 없었다.
인사를 해야 할 이유도, 안부를 물을 이유도 없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은 거야. 뭔가 잘못된 게 없는지.'
그런데도 손을 떼지 못했다.
버튼 위에 얹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순간, 이 층 창문에서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누군가 안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윤아는 재빨리 손을 거두고 뒤돌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두근, 두근.
귓가에서 맥박이 울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봤나? 봤겠지. 커튼이 저렇게 흔들렸는데.'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다고 하면 되는데.'
'아니, 애초에 여기까지 왜 온 거냐고, 나.'
서윤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걸었는데도, 머릿속은 계속 그 창문의 흔들림만 되짚고 있었다.
그날 밤, 서윤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가 다시 걷어냈다.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넥타이를 다림질까지 해서 맨 모습.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던 목소리.
혼자 급식실 구석에서 밥을 먹던 뒷모습.
그리고 이 층 창문에서 흔들리던 커튼까지.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은 채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았다.
'설마…… 진짜로 뭔 일 있는 거 아니야?'
서윤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다음 날 학교에서 훨씬 더 선명해질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