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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촬영장 조명이 뜨겁게 내리쬐는 스튜디오 안에서, 서유나는 거울 속 자신의 앞머리를 노려보며 입술을 잘게 깨물고 있었다. 조명 아래 놓인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의 무릎 위로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대본이 펼쳐져 있었고, 담당 스타일리스트가 세 번째로 고쳐준 앞머리였지만 여전히 한쪽으로 뻗쳐 있었으며, 그 미묘한 각도의 차이가 오늘 화보의 전체 인상을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녀만이 예민하게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왼쪽으로요." 그녀가 낮게 요청하자, 스타일리스트는 이미 지쳤다는 얼굴로 다시 빗을 들었지만 손끝에서 나오는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몇 번을 매만져도 뻗친 머리카락 한 올이 자꾸만 눈썹 위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며 유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여섯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유나의 마음속에서 오래된 상처처럼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 도윤의 손끝이 만들어내던 앞머리는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빗질 몇 번에 완성되던 그 각도를, 유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대로 그려낼 수 있었고, 그가 사라진 뒤로 만난 어떤 손도 그 감각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의 손은 언제나 정확했다. 힘을 준 것 같지 않은데도 머리카락 한 올까지 계산된 듯이 자리를 잡았고, 그 정교함이 유나에게는 늘 안심이었다. '왜 하필 그 사람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되묻는 물음이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춰 섰다. 이유 없이, 설명도 없이, 그는 그냥 사라졌다. 회사 쪽에서는 '개인 사정'이라는 말만 반복했고, 유나는 그 모호한 문장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를 알아내려 매니저를 붙잡고, 예전 동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심지어 그가 살던 오피스텔 앞까지 찾아갔다가 결국 지쳐 포기했었다.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마다 명치가 꽉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무뎌졌다고 믿고 있었다. "유나 씨, 오늘 컨디션 괜찮아요?" 옆자리에서 화장을 받고 있던 오하늘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답게 씩씩한 말투였고, 커다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유나 쪽을 살피는 얼굴에는 순수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유나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힘없이 웃었다. "괜찮아. 그냥……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에이, 그 정도면 완전 예쁜데요? 유나 씨는 좀 까칠한 편이시네." 오하늘의 장난스러운 말에 유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다시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사소한 일 하나에도 흔적을 남긴다는 게, 유나는 새삼스레 서글펐다. 화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유독 이런 생각이 짙어졌는데, 카메라 앞에 서기 전 마지막으로 거울을 볼 때마다 예전의 완벽했던 순간들이 자꾸만 겹쳐 보이는 탓이었다. 촬영 시작까지 십 분이 남았다는 스태프의 외침이 울린 순간, 스튜디오 입구 쪽에서 낮은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였는데, 또각또각 울리는 그 리듬이 이상하게 익숙하다는 느낌이 유나의 가슴 어딘가를 건드렸다. 스튜디오 안의 시끄러운 잡담과 조명 조절 소리 사이에서도 그 발소리만은 이상하게 선명하게 들려왔고, 유나는 자신이 왜 그 소리에 이토록 반응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였다. 거울 속으로 비치는 실루엣을 확인하려 고개를 살짝 돌린 순간, 유나는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숨을 멈췄다. 도윤이었다. 예전과 다름없는 차분한 걸음으로, 검은색 셔츠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올린 채, 손에는 익숙한 가위 케이스를 들고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표정에는 미안함도, 반가움도 없었고, 그저 오늘 일을 시작하러 온 사람처럼 무심한 얼굴이었다. 스튜디오 안의 다른 스태프들이 그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는 모습을 보아, 이미 이곳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얼굴인 듯했다. 유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손끝이 저도 모르게 무릎 위의 대본을 움켜쥐었고, 손톱이 종이를 파고드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미쳤네, 진짜.' 속으로 내뱉은 말이 목구멍 안에서 부서졌다. "오래 기다리셨죠." 도윤이 그녀 앞에 멈춰 서며 낮게 말했다. 마치 어제도 이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처럼, 어떤 죄책감도 미안함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유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으로 그를 훑었다. 예전보다 조금 마른 것 같았고, 광대뼈 아래 그늘이 짙어진 얼굴에는 반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했으며, 셔츠 소매 아래로 보이는 손목에는 낯선 밴드 같은 것이 감겨 있었지만, 유나의 정신은 그런 것을 자세히 살필 여유가 없었다. 오하늘이 옆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뭔가 눈치를 채려는 듯 눈을 굴렸지만, 유나는 그런 시선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신이……" 겨우 입을 뗐지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당신이 여기 왜 있어요?" 목소리 끝이 갈라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아무 예고도 없이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으니까. 도윤은 대답 대신 그녀의 앞머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별다른 설명도 없이 빗을 집어 들었다. 그 동작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유나는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지난 반년의 시간을 통째로 건너뛴 하나의 꿈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많이 상했네요." 그가 담담하게 중얼거리며 빗살 사이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통과시키는데, 그 손길에는 어떤 서두름도 없이 예전 그대로의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그의 손끝이 그녀의 이마 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걷어 올리는 순간, 유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함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섯 달 만에 다시 닿은 그의 손끝은, 여전히 소름이 돋을 만큼 익숙했다. 거울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교차했다. 도윤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유나는 오히려 그 담담함이 낯설어 먼저 눈을 돌렸다. 스튜디오 안의 조명이 유독 뜨겁게 느껴졌고, 심장이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묻고 싶은 말은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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