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오전 8시 50분.
유치원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실내화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고무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인, 유치원이라면 어디든 똑같을 그 냄새.
스물여섯 해를 살면서 이런 냄새를 다시 맡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신발을 갈아신는 손끝이 아직 서툴렀다.
벨크로를 붙이는 데도 몇 번을 헛손질했다.
몸이 다섯 살이라는 걸, 이런 작은 순간마다 새삼 깨닫는다.
교실 문을 열자 창가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은은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서서 나를 바라봤다.
어제 억지로 밀어낸 게 통한 걸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접기로 한 걸까.
교실 안 다른 아이들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크레파스를 꺼내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 평범함 속에 하은만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은아."
내가 먼저 다가갔다.
하은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피했다.
시선을 피하는 그 짧은 순간,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다섯 살짜리가 그렇게까지 감정을 숨기려 애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내 전생을 통틀어서도.
"나 너 안 따라다닐 거야."
"...그래?"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하은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담담한 척, 이라는 게 더 정확했다.
손이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나는 그 손을 물끄러미 봤다.
잡아주고 싶은 마음과 잡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동시에 들었다.
둘 중 어느 쪽도 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다섯 살 아이가 억지로 마음을 눌러 참는 걸 보는 게, 편치 않았다.
내가 원한 게 이거였는데.
거리를 두려던 거였는데.
막상 성공한 것 같은 지금, 왜 이렇게 답답한지 알 수 없었다.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이의 감정을 억지로 눌러 담게 만든 게 성공이라면, 그 성공이란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오전 10시.
자유놀이 시간.
하은은 혼자 블록을 쌓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 근처에 가지 않았다.
내 쪽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블록이 세 칸, 네 칸, 다섯 칸 쌓여갔다.
높아질수록 손이 떨렸다.
결국 다섯 번째 칸을 올리다 전체가 와르르 무너졌다.
하은은 무너진 블록을 한동안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다시 처음부터 쌓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선이 자꾸 어긋난 채로 나를 향했다.
안 보는 척, 계속 보고 있었다.
윤소라 선생님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다가왔다.
선생님의 걸음에는 익숙한 무게가 있었다.
매일 수십 명의 아이를 살피는 사람의 걸음.
"하은아, 나은이랑 안 놀아?"
"네, 저 이제 참을 수 있어요."
다섯 살짜리가 참는다는 말을 쓰는 게 이상했다.
선생님도 그 말에 잠깐 멈췄다.
"...참는다고?"
"네. 선생님이 그러면 나은이가 좋아할 거라고 했잖아요."
선생님의 표정에 미묘한 균열이 지나갔다.
아이에게 그런 조언을 한 건 선생님 본인이었을 텐데도, 막상 그 말을 그대로 되돌려 받으니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건,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선생님이 뭔가 더 설명하려다 말을 멈췄다.
다섯 살 아이에게 감정의 층위를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얼굴이었다.
그 대화를 옆에서 듣던 나는 숨을 멈췄다.
하은이 참고 있다는 것.
그건 억누른다는 뜻이었다.
감정을 없앤 게 아니라, 그냥 안에 눌러 담고 있다는 뜻이었다.
눌러 담은 감정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전생의 나는 계좌를 보며 수백 번 배웠다.
손실을 인정하지 않고 물타기만 하다가, 결국 계좌가 통째로 무너지는 순간을.
언젠가 그게 다시 터질 것 같은 불안이 스쳤다.
블록이 세 번째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은은 이번엔 다시 쌓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무너진 블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후 12시 30분.
점심시간이 끝나고 정리 시간이었다.
윤소라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라무네를 하나씩 나눠줬다.
오늘 생일인 아이가 있어서 특별히 준비한 간식이었다.
연두색 병에 담긴 라무네가 아이들 손에 하나씩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병을 흔드는 소리, 구슬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라무네를 받아 뚜껑을 열려고 했다.
구슬이 걸려 잘 열리지 않았다.
손가락에 힘을 줘봤지만 다섯 살짜리 손목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이리 줘봐."
선생님이 라무네 병을 받아 능숙하게 뚜껑을 눌렀다.
구슬이 톡 소리를 내며 안으로 떨어졌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 됐어."
병을 다시 건네받으며 나는 선생님의 손을 봤다.
손톱이 짧게 정리돼 있었다.
일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손등에 작은 상처 자국도 몇 개 보였다. 아마 아이들을 돌보다 생긴 것들.
"감사해요."
"뭘. 이런 거 매일 하는데."
말투는 무심했지만, 손을 거두는 동작이 조금 느렸다.
선생님이 잠깐 자리에 앉았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눈 밑에 옅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스무 명 넘는 아이들을 혼자 살피고 있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님도 이거 한 병 드세요."
나는 내 라무네를 선생님에게 밀었다.
"어, 나은이 거잖아."
"저는 목 안 마른데. 선생님 힘들어 보여서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스물여섯 해를 살면서, 누가 힘들어 보이면 그냥 뭔가를 건네는 게 습관이었다.
편의점 알바를 하던 시절에도, 매장을 정리하다 지친 동료에게 캔커피를 건넨 적이 수없이 많았다.
그 습관이 몸을 바꿔서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선생님이 그 말에 잠깐 멈췄다.
표정이 굳었다.
"...나은아."
"네?"
"너 다섯 살 맞아?"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가끔 너 말하는 게 애 같지 않아서."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선생님이 라무네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고마워."
짧은 인사였다.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이 이상하게 붉어졌다.
"요즘 결혼하라는 소리를 너무 들어서 그런지, 이런 작은 것에 마음이 약해지네."
혼잣말처럼 흘린 말이었다.
혼인 의무, 라는 사회적 압박이 스물네 살 보육교사에게 얼마나 무겁게 얹혀 있는지 그 한마디로 짐작이 갔다.
이 세계에서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숫자였다.
매달 어딘가에서 인구 통계가 발표되고, 미혼자 명단이 어딘가로 전송된다는 소문도 들었다.
스물넷이면 이미 압박이 시작될 나이였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응."
선생님은 라무네 병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나를 오래 바라봤다.
병 속 구슬이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이 조금 전 현관에서 봤던 그 시선과 같았다.
짧지 않은, 오래 머무는 시선.
손끝이 차가워졌다.
하은에게 일어난 일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색연필, 밥, 라무네.
작은 배려 하나가 매번 시작점이었다.
세 번 모두 시작은 같았다.
누군가가 지쳐 있었고, 나는 뭔가를 건넸다.
그리고 상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매번 상대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게 우연일 리 없었다.
전생에 배운 확률 개념으로 따지면, 같은 조건에서 같은 결과가 세 번 연속으로 나온다는 건 우연이 아니라 패턴이었다.
패턴이라면,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란 뜻이었다.
오후 3시.
하원 준비 시간.
나는 가방을 챙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가방 끈을 어깨에 걸치는 동작조차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개였다.
첫 번째, 이 힘을 완전히 숨기고 다섯 살짜리 평범한 여자아이로 사는 것.
두 번째, 이 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숨을 참듯 배려를 참는다는 게, 스물여섯 해를 살아온 방식을 전부 버리라는 뜻이었다.
그건 나를 죽이는 것과 비슷했다.
누군가 지쳐 보이면 물을 건네고, 넘어진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고.
그런 반사적인 행동들을 전부 억누르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하은 같은 아이가, 윤소라 선생님 같은 어른이, 계속 나타날 거였다.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방을 다 챙긴 아이들이 하나둘 현관으로 향했다.
나도 그 줄에 섞여 걸었다.
줄 맨 끝에서 하은이 혼자 걷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번째를 생각할 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는 그 편안함이 두려웠다.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편안함이란 원래 위험한 감정이었다.
전생에서도, 계좌가 잠깐 회복될 때마다 그 편안함에 속아 물을 더 탔다가 더 크게 무너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식탁 맞은편에서 나를 오래 쳐다봤다.
식탁 위에는 계란말이와 시금치나물, 된장국이 놓여 있었다.
평범한 저녁상이었다.
그런데 분위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나은아."
"네."
"오늘 선생님이 또 전화하셨어."
숟가락을 든 손이 멈췄다.
"이번엔 하은이 얘기가 아니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가 선생님한테 라무네를 줬다고. 그리고 선생님이 좀 이상하게 반응하셨다고."
숨이 막혔다.
"그냥 목 마르실까 봐 드린 거예요."
"나은아."
어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엄마가 요즘 너를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애쉬그레이 머리카락 아래 눈이 나를 똑바로 향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다섯 살답지 않은 게 자꾸 보여."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 같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식탁 위, 계란말이가 담긴 그릇 옆으로 나는 손을 뻗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몰라요."
거짓말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건넨 색연필 하나, 밥 한 숟갈, 라무네 한 병.
그 작은 것들이 사람의 마음에 무슨 짓을 하는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 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 앞에서마저 숨을 곳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딸을 걱정하는 눈물인지, 다른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식탁 위 조명이 어머니의 눈에 비쳐 눈물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을 보는데, 낮에 봤던 하은의 눈빛과 윤소라 선생님의 눈빛이 겹쳐 떠올랐다.
그리고 그 눈물을 보는데, 나는 처음으로 이 힘의 다음 대상이 누구일지 짐작이 갔다.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머니의 눈을 마주 보는 게, 이상하게도 가장 두려운 일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