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시녀장님, 정말 잊은 걸까요?

2화

의사라는 사람은 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시녀가 죽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문을 열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는 몸을 움찔했다. 물리적으로. 눈에 보일 정도로. 어깨가 먼저 굳고, 그다음 손이 떨렸다. 그릇을 든 손끝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저, 도련님. 아침 식사입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죽 그릇을 내려놓는 손도 떨렸다. 그릇과 쟁반이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 '괜찮다'는 말도 이상할 것 같았고, '왜 그러냐'고 묻는 것도 상황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시녀가 나가고 나서야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안도의 한숨 같았다. '저 정도로 무서워한다는 건, 뭔가 사연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렇게 추론했다. '그렇다면 그 사연의 중심에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있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했지만, 확인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죽을 몇 술 뜨는 것도 잊고 방을 둘러보았다. 벽 한쪽에 움푹 들어간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세게 던진 물건이 부딪친 자리 같았다. 자국의 모양을 보면 둥근 물건, 이를테면 화병 같은 것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책상 다리 하나는 부러진 채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는데, 색이 미묘하게 달라 눈에 띄었다. 원래 나무보다 살짝 밝은 색이었다. 급하게 구해온 목재였을 것이다. 방 안의 물건들은 대체로 낡았지만, 이상하게도 새로 갈아 끼운 부분들이 곳곳에 있었다. 부서지고, 고치고, 다시 부서지고, 다시 고친 흔적. 흔적들 사이에는 시간의 층이 있었다. 오래된 흠집 위에 새 흠집이 겹쳐 있었으니까. 나는 그 흔적들을 하나씩 손끝으로 짚어가며 셈해 보았다. 벽지 자국 셋, 문틀 흠집 둘, 깨진 화병을 대체한 새 화병 하나. '적어도 여섯 번은 이 방에서 뭔가가 부서졌다.' 소름이 돋았다. 감정적으로가 아니라, 순전히 산술적으로. '평범한 도련님이 방을 여섯 번이나 부술 일이 뭐가 있을까. 술주정, 아니면 발작? 아니면 누군가와 몸싸움을 했다든가.' 가능성을 하나씩 세다가,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셈을 멈췄다. 지금 상태로는 뭐든 가능해 보였다. 점심 무렵, 나는 저택을 걸어보기로 했다. 몸이 낯설어서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웠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원래 주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낼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걸어야 자연스러울 상황이었다. 복도는 길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마루가 미세하게 삐걱거렸는데, 그 소리조차 낯설게 들렸다. 이 몸이 이 저택에서 몇 년이나 살았는지는 몰라도, 발이 이 복도의 길이를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친 하인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고개 숙임에 존경이 없었다. 오히려 뭔가를 견디는 자세 같았다. 등을 굽히는 각도가 지나치게 깊었고, 다시 허리를 펴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존경해서 숙이는 게 아니라, 빨리 지나가라고 숙이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해졌다. 무섭다는 감정과 서글프다는 감정이 반씩 섞인 기분이었다. 주방을 지나갈 때, 나이 든 하인 하나가 젊은 시녀에게 뭔가를 지시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순간 주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냄비 끓는 소리만 계속 들렸다. "윤 시녀장님의 지시가 없으면 그 일은 하지 마라." 지시를 받던 시녀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게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규칙인 것처럼. 반문 한마디도 없었다. '집사도, 하인장도 아니라 시녀장의 허락이 우선이라는 건가.'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이런 저택이면 집사가 실권을 갖지 않나? 아니면 이 저택은 다른가?' 생각을 정리하려는데, 나이 든 하인이 나를 발견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서둘러 자리를 비켰다. 시녀도 눈을 내리깔고 물러섰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될 사람인 것처럼. '저 시녀장이라는 사람이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궁금증이 점점 커졌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윤서인이었다. 어느새 뒤에 서 있었는데, 발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조용한 걸음이었다. 나는 놀란 걸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돌아섰다. "그냥... 걸어보고 있었어요." "기억이 없다고 하셨죠." "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내 얼굴을 살피듯 바라보았다. 표정에 동요가 없었다. 두려움도, 호기심도 아닌, 순수한 관찰이었다. "그럼 조심하십시오. 이 저택에서, 도련님을 좋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무섭게 들렸다. 경고가 아니라 사실을 통보하는 어조였으니까. 마치 날씨를 알려주는 것처럼 무미건조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녀도 나를 마주 보았다. 물러서지 않았다. 몇 초간 시선이 얽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눈을 피하거나, 최소한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히려 안심이 됐다. 저택 전체가 나를 두려워하는 와중에,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 그런데 그 안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더 위험한 신호일 수도 있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최소한 거리를 둔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필요하다면 다가와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안심과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과 신뢰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녀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정말 단순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다음 말이 그 의문을 더 짙게 만들었다. "참고로, 어제 부러진 화병 조각은 제가 치웠습니다. 손 다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어제. 그러니까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직전, 무슨 일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하나의 질문을 삼켰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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