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한도진이라는 남자는 마차 소리부터 남달랐다.
바퀴 소리가 유난히 무거웠다. 앞뜰에 도착한 마차는 세 대였는데, 그중 두 대는 짐마차였다. 나는 창가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짐마차가 두 대라니.'
단순한 방문이라면 이럴 필요가 없었다. 뭔가를 옮겨오는 거래, 혹은 뭔가를 옮겨가는 거래였다.
마차에서 내린 남자는 체격이 좋았고, 걸음걸이에 여유가 넘쳤다. 웃는 얼굴이 지나치게 편안했다. 마치 이 저택을 자기 집처럼 여기는 걸음걸이로, 문지기의 인사조차 받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나는 창가에서 그 걸음을 눈으로 따라갔다. 걸음의 폭, 시선의 각도, 손을 흔드는 습관까지, 저 남자는 이 저택의 구조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야. 드나들던 사람이지.'
방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서, 나는 결국 그를 마주 보게 되었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정중했다. 허리를 굽히는 각도도 적당했고, 목소리도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런데 그 정중함 아래에 뭔가 다른 게 깔려 있었다. 나는 상대를 처음 보는데도, 저 웃음이 진짜 웃음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눈웃음은 있는데 눈빛은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기억이... 좀 이상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네. 기억이 없어요."
나는 짧게 답했다. 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저와의 거래도 기억이 안 나신다는 뜻입니까?"
"그런 것 같네요."
한도진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나는 그 빛의 의미를 정확히 읽을 수 없었지만,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억이 없다는 걸 알고, 뭔가 계산을 시작한 눈빛이었다.'
이전의 나와 이 남자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을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저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거래가 결코 깨끗한 종류는 아니었을 거라고.
그는 뒤쪽 짐마차를 향해 손짓했다. 마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삐걱, 하고 났다. 안에서 사람 하나가 끌려 내려왔다.
어린 소녀였다. 나이는 열두어 살쯤 되어 보였다.
옷은 낡아서 원래 색을 짐작하기도 힘들었고, 손목에는 밧줄에 눌린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소녀는 마차에서 내리면서도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오래 그 안에 갇혀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번에 들어온 물건입니다."
한도진은 소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툭 밀었다.
"손이 야무져서 잔심부름에 딱입니다. 값도 후하게 쳐드렸으니, 부리는 데 부담 없으실 겁니다."
물건. 사람을 두고 그 단어를 썼다.
순간 속에서 뭔가가 뒤틀렸다. 이성적으로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이 저택에서 나는 아직 아무 권위도 없었으니까. 기억도 없고, 이곳의 규칙도 몰랐다.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목소리가 먼저 나가고, 생각이 그 뒤를 따라갔다.
"이 아이, 어디서 데려온 겁니까."
내 말에 한도진의 웃음이 살짝 굳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도련님, 예전 같으면 그런 걸 물으실 분이 아니셨는데요."
그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예전의 나는, 저런 걸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는 뜻이었다.
'그럼 예전의 나는, 이런 걸 몇 번이나 봐 놓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 소린가.'
기억이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저 남자가 말하는 '예전의 도련님'을 내가 직접 기억했다면, 지금 이 순간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됐습니다."
윤서인의 목소리였다. 언제 왔는지, 그녀가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평소의 무표정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옷자락을 쥔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렸다.
숨을 짧게 몰아쉬는 소리까지 들렸다.
"거래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도련님은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침착함이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말끝이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윤 시녀장님, 오랜만입니다."
한도진이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목소리에 이번에는 명백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윤서인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두려움과 분노가 동시에 섞인 눈빛이었다.
나는 그 두 감정이 한 사람의 눈에 동시에 담기는 걸 처음 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저와 하시고, 아이를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물건이라고 했지 아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한도진이 여유롭게 웃었다. 그 웃음 안에는 윤서인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확신이 배어 있었다.
'이 남자는 지금 즐기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한 가지를 확신했다. 이 거래는, 그리고 이 관계는,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그 소녀를 다시 보았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만 보고 있었다. 발끝이 흙바닥을 조금씩 파고 있는 것처럼, 아주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두 짐꾼이 소녀를 데리고 저택 뒤편으로 향했다. 소녀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거의 숨소리에 섞여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였다.
"...도련님도, 그날 거기 계셨잖아요."
나는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발음이 흐릿했고,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하지만 그 한 마디가,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날, 어디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소녀는 이미 저택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방금 들은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되뇔수록 확신은 커졌다.
저건 착각이 아니었다. 소녀는 분명히 나를 알고 있었다.
기억이 없는 나만 몰랐을 뿐, 저 소녀는 나를, 그리고 그날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