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나는 늘 먼저 깨어난다.
창밖은 아직 푸르스름했고, 옆자리에는 언니의 등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그 등을 보고 있으면 그제야 밤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는 손끝으로 언니의 티셔츠 자락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확인. 그게 내 아침의 첫 번째 의식이었다.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언니의 숨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눈을 완전히 떴다. 이 작은 확인 절차가 없으면, 나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었다. 우습다는 걸 알았다. 나도 안다. 열여섯 살이나 된 여자애가 언니의 숨소리를 세면서 하루를 여는 게 정상은 아니라는 것쯤.
"또 안 잤어?" 언니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물었다.
"잤어. 조금."
거짓말이었다. 정확히는 언니가 잠든 뒤, 언니의 숨소리를 세다가 새벽 세 시쯤 겨우 눈을 감았다는 게 사실에 가까웠다. 혼자서는 안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해 겨울부터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둠 속에 혼자 놓이면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것처럼 뛰었고, 숨이 옅어졌다. 병원에서는 그걸 불안장애의 일종이라고 했다. 언니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부터 내 옆에서 잤다.
6년. 언니와 나는 그렇게 한 침대에서 6년을 보냈다.
그 6년 동안 언니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짐작만 할 뿐이었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지 않았던 것. 대학에 들어가 마련했던 자취방을 거의 쓰지 못한 채 두 달 전 정리한 것.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는 걸 우연히 엿들었을 때, 그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가 "동생 때문에 시간이 안 나서"였다는 것도.
"밥 먹어." 언니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짧은 머리가 부스스했다. 언니는 스물한 살, 대학교 2학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캠퍼스 앞에서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에서 살아야 할 나이였는데, 언니는 결국 두 달 전 자취방까지 정리하고 나와 함께 이 좁은 반지하 원룸에 남아 있었다.
"오늘 수업 몇 시야?" 내가 물었다.
"아홉시." 언니는 대답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너도 학교 가야지."
식탁에 앉아 된장국을 뜨는 동안, 언니는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잡음 사이로 아침 뉴스가 흘러나왔다가, 다시 잡음이, 그러다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왔다. 언니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로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언니의 옆얼굴을 보았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저 그런 하루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된장국 냄새, 언니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 나는 그 평온함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 지나가는 풍경을 봤다.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똑같은 정류장, 똑같은 신호등, 똑같이 붐비는 사람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떡볶이집에 들렀다가, 여섯시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그날 저녁, 모든 게 무너졌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언니는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이 열려 있었고, 화면에는 낯선 건물의 사진이 떠 있었다. 벽돌색 외벽에, 지붕이 뾰족한 3층 건물. 정문에는 "청솔원"이라는 한자 현판이 달려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여자 기숙사"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고, 그 옆에는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언니는 노트북을 닫지 않았다. 대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이미 답이 담겨 있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눈두덩이 살짝 부어 있었다. 울었던 걸까. 아니면 밤을 새운 걸까. 나는 그때는 그 부은 눈두덩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했다.
"서아야." 언니가 입을 열었다. "두 달 전부터 준비한 대로, 오늘부로 기숙사에 들어가."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되새겼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귓속에서 이명 같은 소리가 울렸다.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다시 물어야 하나. 아니면 잘못 들은 거라고 우겨야 하나.
"무슨 소리야,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언니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두 달 전부터 알아봤어. 학비가 밀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고, 청솔원은 여자 기숙사야. 학교에서 버스로 십오 분. 방금 원장님하고 통화 끝났고, 오늘 밤부터 들어갈 수 있대."
"두 달?" 나는 그 숫자에 먼저 걸려 넘어졌다. "두 달 전부터 알아봤다고? 근데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어?"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하고?"
"말했으면 네가 갔겠어?"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위장이 바닥으로 훅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언니가 나를 이렇게, 예고도 없이 잘라내려 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다시 봤다. 벽돌색 건물, 뾰족한 지붕, 낯선 이름. 그 사진 속 건물이 갑자기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나와 언니 사이를 가로막는,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벽.
"나 혼자서는 못 자." 나는 겨우 그 말만 뱉었다.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웠다. "언니도 알잖아. 나 못 잔다고."
"알아."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더 미룰 수 없어."
"뭐?"
"나한테서 떨어지는 거. 학비가 두 달째 밀린 지금도 못 바꾸면 우리 둘 다 더는 못 버텨."
언니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어떤 결심을, 오래전부터 다져온 결심을 읽어냈다. 언니가 지난 6년간 나를 위해 미뤄둔 것들─연애, 자취, 동아리, 여행─그 모든 목록이 눈앞에 스쳤다. 언니의 다이어리에서 우연히 본 적 있는 문장도 떠올랐다. "서아가 스무 살이 되면." 그때는 그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언니가 나 때문에 못 한 거 많다는 거 알아.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서아."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평소와 달랐다. 다정함이 빠지고, 오직 단호함만 남은 목소리였다. "나도 살아야 해. 너도 살아야 하고. 우리 둘 다 이제 각자 살아야 해."
"그게 지금 왜, 오늘 갑자기…"
"두 달을 미뤘어. 내가 또 마음 약해질까 봐."
나는 그 말에서 언니의 두려움을 처음으로 보았다. 언니도 무서웠던 것이다. 나를 떼어놓는 것이, 혹은 떼어놓지 못하는 자신이. 언니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노트북 키보드 위에 얹힌 그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짐 싸."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택시 불렀어. 삼십 분 안에 온대."
"삼십 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언니, 나 교복도 안 벗었어. 준비할 시간을 줘야지."
"준비할 시간 주면 네가 도망갈 방법을 찾을 시간이 되는 거야."
정확한 지적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정말로 어딘가로 숨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안 나오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옆집 아주머니 댁으로 도망치면. 그런 유치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다. 언니는 이미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6년을 함께 잔 사람은, 이렇게 상대의 도망칠 구석까지 알아채는 걸까.
"싫어." 나는 마지막 저항을 해봤다. "안 갈래. 나 여기서 언니랑 살 거야."
"서아야." 언니가 내 어깨를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너도 이제 열여섯 살이야. 나도 이제 스물한 살이고. 우리가 이 방에서 평생 같이 잘 수는 없어."
"왜 없어.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해." 언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내가, 나 자신한테 뭐라고 하고 있어. 매일 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언니가 매일 밤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자책과 조바심 속에서 이 결정을 내렸는지, 나는 캐리어를 꺼내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짐작하지 못했다.
캐리어를 꺼내는 언니의 손이 빨랐다.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는 그 손을 보며,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서 있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방금까지 평범했던 하루가, 순식간에 낯선 벽돌색 건물 앞으로 나를 던져놓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언니가 내 속옷과 양말을 아무렇게나 캐리어 안에 쑤셔 넣는 걸 보면서,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교복은 벗어야지." 언니가 말했다. "체육복 갈아입어. 편하게."
나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머리는 여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뒤에서 허둥지둥 따라오고 있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나는 벽에 붙은 언니와 나의 사진을 봤다. 작년 겨울, 눈 오는 날 찍은 사진이었다. 그때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언니."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오늘 밤 나 혼자 자는 거야?"
언니는 캐리어 지퍼를 닫으며 잠시 멈췄다. 그 짧은 정지가 나에게는 영원처럼 길었다. 지퍼 손잡이를 쥔 언니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언니도 확신이 없는 걸까. 아니면 확신이 있어서 더 두려운 걸까.
"그래." 언니가 대답했다. "오늘부터."
창밖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택시가 도착한 것이다. 언니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는 미안함과 결심이 동시에 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에서 혼란을, 그다음엔 서글픔을, 그리고 마지막엔 다시 단단해지는 결의를 순서대로 읽어냈다.
"가자."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신발을 신는 손이 자꾸 미끄러졌고, 운동화 끈을 묶는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언니가 다가와 대신 끈을 묶어줬다. 마지막으로. 이게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뜨거워졌다.
"울지 마." 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울면 나도 못 가."
나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다. 언니가 먼저 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그 바람 속으로, 준비되지 않은 채로 걸어 나가야 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언니의 캐리어 바퀴가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마치 이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반지하 원룸 건물을 돌아봤다. 저 창문 아래, 우리 둘이 6년을 보낸 그 좁은 방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언니는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저 앞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얼굴에서, 이 결정이 언니에게도 쉬운 게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하지만 그때는 그 사실이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차창에 이마를 댄 채, 나는 앞으로 다가올 밤을 생각했다. 처음으로 혼자 자는 밤. 옆에 아무도 없는 어둠. 심장이 벌써부터 갈비뼈를 두드리기 시작했다.